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
윤지영 지음 / 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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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인사말은 안녕하지 않은 시대에, 상대의 안녕을 바라면서 건네는 말이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예전에 "밤 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있었겠는가?


그러니,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노동자들은 성과금으로 수억 원을 받기도 한다는데, 그러한 노동자들이 언론을 장식할 때 그들에 가려진 더 많은 노동자들은 과연 안녕할까?


노동자들이 안녕하지 않은 세상,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도 만들었지만 여전히 일터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이라는 인사말처럼... 정말, 모두가 안녕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고, 이러한 비정규직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으니, 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하다.


소년공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가려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파업을 하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그들에게 법은 어떠한가? 약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강자를 위한 법 아닌가.


심지어 대형 로펌들이 변호하는 존재는 강한 자, 있는 자이고, 그들은 절대로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법에 호소하는 순간, 노동자들은 대형 로펌, 즉 승소할 가능성이 많은 대형 로펌의 변호를 받지 못하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공익을 추구하는 변호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대형 로펌에 변호를 의뢰할 돈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한데... 반면 기업은 이러한 대형 로펌에 의뢰할 자금이 있으니... 노동관련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처럼 다윗이 이기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는 골리앗이 이기는 현실이다.


물론 능력 면에서 공익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에 뒤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더 열심히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신들의 능력까지도 기꺼이 내놓는다. 오히려 이들이 더 능력이 있고,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열정을 가지고 재판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질적인 한국 사회의 문제인 학연, 지연에 전관예우라는(법으로 전관예우를 금지한다고 하지만, 전관예우라 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예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대형 로펌에는 고위직 법조인들이, 또는 관련자들-대기업 임원, 장-차관, 유명 경제학자(경제관료), 경찰 간부 등등이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것 때문에 이들의 노력이 정당한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안녕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과 재능, 노력을 내놓는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들이 있어 안녕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노동자들을 위한 변호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총 11개의 노동자가 관련된 사건이 수록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어떤 노동자들의 사건인지 보면, 아파트 경비노동자, 핸드폰 판매노동자, 방송국 비정규직 PD, 국가정보원 전산사식 분야 여성노동자, 택시기사, 파견노동자, 현장실습생, 골프장 캐디,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형사 사건, 노동자 손해가압류 사건 등이다. 


이렇게 약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때로는 법이 이러한 약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음이 나타나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사건들 중에서 노동자들 편이 승리한 경우도 있지만 재판에서 진 경우, 또는 재판을 포기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


재판, 쉽게 말하면 정의를 추구하는 이 과정이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돈도 돈이지만 엄청나게 길어지는 재판 기간으로 인해 생업에 지장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먹고살 문제 앞에서 재판까지 가기는 많이 힘들다.


이 책의 저자처럼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고 해도, 재판은 노동자에게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거기서 진이 다 빠져버리기도 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인지하면서도 재판까지 가는 이유는, 노동자 자신의 안녕만이 아니라 노동자들 모두의 안녕을 바라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의 싸움이 되고,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힘들지만 재판까지 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 함께하는 변호사. 소중한 존재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가 비단 이 책의 저자인 윤지영 변호사만이 아니라 많이 있음을, 윤지영 변호사가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들의 이름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도 노동자를 위한 변호가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법을 통해 살아가는 변호사들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노동자들이 승리한 재판 역시 자신의 혼자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변호사-노무사-노동자-언론-그리고 노동자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된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며 법조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법(法)이라는 한자어가 물이 간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라면,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것,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곧 법의 정의라는 것을 의미할 텐데...


그렇다면 법조인은 이렇게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즉 물의 흐름을 막는 것들을 치우는 존재, 그런 존재가 바로 법조인이어야 하는데, 과연 지금까지 우리나라 법조인은 그런 존재였던가?


어쩌면 지금까지의 법조인은 (윤지영 변호사와 같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고 이들은 예외라 할 수 있지만, 대체로 대형 로펌을 비롯해, 정치 검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편에서 판결을 하는 판사들을 주로 지칭한다) 물의 흐름을 오히려 방해하거나 막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검사들의 모습, 또 재판장의 모습 속에서 그러한 존재들을 발견하고는, 물의 흐름을 막는 이러한 법조인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법조 개혁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는데...


여전히 한국의 노동자들이 안녕하지 못한 현실,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노동자였던 사람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 이제 사람이 아니라 사회분위기로 또 제도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우리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다.


