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운명의 집 ㅣ 쏜살 문고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미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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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많은 글을 쓴 사람. 그의 소설 몇 편을 읽어보긴 했다. 그가 쓴 평전을 읽은 적도 있고. 여행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기. 그가 많은 나라를 여행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많은 여행 기록 중에서 몇몇을 발췌한 것이 이 책이다.


1902년 벨기에 브루게가 제일 먼저 나온다. 근대 도시지만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그는 브루게를 통해서 도시가 간직하고 역사, 그 역사가 쉽게 지워져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근대적인 건물들 역시 중세 건물들을 가리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지닌 도시가 바로 브루게라고. 


'오래된 집들이 전혀 변형되지 않은 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드문드문 새로 지은 건물들 (그중 하나는 역이다)마저 끝부분이 세 갈래로 갈라진 벽돌 박공을 높이 올린 옛 건축 양식과 아주 정확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저 주민들만 바뀌었다.'(8쪽)라는 표현에서 츠바이크가 브루게에 갔던 당시 건물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브루게 여행을 통해 젊은 시절의 츠바이크는 과거는 현재에 묻혀 잊혀져서는 안 됨을, 과거는 현재 속에 살아 있음을 이미 발견하고 있다.


이 브루게란 도시에 관한 글이 그가 죽은 이후에 나온 글인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1946 과거의 빈'이라는 글과 통한다. 빈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예술에 있다는 것. 그러나 예술은 '자유 없이 번창할 수 없다'(191쪽)는 그의 말.


두 번에 걸친 세계적인 전쟁이 그를 더욱 견디지 못하게 했으리라. 브라질에서 결국 세상을 버리고 말았으니... 


빈에 대해 그가 한 말. 


'모순의 혼합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이 조화하려는 시도에서 유럽 문화의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도시가 지닌 본래적 천재성이다'(171쪽)


이 모순의 혼합에는 상대를 배제하거나 억압한다는 생각 자체가 들어있지 않다. 유럽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그 자체로 인정받으며 살 수 있었던 도시가 바로 빈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꽃필 수가 있었다고.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예술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그가 꿈꾸던 세상. 


'내 생각에 인간은 -마찬가지로 한 민족은 - 지배해서도 헌신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유로워야만 하며, 각각의 타인에게 자유를 주어야만 한다.'(184-185쪽)


이런 그에게 전쟁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 그가 영국에 머물 때 전쟁 소식을 듣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럴까라고 의문을 가지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영국인들이 전쟁 소식에도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을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에서 찾고 있다. 바로 영국인들이 정원을 가꾼다는 것. 이 정원이 특별히 아름답다거가 크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집에 자신들이 가꿀 수 있는 만큼의 정원이 있다는 것.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정원에 들러 식물들을 가꾸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모습들이 전쟁을 견디도록 했다는 것.


츠바이크가 쓴 이 글을 읽으면서 리베카 솔닛이 쓴 [오웰의 장미]가 생각났다. 아, 오웰도 영국 사람이었지. 그가 정원에 장미를 가꾸는데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도 이러한 영국인들의 성품이었나 싶은 생각을 했고.


이렇게 츠바이크가 쓴 여행기를 읽으면서 단지 그 도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러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다른 삶을 본다는 것.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츠바이크 역시 그런 말을 하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집에서 안내서와 함께하는 여행의 매력은 정말 환상적이다. 자신의 공간을 낯선 세계로 바꿀 뿐 아니라 현재의 시간을 과거와 바꿀 수도 있다. 집에서 여행기를 읽는 우리는 갑자기 먼 과거의 낯선 집에서 살 수도 , 빛바랜 옛날 옷을 입을 수도, 우편 마차와 작은 돛배를 타고 여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세기의 사라진 공기를 들이마시며, 활발한 유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할 수도 있다.' (91-92쪽)


이런 여행. 바로 이것이 여행기를 읽는 재미다.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자신을 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 방법에만 안주하면 안 된다. 츠바이크 역시 집 안에서 여행기만을 읽지는 않았다. 여행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직접 여행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다만, 직접 여행할 때는 편한 여행을 추구하지 말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여행을 하기를 그는 권장하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모험과 위험, 변덕스러운 우연과 유혹적인 불확실성의 은은한 향기가 맴돌았다.'(131쪽)


'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차라리 불편함, 성가심, 불쾌함이 낫다. 이것이 제대로 된 여행이다.' (132쪽)


이러한 여행을 한 사람이 집에 있을 때 여행기를 펼친다면, 츠바이크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여행과 다른 사람의 여행이 합쳐지는 또 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여행을 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이를 확장하면 그런 민족은 닫힌 민족관을 지닌 민족이 아니라 열린 민족관, 즉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민족이 된다.


