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 -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위험한 미래 설계
애덤 베커 지음, 박주용 옮김 / 동아시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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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들어야 한다. 이 저자의 말을. 이런 주장을 단순히 러다이트 운동과 같다고 하면 안 된다.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되돌릴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할 수만은 없다.


영어의 원문은 이런 제목이 아닐텐데, 번역자가 내용을 완전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제목을 붙였다.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이라고. 정말 잘한 번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제목은 'MORE EVERYTHING FOREVER'라고 하는데,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이라고 하니,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주의자들은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요즘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속도를 늦추자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 역시 저자에 의하면 기술주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안전주의자들도 역시 인공지능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다만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공지능 개발에 속도를 내자는 쪽이나 속도를 늦추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쪽이나 모두 인공지능 시대를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 


특히 이들이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과연 인류를 위해서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성장을 위해서, 무한한 성장,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인공지능에 투자를 하고, 또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인공지능에 더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런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류에게 이익이라는, 그러한 이익을 위해서는 현재의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한다. 현재의 위험? 기후위기라든지, 경제불평등, 세계적인 분쟁 등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장기론자들의 관점을 이야기하는데, 그 관점이 통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인류의 이익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먼 미래의 인간들까지 계산에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먼 미래의 인간까지 몇 조의 인간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지금 해야 한다고. 


그 미래의 인간들 이익까지 고려하다 보면 지금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보다는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인류를 위하는 일이라고... 나 참. 아직 오지 않은, 실현될지도 모르는 것을 계산에 넣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은 별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 논리.


여기에 지구에 인간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러니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인간은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이게 뭔가 했더니, 결국 성장주의다. 성장하지 않으면 침체고, 이것은 인류의 퇴보를 의미한다고.


과연 그럴까? 이 지구에서 우리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리콘밸리의 기술주의자들도 알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지구로 삶터를 한정하지 않고, 태양계 또 태양계 너머의 우주로까지 인간의 삶터를 확장한다.


아직 불가능하지만, 이들은 가까운 미래에 실현가능할 거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인류의 살 길이라고,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집중하는 것보다,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인류를 위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는 것.


화성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주장. 저자는 하나하나 근거를 들어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지 않음도. 그러니 실리콘밸리 기술주의자들의 주장이 실현될 수 없음에도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탐구한다.


저자는 그것은 바로 '기술을 통한 구원이 제시하는 초월의 약속'(346쪽)이라고, '현실 세계의 어떠한 위기도 그들 머릿속 상상의 임무보다 중요할 순 없다'(347쪽)고 하면서 '식민지주의의 약탈적 논리는 우주에서의 기술을 통한 구원의 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349쪽)고 비판하고 있다.


'기술을 통한 구원에는 만물에 대한 영원한 지배의 꿈과 함께 그 지배 권력을 이용한 '모든 한계 초월하기'도 포함되어 있다'(353쪽)고 하면서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들이 지구를 버리는 상상에 빠져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우주 식민지화는 불로장생을 위한 섭생, 10대들로부터의 수혈, 클라우드에 두뇌 올리기, 영생 비타민 같은 환상들과 찰떡궁합이다'(361쪽)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인문학, 철학 등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무시하는 태도 등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문부정'이라고 하는데, 이 '인문부정은 기술업계의 또 다른 하나의 고질병의 원인이기도, 결과이기도 하다'(379쪽)고 주장한다.


이런 인문부정이 낳은 그들의 사고방식은 무엇일까? 바로 공학자병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 분야(주로 STEM-과학,기술, 공학, 수학)에서 전문가가 되면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된다고 믿는 병이라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성공했기에 전문가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믿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들만이 옳다고, 따라서 인공지능 시대는 다가오고, 인류는 우주로 나아가야 하며, 영생을 곧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술이 이룰 것이라고... 


이것을 누가 주도하나? 실리콘밸리에서 기술로 성공한 억만장자들이 투자를 통해서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서 이런 투자를 하는 것이니, 억만장자들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그것을 가장 간단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세금인데...


이는 억만장자들의 성공은 개인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것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니, 그에 대한 비용을 세금의 형식으로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는 능력주의에 대한 자연스러운 비판이고, 그렇게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다른 연구들,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을 거라고.


읽으면서 명쾌하다는 생각. 아, 그렇지 하는 감탄. 인공지능, 인공지능, 우주, 우주, 영생, 영생 하는 시대에 그런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허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인지를 구체적인 근거들을 통해 반박하고 있는 이 책.