저자의 이 말이 실현되는 한국이라면 정말 노동자들이 안녕한 세상이지 싶다.


'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일하다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세상, 헌법에 있는 권리를 누구나 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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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속력으로 당신이 서 있다'('시인의 말')


  움직임과 멈춤이 한 문장 안에 있다. 서로 용납할 수 없는 말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 이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말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도대체 무슨 뜻이지? 전속력으로라는 말은 속도를 지니고 있는데, 서 있다는 멈춤으로 다가가다니...


 이 문장에서 '전속력'과 '서 있다'를 함께보면서, 어쩌면 서 있음 자체가 전속력으로 자신을 내몰고 있는 행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앞에 서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온 존재, 아니 서 있기 위해서 달려나가려는 몸을 전속력을 다해 반대편으로 끌어당기는, 그야말로 작용을 제어하는 반작용.


이러한 작용과 반작용. 대등한 힘으로 맞서는, 그래서 작용과 반작용의 힘이 같을 때 멈춤, 즉 정지 상태가 될 수밖에 없음을.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 그러한 존재다. 나 역시 당신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 그것이 사랑일 것이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때에 사람들은 이러한 작용과 반작용의 힘이 같은, 하여 사랑에 멈춰있게 된다.


그렇다면 시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무엇인가? 시인이 전속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서 있을 때, 우리 역시 전속력으로 시에 다가와 서 있게 되면 이때서야 작용과 반작용이 대등해지고, '시' 앞에서 우리는 서 있게 된다.


단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시와 함께하게 된다. 그렇게 시는 우리와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는 그냥 하나가 아니다. 여럿인 하나다.


하나로 보이겠지만,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서 있기 위해서 작용과 반작용이 끊임없이 균형을 이루듯이 시는 시 속에 수많은 여럿이 서 있는 상태.


그런 시를 읽는 일은 참, '전속력으로 당신이 서 있다'는 시인의 말에서 '당신'을 '시'로 바꾸면, 시에 담겨 있는 수많은 힘들, 움직임들을 의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수많은 힘들, 움직임들이 시에 있기에 시는 멈춰 있지만 늘 움직이고 있다.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시를 이해했다고 하겠는데, 시의 움직임에 휩쓸려 들어가고 만다. 이게 이 시집을 읽은 소감이다.


즉, 멈춰 있는 듯한 시에게 말려들어가 시 속 수많은 움직임에 휘둘리게 된 상태. 하... 참. 제목이 된 시 '무표정'에서 그랬다. 소용돌이에 말려들어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삶이라는 소용돌이와 시라는 소용돌이가 융합이 되어 더 큰 소용돌이를 만든 상태. 늘 다가오는 요일들, 날들... 하지만 그 날들은 결코 멈춰있지 않는다. 전속력으로 달려와 서 있지만, 그 속에는 다시 속도와 속도가 방향을 달리해 있을 뿐. 하여 멈춤으로 인식하는 날들이 결코 멈춤이 아님을.


무표정


  월요일이 비처럼 내리는 밤 일요일 밤 여관 같은 밤 화요일이 엿보는 밤 눈과 시선이 겉도는 밤 0과 1 사이에 세워진 정신병원을 세는 밤 그림자가 피의 성분으로 느껴지는 밤 따질 수 없는 밤 산 잠자리를 흙 속에 묻고 물을 주는 밤 눈물 대신 혓바닥을 삼키는 밤 훔친 메모지와 훔친 연필이 서로를 노려보는 밤 떠나는 기차 대신 떠나온 금요일을 응시하는 목요일 밤 버림받은 수요일 밤 수태되기 전날 밤 기억나지 않는 밤 구운 쥐가 밥상 위에 오른 밤 앙상한 토요일 밤의 이마를 관통한 총탄 자국 웃는 밤


장승리, 무표정, 문학과지성사. 2021년. 19쪽


분명 일월화수목금토라는 요일들인데... 이 요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니 이 요일들은 전속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서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다가온 날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그냥 그렇게 왔군, 갔군 하면서 표정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보내지는 않았는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각 요일은 전속력으로 다가오고 또 다른 요일들에 의해 밀려나기도 하지만, 그 날들은 모두 우리의 삶 안에 있음을, 모두가 무표정이 아니라 표정을 지니고 있음을.