이런 민족들이 있다면 지구에 전쟁은 없을 텐데. 한 민족이 다른 민족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 


그렇게 처음 글에 나오는 조화, 그리고 마지막 글인 자신의 고향 '빈'을 이야기하면서 '삶이란 ... 근심 없이, 또 자유롭고 시기심 없이 친절하게 사는 것'(184쪽)이라는 츠바이크의 말을 마음에 심는다.


그가 살았던 시대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 이 시대, 츠바이크의 이 책은 과거에 머무는 책이 아니라, 또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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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구입할 때 엄정한 기준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유고'라는 말이 붙은 책을 보면 구입해야겠다는 마음이 인다.


  왜일까? 작가들이 살아서 독자들의 반응으로 자신이 쓴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다음 창작활동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는데...


  세상을 떠난 작가들은 작품을 내놓아도 독자들의 반응을 알 수 없다. 그는 그냥 작품을 던져 놓은 것이다. 아니, 그가 내놓으려 하지 않은 작품을 누군가가 찾아서 독자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것이다.


  카프카. 생전에 발표한 작품이 적은 작가. 유언으로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했다던,


하지만 유언 집행자였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는다. 그는 카프카의 작품을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는다. 지금, 우리가 카프카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이렇게 해서 가능해졌다.


즉, 카프카는 죽었지만 작품은 살아남았다. 그의 작품에게도 '유고'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유고'라는 말이 있는 작품엔 유독 마음이 간다.


이 시집도 그랬다. 김기홍 시인, 분명 [일과 시] 동인시집을 읽은 적이 있으니, 머리 속에 시인의 이름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생소한 시인... 참. 기억력이 이렇게 안 좋아서야.


집에 있는 시집을 찾아보니 [일과 시] 동인 제7집이 있다. 2002년 발간 시집이다. 김기홍 시인이 2019년에 세상을 떴고, 이 유고시집이 2020년에 나왔으니, 한참 전에 발간된 시집이다. 물론 나는 나중에 읽었지만... 여기에도 김기홍 시인의 시가 실려 있다. 아마 다른 동인지에도 실려 있겠지.


카프카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하나. 생전에 시집도 두 권을 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뜨고 유고시집이 나왔다. 


'여는 시'라고 시집의 앞에 있는 시가 마음을 울린다. 이 시가 이 시집의 `제3부'를 시작하는 시다.


  고개에 앉아서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

지난 시절은 주저 없이 가버렸다

그러나 살아야 하리라

저주하듯 온갖 고통들이 나를 에워싸고

외로움에 지쳐갈 때

그 외로움은 거울이 되어 나를 깨우리라

속속들이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추어 깨우리라

늘 내 안과 밖에 내가 있으리라


김기홍, 뼈의 노래. 푸른사상. 2020년. 91쪽.



그가 살아온 시절. 한국 현대사의 비극들이 일어난 때. 노동자들이 힘겹게 힘겹게 자신들의 권리를 얻어가던 때. 민주주의를 외치며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받던 때.


그 역시 노동자로서, 시인으로서 그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으리라.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그에게는 따스한 바람이 부는 세상이 아니라 여전히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드'는 세상이었을 것이니,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함께하던 시절은 가고, 이제는 고통들이, 그가 겪은 고통들이 '기나긴 잠 - 오랜 잠에서 깨어나다'는 시에 '백일해 뇌막염 뼈 으스러짐 교통사고 결핵....../ 불행의 난전이여 병마의 백화점이여'(130쪽)라는 표현으로 나타나 있으니...


하지만 고통들로 인한 외로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른 외로움들을 살피는 시인의 모습. 그러한 모습이 '숲에서 보낸 편지' 연작에 잘 나타나 있다. 마찬가지로 '마늘 상처'란 시에 보면 '하루 한 번이라도 내 외로움이 / 그대 외로움을 만났더라면 싹이라도 틔웠을까'(102쪽)라고 외로움이 홀로가 아니라 다른 외로움들과 함께한다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비추면서 내 안과 밖에서 내가 있으리라고 외치는 시인. 그러한 시인의 표현 속에서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생각한다.


