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아와 페소아들 제안들 6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워크룸프레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행우주, 다중우주.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와 또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는 나. 이것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는 지구에서는 유일한 존재이고, '또 다른 나'는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나는 만나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다만, 다른 내가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짐작하기만 할 뿐. 즉 현실이 아닌 가상이라고 생각할 뿐.


그런데, 이 지구에도 수많은 나'들'이 있다면... 평행우주가 아니라 평행지구라고 해야 할까? 지구 곳에서, 아니 지구의 어느 한 나라에도 수많은 나'들'이 있다면... 그들이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도플갱어'와는 다르게, 속설로는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음에 이른다고, 즉 두 존재가 함께 존재하지는 못한다고 하기도 하니, 다중(평행)우주 속의 '나들'은 그런 도플갱어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 '해리성 정체성 장애'와는 어떻게 연결이 될까?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인격들, 한 인격이 한 행동을 다른 인격이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이것은 도플갱어라는 말과도 다중(평행)우주라는 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상태. 어쩌면 인간이란 바로 이렇게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또는 하나 속에 여럿이 함께 있는, 그 여럿이 하나 속에 통합되어 하나로만 나타나기도 하지만, 여럿이 각자가 하나가 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 아닌가.


하나의 인격만이 발현되든, 여러 인격이 발현되든 그것이 인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다양한 면이 아닐까. 


그러니 인간을 어느 한쪽으로만 규정하는 일은 없어야겠는데... 이런 많은 용어들이 생각난 것은 바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 책 [페소아와 페소아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을 [페소아와 페소아들]이라고 붙인 것은 페소아라는 포르투칼 작가가 페소아라는 이름의 단일한 인격만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페소아들이라는 다중 인격으로 존재했다는 것.


어떤 때는 페소아라는 인격이 또 다른 때는 페소아들에 해당하는, 이 책의 번역 용어로는 '이명(異名)'의 인격들이 나타나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시, 희곡, 소설, 인터뷰 등등 다양한 페소아들이 각자 특성있는 글로 나타난다.


페소아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이명들에 대해 밝히고 있기도 한데, 어떤 인격들은 이명(異名)이 아니라 이명에 준한다는 의미로 준(準)이명이라고도 했으니...


해리성 정체성 장애와는 달리 페소아는 자신이 지닌 다른 인격들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러한 인격들이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페소아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들 이름으로 발표한 글들을 실음으로써, 그들 나름대로 개성을 지니고, 다른 문학을 지향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한다.


여기에 이명이 아니라 본명 편에서 페소아가 직접 밝힌 일들도 수록함으로써, 페소아란 작가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때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페소아는 그런 다양한 자신을 인식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여 그는 이 지구에서, 그 중에서도 포르투칼이라는 나라에서 여러 페소아들로 살아가면서 작품활동을 한 사람. 그 많은 페소아들 중에서 어느 누구로 페소아를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그의 이명에 관한 말... 이 말을 통해 페소아는 다양한 페소아들로 작품활동을 했음을, 그것이 바로 그임을 알게 해준다.


'내 이명들의 정신적인 기원은, 나의 근본적이고 한결같은 탈개성화와 가장(假裝)의 성향이지. ... 어릴 적부터 난 내 주변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지인들로 나를 둘러싸는 성향이 있었지.'(325-32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시. 충격을 준다. 수직이 수평을 이룬다니... 하, 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허만하 시인은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시집을 냈는데, 김정원 시인은 비는 수평을 이룬다고 한다.


  달랑 세 행짜리. 하지만 시에서 행은 중요하지 않다. 행들의 길고 짧음이 시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지 않는다. 시는 시로서 수평이다.


  그러다 수평이라니.. 평평하다는 뜻인가? 평평은 그럼 다 똑같다는 뜻? 아니다. 이때 수평은 다름을 포용한다는 뜻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하늘 아래 제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하늘에서 보면 다 고만고만한 수평 아닐까. 그러니 비는 하늘에서 내려와 너희들은 수평이라고, 평등하다고, 그러니 모두 친하게 지내라고 하는 것 아닐까.