시 제목이 무표정인데, 무표정이야말로 수많은 표정들이 대등하게 모여 지닌 표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시인데... 수많은 날들이 무의미하게 그냥 흘러가지 않듯이, 무표정 역시 수많은 표정의 모여 있는 순간이라는... 우리는 그 무표정 속에서 표정들을 찾아야 함을, 이 시를 통해서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해석 역시 전속력으로 다가와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인 '시'를 내가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겠지만...


이 시를 통해 내가 만나는 사람들, 존재들, 아니면 내가 보내는 시간들, 날들 속에 있는 다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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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평범 -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상
장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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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모두의 평범함‘을 되찾기 위해 꼭 필요한 법, 그 법의 필요성을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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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땅에서 길어 올린 농부 시인의 사유들
서정홍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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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는다. 겸허하게 자연에 따르며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려 한다. 그런 사람들을 '농부'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없는 듯 대우받는 존재도 농부다. 장래희망에 농부가 되겠다고 하는 학생도 거의 없고, 있어도 왜?라는 질문을 다시 받기 십상이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법조인이 되거나, 의료인이 되거나 또는 정치인이 되면 사람들이 와, 출세했네 하지만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어쩌다? 안됐네 하는 듯한 눈길을 받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농부는 중요하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직업 중 하나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존재인데, 누군가 그랬다. 반도체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식량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우리는 며칠 먹지 못하면 죽는다. 삶이 끝난다. 그렇게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 농사다. 그런데도 농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현실.


쉽게 이야기한다. 반도체를 비롯한 공산품을 팔아서 식량을 사오면 되지. 돈만 있으면 된다는 발상이다. 그렇지만 돈 주고 살 수 없을 때도 있다. 지금처럼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으로 치달으면 전세계적으로 식량난이 올 수 있다.


자기 나라도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데, 돈을 많이 준다고 식량을 수출할까? 그렇지 않다. 돈보다는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예측하기 힘들어지는, 또 심해지는 기후 재앙 앞에서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 생존이 되어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이 책에서도 기후 위기로 인해 씨앗을 뿌릴 시기를 가늠할 수 없거나, 또 심어놓은 작물들이 죽거나 병들어 안타까워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농사를 하는 모습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농부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존재, 농부다. 그런 농부는 그래서 어떤 직업보다도 중요하다. 이 중요한 농부, 미래세대에게는 아직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왜? 농촌이 살기 힘드니까.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 교육, 의료 등등이 없으니까. 서정홍 농부(시인)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골인 우리 마을은 작은 병원에 가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30-40분쯤 가야 하고, 조금 큰 병원에 가려면 1시간 넘게 가야만 한다.'(302쪽)


생명과 관계 있는 병원도, 병원이 아니더라도 기초적인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농촌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치료 환경도 이런데, 교육이나 다른 문화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농촌에서 평생을 지낸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보면 '귀한 거'라고 하겠는가. 


이만큼 농촌은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떠나고 있으니, 서정홍 농부(시인)가 60대인데도 청년에 들어가게 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농촌이 이렇게 사라져가면 결국 우리 생존에도 위협이 된다. 아무리 '스마트 팜'이니 과학기술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니 뭐니 해도, (대량으로 생산하는 대농은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대농은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는 이윤을 남기는 일에 더 관심이 많으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 농사지어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우리 생존도 보장할 수 없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야 하는 것, 이 책에서 고추를 심더라도 한 밭에 몰아 심지 않고 여러 곳에 나눠 심는 이유도 또 한 밭에 하나의 작물만 심지 않고 다양한 작물을 심는 것도 땅도 살리고 다른 생명체들도 살리고, 결국은 사람을 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마을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농부 한 사람 살리려면 백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211쪽)는 말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식탁에 오른 농산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농산물이 내 식탁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누구의 땀과 시간이 들어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도시에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량에 관심을 가진다면, 자연스레 농부(농업, 어업, 축산업 등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로 쓰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관심을 가지면 농부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내 식탁에 오른 음식들에 농부들의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농산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를 아마도 최소한으로 배출하게 되고, 또 돈으로만 사는 물건이 아님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내용들,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농부, 시인 서정홍의 글이 모인 이 책.


이런 농부의 삶을 통해 배운 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 


'저는 농부가 되고 나서 스스로 깨달은 게 참 많습니다. 첫 번째 깨달음은, 내 몸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땀 냄새가 바로 사람 냄새라는 걸 ~ 두 번째 깨달음은, 들녘에서 농사일을 할 때는 쓸데없는 욕심과 잡념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직업 가운데 농부들이 죽음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깨달음은, 사람은 돈과 권력과 명예 따위에 기대어 사는 게 아니라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산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깨달음은, 따라 살고 싶은 스승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57-58쪽)


읽으면서 따스함이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스며든다. 그러면서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단지 식량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존재에 이렇게 다른 존재들의 땀과 시간, 사랑이 들어 있음을...