이 책은 우리 역시 인공지능이라는 '집단 순응 사고'에 빠져 있지 않나 하고 되돌아보게 하고, 인공지능이 만능이 아님을, 우리 인류가 살아가야 할 곳은 이 지구이고, 이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현대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또한 인공지능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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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텅구리 - 한국 최초 신문 연재 네컷만화로 100년 전 날것의 식민지 조선을 보다
전봉관.장우리 편저, 이서준.김병준 딥러닝 기술 개발 / 더숲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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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신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예전엔 종이 신문에 네 컷 만화와 한 컷짜리 만평이 실리곤 했는데...


네 컷 만화는 이야기가 있어서 보기가 좋았다. 한 컷짜리가 한 컷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면, 네 컷은 흐름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쉬웠는데...


우리나라에서 신문이 발행된 초기부터 네 컷 만화가 실렸었나 보다. 이 책을 보니 1924년에 '멍텅구리'라는 네 컷 만화가 실리기 시작했으니.


이 만화를 통해서 당시 사회-문화를 알 수 있기도 하지만, 한계도 있다. 왜냐하면 신문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좋고, 지식 수준도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


그러기에 이 만화에 나오는 내용이 일반 서민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여유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해야 한다. 기생인 옥매에게 반해 쫓아다니는 내용이 처음 시작이니... 이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멍텅이는 돈을 물 쓰듯 쓰고 있으니, 당시 일제시대에 그런 경제적 호사를 누리를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된다. 따라서 이 만화를 보는 사람은 낄낄거리면서 볼 수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민중들은 이런 신문 만화를 볼 염두도 내지 못했을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면 소위 지식인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내용이 만화에 실렸을 텐데, 해설에 의하면 당시 게장 금지라든지, 수입 담배 금지 등의 정책을 비꼬는 내용이 있고, 또 독립만세운동을 의식하는 일본 경찰에 대한 풍자 등이 있으니, 이나마 이 만화들이 당시 지식인들의 비판의식을 자극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놓고 일본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간혹 일제의 정책을 비꼬는 내용이 실리는데, 만화 중에 1926년 1월 2일자는 설날을 양력으로 하라는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 설을 치른 줄 아나? 우리 설은 따로 있네!'라는 대사... 우리가 지녀왔던 문화를 강압적으로 바꿀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여기에 '왜갈보는 도처에 있네(1926.3.20)'라는 대사 역시 일본을 비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밖에 치고받고 싸우는 의원들을 보면서 '일본의회 모양이로군(1926.4.22)하는 장면도 있으니...


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라 만화를 통해서 당시 일본을 비판하는 장면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멍텅이와 옥매의 사랑이야기에, 윤바람이라는 친구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만화.


그러다 휴간이 되었다 다시 복간이 되었을 때, 1930년대는 편집이 완전히 달라진다. 각 컷에 붙던 설명이 없어지고, 인물들의 모습도 바뀌었는데... 화가가 바뀌었다고 보면 되는데...


처음에 그린 화가들은 노수현과 이상범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근대미술을 이끈 사람들... 하지만 1933년으로 가면 다른 이름이 나온다.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 씨인 것은 확실하다) 많이 다르다. 게다가 이때는 옥매가 나오지도 않는다. 


물론 1930년대도 당시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만화 내용으로 삼기는 했지만.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다.


이렇게 일제시대에 연재되었던 네 컷 만화를 영인하고 현대어로 풀이해서 책으로 엮었다. 방대한 작업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작업을 한 연구자들이 있기에 당시 작품을 지금 볼 수 있게 된 것.


이 만화들을 주욱 보면서 당시 맞춤법이 통일이 되지 않았고, 지금 우리가 쓰지 않는 글자들이 쓰인 것을 보게 되니, 우리글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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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절주절. 시인의 독백을 듣는 듯한 느낌. 시인이 자신의 의도를 독자에게 명확하게 하기보다는, 나는 내 말을 한다, 당신은 당신의 말로 알아들어라 하는 듯한.


 5부로 나뉘었는데, 각 부에 제목을 붙이고, 그 제목 앞에 숫자가 있다. 무슨 숫자지? 잠깐 고민했는데, 답은(답이라고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해설에 나와 있었다. (해설이 이 시집을 읽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연도란다. 17흔적, 06상자, 04연맹, 00프랑스, 99반복. 해설에 따르면 이 시집은 2017년부터 시작해 1999년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 놓은 것.