세상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또 세상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내 외로움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보고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는 것.


이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결코 홀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외로움은 지금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그러니 그 거울을 통해서 나를 보았다면, 이제 나를 거울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거울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고...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이 시집을 '여는 시'가 맞다. 이 시 구절들을 연상시키는 시들을 쉽게 다른 시들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


안 좋은 소식이 많은 요즈음, 김기홍 시인의 유고시집에서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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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미술 ㅣ Art & Ideas 1
비드야 데헤자 지음, 이숙희 옮김 / 한길아트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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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함과는 거리가 먼 나라가 인도 아닐까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이를 혼란이라고 하겠지만, 또 다른 이들은 이를 역동성이라고 한다. 


단일함보다는 다양함을 추구하는 나라가 인도 아닐까 하는데, 인도 미술은 어떨까? 도대체 인도에서는 어떤 미술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했을까? 또 인도 미술에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에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 미술 전반을 다루는 책이 아니구나 했다. 오히려 인도 역사와 관련지어서 미술, 특히 건축과 건축과 관련된 미술을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종교와 관련된 건축, 그런 건축의 양식들과 건축 내부를 장식하는 미술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내용이 많은데...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미술은 삶과 떨어질 수 없었을 테고, 삶에는 또한 종교가 빠지지 않았을 테니, 종교와 관련된 미술을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도는 신들의 나라 아닌가?


우리가 아는 종교만으로도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가 인도(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여기에 기독교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신들의 나라가 인도다.


저자는 이런 종교와 관련지어 미술을 살피면서 인도의 특징으로 어느 특정 종교가 우세하더라도 다른 종교를 대놓고 배척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든다.


하여 힌두교 왕국이어도 불교 사원을 인정했으며, 이슬람 왕국에서도 힌두교를 받아들이곤 했다는 점. 불교 역시 다른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은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는 문제니...


세계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종교들이 모두 인도에서 자리잡고 있으니, 그야말로 다양성으로 살아가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와 종교 속에서 인도 미술은 다양하게 변화해 왔는데... 주로 건축물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어서 인도에 이 많은 건축물들이 아직도, 비록 온전한 형태라고 할 수 없는 건축도 있지만, 많이 남아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근대화와 전통 속에서 인도 미술이 어떠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장면까지가 이 책에 나와 있는데, 근대화라고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고 또 전통을 살려야 한다면서 근대의 성과를 무시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우리나라도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일이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 미술을, 인도 건축을 잘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인도 미술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훑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책에 실린 많은 사진들로 인도 미술(건축)을 보는 눈호강도 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도 즐거운 읽기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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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현 교황의 회칙에 언급된 내용이라고 하는데...


  가톨릭을 대표하는 교황(이 용어가 황제를 의미한다고 해서 교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전히 교황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쓰이니)이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 중에서 바벨탑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빗대서 이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오직 하나를 향해 모두가 나아가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 그 사회가 번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성경에 나와 있다고...


바벨탑은 결국 건설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각자 말이 통하지 않아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달리 해석하면 오로지 하나가 되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은 아님을, 그런 세상은 지속될 수 없음을, 성경이 바벨탑 이후에도 인류가 계속 존속해 왔음을 부정하지는 않으니...


언어의 다양성은 삶의 다양성이고, 이는 획일화된 삶이 아니라 각자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바벨탑은 신의 분노로 무너지지만, 종교를 떠나서 획일성은 결국 유지될 수 없다는 비유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인공지능, 인공지능 하면서 하나의 목표로 나아갈 때 과연 그 사회가 지속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우리지상어떻게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것을 박혜영의 글'우리 삶은 왜 외롭고 불안하게 되었을까(下)'에서 말하고 있는 미로 속에 들어간 인간들 모습과 연결지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크레타 왕 미노스의 명령으로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목적으로 만든 미로. 그 속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갈 수밖에 없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리아드네가 실을 주는 테세우스 전까지는.


미로를 만든 다이달로스조차도 그 속에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못 찾을 정도였다니... 그는 결국 날개를 만들어 날아올라 탈출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인 이카루스를 잃게 된다. 이는 미로를 탈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또는 그런 미로를 만든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신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인공지능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우리의 모습은 박혜영의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미로 속에서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가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벨탑이 아니라 다양성을 지닌 삶을, 미로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로를 빠져나오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하는데...


이런 과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녹색평론]은. 다만 이런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의 삶은 바벨탑을 만드는 인간들과 같은 상태 또는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미궁 속에 들어간 사람들과 같은 상태라고.