이 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하늘 아래 고만고만한 존재들이 자기들만이 특출난 듯 남들을 무시하는 행태들을 보면 참... 무어라 말해야 할지.


그땐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 모두는 하늘 아래서 수평이라고, 그러니 모두 잘 지내야 한다고 비가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137억 년이 넘는 우주의 역사에서 인간이 존재한 것은 아주 미미한 시간. 그런 우주의 시간에 인간의 역사란 아무리 돌출했다고 해도 평평한 역사. 이렇게 시야를 확대하면 고만고만한 우리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 있는 모습은 좀 그렇다.


더 큰 관점에서 인류를 보면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 평평하다. 우리는 수평이다. 이렇게 외치고 싶다. 그래서 시인의 말처럼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고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싶고.


  비


수직은


곧장 수평이 된다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


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13쪽.


그러다 다음 쪽으로 넘기니 또 다른 시. 와, 역시... '비'라는 시에서처럼 우리 모두가 수평이라면, 이제 남탓이 아니라 나를 돌아봐야 한다고... 내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하는 듯한 이 시.


이런 마음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면 너니 나니 하면서 구별하는 분별심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데... 내 탓이요 운동이 한물 가더니, 이젠 모두 네 탓이요, 네 탓이요 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이것도 역시 내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고 네 마음 탓을 한 것은 아닐지 우선 내 반성부터 하게 되었는데...


   겨울 호수


네가 던지는 돌에 / 내가 부딪히고 / 아픈 까닭은 //

물 샐 틈 없이 / 단단하고 차가운 / 나의 빙벽 때문이다 //

내가 물이라면 / 네가 던지는 돌이 / 상처를 내지 못하고 //

그 돌이 칼이라도 안으면 / 나비처럼 춤추며 가라앉아 / 그만 녹슬고 말 텐데 //

얼어붙은 나의 가슴을 먼저 녹여야 / 복수초도 꽃을 피우는 / 세상에 봄이 온다


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14쪽.


그래, 이런 마음의 자세라면 어찌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비난들이 난무하겠는가. 그런 비난이 들어설 틈이 없을 것이다. 칼도 받아들여 녹슬게 하는 마음일진대, 어찌 남을 향해 날을 세우겠는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내 마음을 열지 못하고 꼭꼭 닫아걸고, 얼어붙게 할 때, 그때 너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다침을 이 시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데...


이렇게 시집을 읽어가면서 마음을 녹여가고, 열어가고, 그러다가 '어머니 1~14' 연작에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하다가, '도긴개긴'이라는 시를 읽고, 햐! 이런 일, 비판도 이렇게 부드럽게 할 수 있구나, 이런 비판 누가 트집잡을 수 있겠는가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


  도긴개긴


토니 모리슨이 쓴 소설           

[The Bluest Eye]를 읽다가

먼 산 쳐다보며 뜬금없이 

지앙스런 상상을 한다


숯검정 같은 흑인을

"깜둥이"라고 경멸하는 

좀 덜 검은 혼혈아를

"참 어처구니없는 놈이네"

하고, 한국인이 비웃듯이


전라도 사람을

"홍어좆"이라고 멸시하는

일베 철부지를

"헐 느자구없는 새끼네"

하고, 콧방귀 뀌는 콩고인을


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81쪽.


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 누군가가 이런 시를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으니... 시집에 실린 시들, 마음을 푸근하게 감싼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각박해진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지닌 시들이다.


토니 모리슨의 [가장 파란 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좋은 문학은 다른 문학과 연결되어 있으니, 한 작품이 다른 작품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일을 하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기도 하니까.