  그렇다면 시집을 거꾸로 읽으면 어떨까?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니... 학교에서 역사(국사)를 공부할 때도 아주 먼 과거부터 배워 현대로 왔으니...


별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별의 탄생, 빅뱅부터 시작해 지금의 우주로 오지 않나? 그런데 시인은 거꾸로 배치를 했다. 시간의 흐름과 반대로. 이는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인가?


시집의 처음에 실린 시, 그러니까 현재를 대변하고 있는 시가 '제일 앞자리엔 채리가 앉는다'(9-11쪽)이다. 채리? 모르는 사람.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사람. 누구나 채리가 되어야 하니까. 적어도 이 시집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채리가 되어야 한다. 


왜? 시인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앞자리엔 채리다 ...(중략)... 누군가의 채리가 자리에, 그것도 익숙한 앞에 앉아야 다음 장을 넘길 수 있다. ...('제일 앞자리엔 채리가 앉는다'에서)


앞자리, 이것을 현재라고 하면, 현재를 인식한 사람만이 과거를 반추할 수 있다고, 즉 의식적으로 과거를 돌아봐야 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거에 잠식당해 절대로 앞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하는 듯하다.


이 시의 맨 마지막 문장이 '씨니까'인데, 씨가 바로 시다. 그러니 씨가 발아해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몫. 아니 씨를 자라게 하려면 반드시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씨는 발아하지 않고 썩어버리고 말 테니까. 시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발아되지 않는 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발아하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삶이 얼마나 많은가. 


시를 독자들이 발견하듯이 삶도 자신이 발견해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시라는 씨, 삶이라는 씨. 결국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발견한다는 것. 발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주고 보듬어 잘 자라게 하는 것.


그럼에도 우리네 삶은 '제법 잘살았네'라고만 할 수 있어도 괜찮은 삶이었다는 것. 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제법 괜찮은 시네라고만 해도 제 역할을 한 시라고...


그렇지 않으면 '스무 개가 겨우 천 원'('동네에서 가장 싼 프랑스'에서. 61쪽)에 팔리는 상품과 같이, 한꺼번에 묶여서 넘어가지 않을까. 자신 스스로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다른 존재들과 묶여서 처분하듯이 팔려나가는 상품처럼, 그렇게 홀로 서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류에 휩쓸리는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제법'이라는 말. 부정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때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부정 속엔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 녀석 제법 하네.'라는 말 속엔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 기대를 넘어섰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


인생을 제법 잘살았다는 것은 기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는 얘기니, 시도 마찬가지다. 그 시 제법이네라는 말. 이 말은 시라는 씨를 심을 가치를 발견했다는 말이다. 심어서 키울 마음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하여 시인은 이 시집의 마지막 시인 '제법,'에서 '대단한 일은 아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쓸 뿐이다'('제법,' 중에서. 84쪽)라고 했지만, 시집의 시들이 우리를 '앞자리에 앉게 하고 다음 장을 넘길 수 있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주저리 주저리... 하지만 이 주절거림 속에서 삶을 발견하고 시의 씨앗을 심을 마음을 먹었다면, 심은 씨앗과 자란 결과가 결코 같지 않음을, 씨의 상태를 잊고 자란 결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시집을 '제법,'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제법,


  한때는 그 문장, 그 단어들은 시였다. 글자와 글자는 접착제로 제법 튼튼하게 붙어 있었고, 뼈대는 비록 얼기설기 엉켜 있었지만 나름 튼튼했고, 알록달록한 단어들은 제법 아름다웠다. 한때는 그 종이에 시가 쓰여 있었다. 비록 별것 아니었지만 분명, 그건 시였다. 잠깐 시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제법'이라는 접착제가 제법 많이 쓰였고 현대시라는 관점에서는 좀 모자랄 수도 있었겠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 시를 한때, 좋아하기도 했었다. 그 시는 분명 시였다. 지금은 제법 시였던 어떤 것이다. 제법 시다웠지만 다, 한때의 일일 뿐이다. 그냥 그 종이 위에는 이제, 검은색 글자들과 약간 색이 바랜 여백들과 나름의 침묵이 남아 있다.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지금 와서는 제법 아쉽지만 수긍하는 수밖에 없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쓸 뿐이다.