그러다,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농촌 아이의 이 말... 부끄럽다.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삶을 돌아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


"선생님, 똑똑한 어른들한테 배울 게 딱 한 가지 있어요."

"한 가지라? 모시 궁금하네요."

"저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요. 따라 살고 싶은 삶은 눈곱만치도 없는데, 입으로만 우릴 가르치잖아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동생도 다 알아요. 우리 미래를 어른들한테 맡겨서는 안 된다고요."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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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
라미 카민스키 지음, 최지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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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 외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이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있다니... 그것도 심리학에서 쓰고 있었으니,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이향인, 영어로 'OTROVERT'라고 하는데, 이 말의 기원은 스페인어란다. 이 책의 저자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근본 요소는 '남들과 다른 방향'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향인otrovert'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스페인어에서 'otro'는 '다른'을, 'vert'는 방향을 뜻한다. 말 그대로 'otrovert'는 '다른 방향을 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18쪽)


'다른 방향'이라고? 어떤 방향의 차이지? 책에 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보통 우리는 사람들을 내향인, 외향인으로 분류를 하지만, 이들이 지닌 공통점은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방향은 공동체(집단)에 들어가 있든, 들어가 있지 않든 모두 공동체를 향한다는 것. 즉 소속을 지니려는 성향. 집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향인'은 다르다. 이들은 얼핏 공동체에 속하고, 또 공동체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이들이 향하는 방향은 공동체 내부가 아니라 공동체 밖이라고 한다. 이들은 집단에 속해 있어도, 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도 늘 개인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그래서 집단 속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한다.


이런 이향인의 핵심 특성은 무엇일까? 저자는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37쪽)고, '언제나 관찰자일 뿐, 진정한 참여자가 되지 못한'(38쪽)다고 하고 있으며, '관행을 따르지 않고'(39쪽),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한다'(41쪽)고 한다.


자, 이들의 특성을 보라.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덕목 아닌가.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 그리고 관행을 따르지 않는 자세, 여기에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직장을 잘 살펴보라.


이들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우리가 공동체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즉 일로 맺어진 관계이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 같은 장소에 모여 일을 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나마도 요즘은 재택 근무라고 해서 개인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공동체 지향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직장 생활을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이향인들, 이들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그들을 질병을 앓는 사람, 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저자가 의사로서 만나본 많은 이향인들이 이렇게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더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다고도 하니...


'이향인'이라는 특성을 알게 되면 사람을 어느 한 부류에 집어넣고 판단하는 일을 삼가게 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도 있고, 그들의 성향에 좋고 나쁨, 또는 옳고 그름을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그래서 다른 존재들과 관계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


이향인이라고 해서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공동체보다는 자신을 더욱 중시할 뿐이다. 이들도 역시 보편적인 규칙들은 존중하고 지키려 한다. 저자는 '이향인은 대체로 보편적 원칙은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역적 원칙을 파악하는 데는 자주 어려움을 겪으며 그런 이유로 종종 여러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119쪽)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이 적용되는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종종 그들을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바로 '예측 가능성은 사회적 통합을 돕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장치'(120쪽)라고 하니 이런 점에서 이향인들이 오해를 사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성향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향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잘 공감한다고 한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공동체 지향성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솔하고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이향인이라는 다른 성향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왜 공동체 지향성이 없음에도 공감 능력이 뛰어날까? 그것은 '정서적 자급자족은 행복과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243쪽)인데, '이향인은... 본능적으로 배려를 택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이향인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 존재로 보기 때문'(245쪽)에 이향인은 자신의 정서가 충만하고 사람을 집단의 일부가 아닌 개인 전체로 보기에 다른 이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향인들...아마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많을 것이다. 그들을 "이상하네."라고 여기지 않고, 아,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구나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 좋을지, 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고, 다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끝부분에 '이향인 테스트'가 실려 있는데,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사람을 내향인, 외향인 또는 이향인으로 딱부러지게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는 이러한 특성들을 조금씩은 다 지니고 있을 테니. 다만 그 중 어떤 특성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는 하겠지만.


결국 이 책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부모나 교사들이 읽으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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