문제를 알려줬다. 해결책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만의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그것이 바벨탑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해결책은 상황에 따라,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 다를 수 있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공유하며 함께할 때 아리아드네의 실이 작동할 수 있다.


아리아드네의 실은 밖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문제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도, 지구 생태의 파괴를 해결할 방법을 우주에서 찾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바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일,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를 고민해야 하는 때. 


하여 성장지상주의라는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벗어나야 할 때, 바로 아리아드네의 실은 성장만이 살 길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날 때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 바로 [녹색평론]이기도 하고.


하여 지금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3대 매가프로젝트'나 '증권시장', 그리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한 교육 개혁' 등등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관점을 살필 때,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공개적으로 토론이 될 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올라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벨탑의 교훈을 생각하자. 신의 분노가 아니더라도 오직 하나로만 된 사회는 존속할 수가 없음을... 다양함이, 그러한 다양함 속에서 자신과 다른 존재들이 관계 맺으며 지내는 사회만이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음을, 해답이라 할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찾아야 함을 생각하게 한 이번 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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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연대기 - 멸종의 비밀을 파헤친 지구 부검 프로젝트
피터 브래넌 지음, 김미선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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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연대기. 그간 지구 역사에서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이러한 대멸종의 타임라인이 표로 정리되어 있다.



이 표 하나면 그 동안 일어났던 다섯 번의 대멸종 시기와 얼마나 많은 생물종들이 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원인도 정리해 놓았으니... 간단한 이 표를 머리 속에 담아두면 좋겠다.


다만 마지막에 '인류세'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 인류세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학자들끼리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지금 시대를 인류세로 이름 짓는 것에 찬성하는 지질학자들과 아직은 아니라고 하는 지질학자들이 있으니...


그런데 이것이 '인류세'라는 용어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대멸종의 원인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남아 있는 화석을 통해서 분석을 하고, 원인 규명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테니, 그것도 몇 만 년 전의 일이 아니고, 몇 억 년 전의 일이기에 더욱 더 알기 힘들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쓰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찾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다윈은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자기 주장을 하면서 아직은 그러한 근거들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후대에는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많은 증거물들이 발견되기는 해도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것들이 많으니... 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대략 화석이나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합의점에 이른 경우가 많고, 이 책에서 저자는 그러한 주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의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합의된 대멸종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으니...


여기다 과거의 일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인류세'를 들고 이대로 나가다간 인류에 의해서 대멸종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 책을 통해 본 지구의 역사를 보면 인류가 대멸종에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우연에 의해서 일어난 일도 아니기에 여기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다섯 번의 대멸종은 대비할 틈도 없었다. 아니, 대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급격하게 지구에서 일어난 재난, 변동이었으니... 세상을 뒤덮을 화산 용암들, 엄청난 열기와 냉기, 그리고 소행성의 충돌 등등.


대멸종하면 소행성 충돌을 우선 생각했었는데, 운석 충돌이라는 하나의 원인만으로는 대멸종이 일어나기 힘들다고 한다. 가령 백악기 말에 일어난 운석 충돌로 인한 공룡의 멸종을 보면, 이 운석 충돌이 엄청난 열기를 동반해 많은 생물들을 멸종시켰지만,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지구의 화산들을 거의 다 폭발시켰을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즉, 대멸종은 하나의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이 한꺼번에 닥칠 때 벌어지는데, 지금 우리 인간이 벌이고 있는 기후 재앙으로 많은 동식물이 위험에 처해 있지만 대멸종까지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다른 일들이 겹쳐진다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대멸종이 벌어질 수 있다고... 대멸종까지는 아니어도 소멸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그러한 멸종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하긴, 인간이 가만 있어도, 지금의 기후 위기를 해결한다고 해도, 우주의 역사를 보면 대멸종은 올 수밖에 없다고... 뭐, 대멸종이라고 하기보다는 어차피 태양이 폭발하면 지구가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 그것이 별의 역사이고 운명이라고 한다면... 


그렇지만 인간의 시간 개념 속에서 몇 십 억 년 뒤의 일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 먼 미래,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인류가 지금의 생활방식을 고수한다면 기후 재앙을 초래하고, 몇 십 억 년 뒤의 일이 아니라 몇 백 년 뒤 지구를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저자는 지구에서 일어났던 다섯 번의 대멸종을 살피면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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