서정학, 동네에서 가장 싼 프랑스. 문학과지성사. 2017년 초판 2쇄.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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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
이정민 지음 / 사이드웨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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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이미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면모를 잃어가는 미국의 모습을 살피고 있는 책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이 움직이면 세계가 따르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미국 역시 강대국 중 하나로 떨어지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데, 트럼프라는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꼭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시대에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와 똑같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힘을 잃은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힘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분야에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흔들리고 있지만 군사적으로도 흔들리고 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라고 한다. 계획을 짜고 미래를 도모하는 철수도 아닌 허겁지겁 그야말로 쫓기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난 미국.


이때 미국과 함께했던 동맹국들에게도 제대로 통보하지도 않았고, 미국에 협력했던 많은 사람들, 하다못해 미국의 지지로 성립되었던 아프가니스탄 정부에도 알리지 않았다고 하니... 참.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이렇게 힘을 잃어간 것을 간파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그것을 제대로 제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금까지의 미국과는 다른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주장에 동의한다. 다만,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럼에도 약 50%정도라고 한다면, 미국이 쇠퇴하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트럼프와는 다른 방향으로 미국을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지금 미국이 중국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펴는데, 이는 여전히 패권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이익을 최대로 챙기려는 모습. 그것을 자신들이 세계 최강국이었을 때는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라는 탈로 가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해진 상황.


그러니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데, 미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세계와 이익을 함께하는 정책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으니, 그것은 이익을 앞세우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자신들이 지녔던 이익을 잃지 않으려 하는 집단들은 그 이익을 위해서 적을 만들어낸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 적을 만들어냄으로써 봉합할 수 있으니까. 이런 미국에서 외부의 적으로 삼은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을 적대시하고,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여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하려 한다.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또 중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에 압력을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관세와 방위비 분담. 심지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 영토까지도 내놓으라고 한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이유도 이것과 상당한 관련이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지금 미국이 세계 패권국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런 정책들이라면, 앞으로는 어떨까?


미국이 달러의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또 자신들의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이 블록체인(스테이블코인)과 AI라고 하는데... 이것이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미국의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짧게 언급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지금 현명하게 외교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 겪었던 비극을 또 겪게 될지도 모르니...


다행히 우리는 저력이 있는 나라다. 이미 그러한 강대국 사이에 낀 경험을 한 역사도 있고. 기술 발전이나 군사력이 세계 최고는 아니어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이고, 경제력으로 말해도 선진국에 올라섰으니... 당당한 자립국가로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트럼프로 인해 시험대에 올라섰는데... 어떻게 될지.


이 책은 그간 미국의 정책이 왜 이렇게 흘러왔는가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패권국에서 그 힘을 잃어가면서 미국이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는 이유, 과정이 잘 나와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중국과의 관계, 지금 양대 강국이라고 하는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과정, 그리고 세계에 진출하는 상반된 모습 등이 잘 나와 있어서 현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나라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미리 하는 것은 성급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읽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정책을 펼치도록 해야할 때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 트럼프만을 욕하지는 않게 된다. 트럼프 역시 쇠락하는 미국을 이끄는 사람일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그 방식이 참,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그러니 트럼프 개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세계적인 추세를 읽고 거기에 대비하는 준비를 해야겠다.


진단은 훌륭한 책이다. 이제 진단이 나왔으니 처방을 할 차례. 그 처방이 어떨 것인가? 우리를 위한 처방일지, 미국에 끌려다니는 처방일지... 지켜봐야 한다. 아니 우리를 위한 처방이 되도록 우리 역시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겪었던 비극을 또다시 겪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정책을 간단히 소개한다. 이렇게 미국이 변했다고...


'국방부는 미국 국방의 우선 순위는 중국 견제와 본토 방어에만 한정된다고 선언했다. ... 중국은 유일한 주요 위협이며, 중국의 대만 점령을 저지하는 동시에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것이 미국 국방부의 '유일한' 주요 시나리오다.' (49쪽)


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더 이상 동맹 방어의 종착점이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 거점이 된다'(36쪽)라고 한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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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세이렌
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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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 있다. 내용이 현실적이지 않아도, 허황되다는 생각이 들어도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다. 도대체 뭔 얘기야? 의미를 찾을 수가 없네 하지만,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 재미 있게 읽고 나면 그뿐.