(참고로 지앙스럽다에서 지앙은 전라도 사투리로 '말썽'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고 하고, '느자구없는 놈'에서 느자구는 '싹수'의 사투리라고 한다. 그런데 지앙스런 상상이 말썽이 되는 상상이라고 하기엔 좀... 그냥 남들이 하지 못하는 나만의 상상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큐큐퀴어단편선 1
이종산 외 지음 / 큐큐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이해받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이야기가 되었다. / 이야기의 힘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 살아 있게 하고 사랑하게 한다. / 그러니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기획의 말'에서. 8-9쪽)


'퀴어'란다.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여기는, 그러나 정상이라는 범주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러한 정상이라는 범주를 확장하면 '퀴어' 역시 정상이라는 범주에 들어오게 된다. 


사랑이라는 범주에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일 수가 있는데도 굳이 사랑을 종류로 나누고, 그 종류에 따라 '정상/비정상'의 범주에 넣으려고 하기도 한다.


어느 한 쪽 범주에 넣은 것이 '비정상'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러니 기획의 말에서 말한 '이해받기 위해/이해하기 위해'라는 말, 무언가를 의식하는 말이다. 


이해받기 위해서, 또는 이해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는 다른 세계를 우리 세계로 들여오기 때문인데... 다른 세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며, 살아가게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끝이 아니다. 이야기로 시작된 사랑은,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사람들 마음에 남아 있는다. 이야기로 남아 있기도 하고, 또 사랑으로 남아 있기도 한다. 


다가온 사랑. 그러한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와 더불어, 또 이야기 없이도 사랑은 삶 속에 남아 있다. 이러한 사랑을 어떤 특정한 범주에 넣으려고 하는 것, 이것 자체가 이야기의 힘을 망각하는 행위다.


이야기는 어느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속하고,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것. 그냥 이야기로 존재하면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가 바로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은 어떤 범주 속에 갇히기도 하지만, 어떤 범주에도 갇히지 않는,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것이 사랑이다.


이 소설집에는 그러한 '사랑'이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펼쳐진다. 6명의 작가가 펼치는 이야기. 6명의 작가가 보여주는 사랑. 이 사랑 이야기를 읽고, 이 사랑 이야기가 끝나도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사랑은 우리 마음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짧은 소설들이다. 또 이 소설집은 특징이 있는데, 각자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의 변주라는 것이다. 


이종산 '별과 그림자'            <-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김금희 '레이디'                 <-   제임스 조이스 <더불린 사람들> 중에서 '에러비'

박상영 '강원도 형'              <-   오스카 와일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임솔아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   허먼 멜빌 '선원, 빌리 버드'

강화길 '카밀라'                 <-   조지프 토머스 세리든 르 파누의 '카밀라'

김봉곤 '유월 열차'              <-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작가가 이 작품들을 의식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작가들이 참조한 작품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먼저 읽었다면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읽는 재미가 있을 테지만.


각 작품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소설집에서는 '퀴어'라 할 수 있는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한 사랑을 '비정상'이라는 틀에 가둬,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당장 멈추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사랑은 모두 정상이고, 비정상이다. 우리 마음 속에 들어찬 사랑은 때로는 사람을 너무도 평범하게 만들지만, 어떤 때는 너무도 비범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이렇게 사랑은 모두 '퀴어'함을,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여기에 작가들이 참조한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니, 이야기가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그야말로 '퀴어'한 이야기들을 통해 사랑의 여러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소설집의 이야기들은 끝났지만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
성해나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한국을 말하다] 두 번째 책이다. 2024년에 나온 소설집을 읽고, 이렇게 한국의 상황을 작가들이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단 생각을 했다.


신문에 연재하고, 그 결과물을 단행본으로 냈다고 하는데, 신문에 연재한다는 조건인지 분량이 매우 짧다. 아주 짧은 소설들. 어떤 이는 엽편(葉片) 소설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손바닥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는 그냥 외래어를 써서 '콩트conte'라고 하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라. 이번 소설집은 214쪽인데, 참여한 작가가 19명이다. 즉 19명의 작가가 214쪽에 걸쳐, 그것도 기획의 말이 9쪽까지 있고, 각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한 장에 걸쳐서 작가 소개와 제목이 있으니 한 소설 당 10쪽 정도의 분량이라고 보면 된다. 


