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땅에서 길어 올린 농부 시인의 사유들
서정홍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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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는다. 겸허하게 자연에 따르며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려 한다. 그런 사람들을 '농부'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없는 듯 대우받는 존재도 농부다. 장래희망에 농부가 되겠다고 하는 학생도 거의 없고, 있어도 왜?라는 질문을 다시 받기 십상이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법조인이 되거나, 의료인이 되거나 또는 정치인이 되면 사람들이 와, 출세했네 하지만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어쩌다? 안됐네 하는 듯한 눈길을 받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농부는 중요하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직업 중 하나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존재인데, 누군가 그랬다. 반도체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식량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우리는 며칠 먹지 못하면 죽는다. 삶이 끝난다. 그렇게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 농사다. 그런데도 농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현실.


쉽게 이야기한다. 반도체를 비롯한 공산품을 팔아서 식량을 사오면 되지. 돈만 있으면 된다는 발상이다. 그렇지만 돈 주고 살 수 없을 때도 있다. 지금처럼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으로 치달으면 전세계적으로 식량난이 올 수 있다.


자기 나라도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데, 돈을 많이 준다고 식량을 수출할까? 그렇지 않다. 돈보다는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예측하기 힘들어지는, 또 심해지는 기후 재앙 앞에서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 생존이 되어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이 책에서도 기후 위기로 인해 씨앗을 뿌릴 시기를 가늠할 수 없거나, 또 심어놓은 작물들이 죽거나 병들어 안타까워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농사를 하는 모습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농부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존재, 농부다. 그런 농부는 그래서 어떤 직업보다도 중요하다. 이 중요한 농부, 미래세대에게는 아직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왜? 농촌이 살기 힘드니까.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 교육, 의료 등등이 없으니까. 서정홍 농부(시인)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골인 우리 마을은 작은 병원에 가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30-40분쯤 가야 하고, 조금 큰 병원에 가려면 1시간 넘게 가야만 한다.'(302쪽)


생명과 관계 있는 병원도, 병원이 아니더라도 기초적인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농촌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치료 환경도 이런데, 교육이나 다른 문화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농촌에서 평생을 지낸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보면 '귀한 거'라고 하겠는가. 


이만큼 농촌은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떠나고 있으니, 서정홍 농부(시인)가 60대인데도 청년에 들어가게 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농촌이 이렇게 사라져가면 결국 우리 생존에도 위협이 된다. 아무리 '스마트 팜'이니 과학기술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니 뭐니 해도, (대량으로 생산하는 대농은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대농은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는 이윤을 남기는 일에 더 관심이 많으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 농사지어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우리 생존도 보장할 수 없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야 하는 것, 이 책에서 고추를 심더라도 한 밭에 몰아 심지 않고 여러 곳에 나눠 심는 이유도 또 한 밭에 하나의 작물만 심지 않고 다양한 작물을 심는 것도 땅도 살리고 다른 생명체들도 살리고, 결국은 사람을 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마을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농부 한 사람 살리려면 백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211쪽)는 말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식탁에 오른 농산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농산물이 내 식탁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누구의 땀과 시간이 들어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도시에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량에 관심을 가진다면, 자연스레 농부(농업, 어업, 축산업 등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로 쓰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관심을 가지면 농부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내 식탁에 오른 음식들에 농부들의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농산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를 아마도 최소한으로 배출하게 되고, 또 돈으로만 사는 물건이 아님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내용들,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농부, 시인 서정홍의 글이 모인 이 책.


이런 농부의 삶을 통해 배운 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 


'저는 농부가 되고 나서 스스로 깨달은 게 참 많습니다. 첫 번째 깨달음은, 내 몸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땀 냄새가 바로 사람 냄새라는 걸 ~ 두 번째 깨달음은, 들녘에서 농사일을 할 때는 쓸데없는 욕심과 잡념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직업 가운데 농부들이 죽음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깨달음은, 사람은 돈과 권력과 명예 따위에 기대어 사는 게 아니라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산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깨달음은, 따라 살고 싶은 스승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57-58쪽)


읽으면서 따스함이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스며든다. 그러면서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단지 식량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존재에 이렇게 다른 존재들의 땀과 시간, 사랑이 들어 있음을...


그러다,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농촌 아이의 이 말... 부끄럽다.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삶을 돌아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


"선생님, 똑똑한 어른들한테 배울 게 딱 한 가지 있어요."

"한 가지라? 모시 궁금하네요."

"저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요. 따라 살고 싶은 삶은 눈곱만치도 없는데, 입으로만 우릴 가르치잖아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동생도 다 알아요. 우리 미래를 어른들한테 맡겨서는 안 된다고요."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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