그것이 삶일 수도 있다. 삶의 의미! 참 중요하다고 한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은 건강도 해친다고, 빅터 프랭클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게 되니까. 하지만 모든 행동에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삶이 피곤해진다. 의미 없는 일이 무엇인지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도대체 삶에서 의미 없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힘든 일이다.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고, 또 모든 것에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의미 찾기를 하는 사람들은 종교에 빠져들기도 한다. 자신이 찾지 못하고 있으니 전능한 존재에게 의미를 맡기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 존재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했고, 우리는 그 뜻에 맞게 살면 된다고 하면 자신의 책임을 벗어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의미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종교를 믿더라도 가끔은 이것이 신의 뜻인가 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삶을 살게 될 때는 특히 더.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작품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집중해서 읽고, 어떤 단서 속에서 아, 이것이 이 소설의 의미구나 했을 때 잘 읽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많은 작품들에서는 그러한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냥 미로 속에서 헤맬 뿐이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의미는 무슨? 그냥 읽으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종교 이름을 보라. '철저히 무관심한 하느님의 교회'라고 나온다. 인간에게 관심이 없단다. 그러니 나는 신의 선택을 받아서 하는 일들이 잘돼라는 말은 헛소리가 된다.


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소설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주인공이 사람들의 질문에 답한 말이 이미 이렇게 적혀 있었다는 것. 


'나는 일련의 우연에 희생당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299쪽)


삶은 우연이다. 아니, 이 소설은 필연이다.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서 메시지를 나르던 존재의 우주선이 고장나서 부품이 필요한데, 이 부품을 그 우주인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지구인들의 행동을 조절했다고 하는.


그것을 알고 분노하는 사람도 나오는데, 그럼에도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 짜여진 구조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더라도, 인간은 그때그때 자신의 행동에 최선을 다한다. 자신이 선택을 한다. 그 선택조차도 조정된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이렇게 우주인에 의해 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주인공은 살아간다. 그 나름대로의 삶을. 시간이 지나면 그 우주인에게 부품을 전달한 다음에 지구인들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가? 그때도 트랄파마도어에 조정당하게 되는가?


아니다. 그들이 지구인을 조정할 이유가 없다. 지구인은 그냥 지구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소설을 읽어보면 트랄파마도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마치 예정조화설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러면 커트 보니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커트 보니것이 어떤 작가인가? 냉소적인 풍자를 하는 작가 아닌가.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트랄파마도어를 도입해서 그들이 지구인을 조정했다는 장면, 부품을 나르게 하는 과정이 지구의 역사였다는 서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트랄파마도어인(소설에서는 기계로 나오지만 여기서 그냥 등장인물이라고 '인'이라 하자)이 나르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안녕이다. 안녕은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의 경계를 낮추고 함께 만나는 장을 만드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안녕'이란 말은 서로 대등한 관계로 인정하는 말 아닌가. 하여 소설 속에서 정해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삶을 되돌아보면서 우연 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하나의 체계 속에 넣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소설 속에서도 끝부분에서야 이런 일이 밝혀지니, 그 전까지는 조종당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기 의지를 가지고 기억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으니, 결국 큰 틀에서 보면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그 궤적 속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아닐까.


각자의 삶이 소중한데, 그것을 망각하고 큰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 그런 것이 문제라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겠지만, 정말 작가가 어떤 의미를 주려고 했는지 찾기는 힘들다. 그냥 재미 있게 읽고, 어, 이런 삶도 있었네. 와, 이 중에 지금 우리가 받아들여도 되는 삶도 있네 하면 되지 않을까.


소설에서 철저히 무관심한 하느님의 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잘난 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스스로 핸디캡을 적용해 살아가는데, 가령 체력이 남보다 좋은 사람은 무거운 주머니를 달고 다녀, 남들과 비슷한 체력이 되게 한다거나 하는 등, 결국 그들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293쪽)이 그 종교를 믿는 사회라는 서술이 나온다.


이 핸디캡을 이용하면 '아무도 당신이 운이라는 무작위적인 방식을 이용했다고 당신을 책망하지 못할 겁니다.'(296쪽)라는 표현으로, 지금의 능력주의를 이미 오래 전에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뭐, 이런저런 현대 사회에서 참조할 만한 사항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서 만족을 하면서... 나중에 다른 해설들도 참조해서 한번 더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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