10쪽 정도의 분량에 한국 현실을 담고 있다? 신문에 한번에 연재가 끝나야 한다면 이 정도 분량일 수밖에 없고, 이 정도 분량이면 묘사보다는 설명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설명, 요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김기태가 '효율'이라는 주제로 쓴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라는 작품이다.


아예 이 작품에서는 묘사를 포기한다. 요약 설명을 하겠다고 대놓고 선전한다. 바쁜 시대, 빠름을 추구하는, 느림이란 비효율적이라는 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작가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소설, 한국을 말하다' 지면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실제로는 약 250장인 소설 전문을 압축하여 그 줄거리와 주제만 설명하기로 했다. 독자들은 단지 소설처럼 보이려고 늘어놓은 묘사들을 애써 읽을 필요없이 핵심만 취하면 되겠다. 즉 이것은 소설 읽어주는 소설이다.'(김기태,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에서. 이 책 29쪽.)


이런 소설들이 모여 있다. 하여 소설집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책의 편집이나 기획 자체가 요즘 추세에 맞게 쇼츠(반바지라는 뜻이 아니라 짧은 영상이라는 뜻으로)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용이 조금만 길어져도 다른 영상으로 넘어가는 모습들. 하여 짧은 영상들, 누구 말대로 3초 안에 시선을 잡지 못하면 실패한 영상이라고 하는 쇼츠들의 홍수 속에서 소설 역시 긴 흐름의 장편소설보다는 짧은 소설이 더 잘 읽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들을 떠나서 이렇게 쇼츠와 비슷한 이 소설집은 우리에게 2026년 한국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점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문제점을 우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문제를 인식한 다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 아무리 쇼츠가 유행하는 이 시대라 해도, 쇼츠로 인해 흥미를 느낀 점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려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 소설집에서 다루는 2026년 한국의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이 지금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가. 주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제 역시 작가 수에 맞게 19개다.


'인공지능, 효율, 갓생, 탈덕, 도파민 중독, 배달 음식, 챗GPT, 나이 듦, 7세고시, 입시, 퇴사, 불임, 금쪽이, 정치 갈등, 계엄, 그루밍, 노벨문학상, 목소리, 전세 사기'


하나같이 지금 한국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될 문제들이다. 그것을 작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아주 무겁지 않게 툭 툭 작품을 통해 건드려주고 있다.


자, 이게 한국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야. 이것이 우리 현실이야.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있어? 하는 듯하다.


짧은 분량으로 결말을 내지 않는다. 아니, 결말을 낼 수 없다. 모두 진행 중인 문제이기에. 다른 사람들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또 겪어야 할 일이니까. 겪어야 할 일에서 이 중 몇몇이라도 빠졌으면 좋으련만,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것 또한 문제다.


이 작품 중에 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결말을 지닌 작품이 성혜령이 '도파민 중독'을 주제로 쓴 '방콕'이란 소설이다. '방콕'이 사람들이 여행을 자주 가는 태국의 방콕이 아니라 '방에 콕 박혀 있다'는 뜻의 방콕이다. 


그러니 '방콕'이라는 말에는 외부에 관심을 끊고 자신의 세계에서만 지낸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자신의 세계에서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도파민'이다. 즉 자신의 기분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주는 요소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상태에서는 외부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도 나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하기는 해도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그냥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남들에게 물을 뿐이다. 이 역시 방콕을 벗어나지 않는 행위다.


직접 부딪히는 이웃의 일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웃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이웃의 신호를 알 수가 없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작가는 '방콕'이란 소설을 통해서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들이 어떻게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단절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도파민'에 해당하는 것들이 지금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짧은 소설이지만 긴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이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짧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상상으로 채워가기 시작하면 무지무지하게 긴 소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긴 소설은 바로 우리가 삶에서 살아가면서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을 읽고 우리 사회를, 자신의 삶을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팔레스타인 번역은 잊혀지는 것에 대한 기억이고,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게 하는 저항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