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시. 충격을 준다. 수직이 수평을 이룬다니... 하, 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허만하 시인은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시집을 냈는데, 김정원 시인은 비는 수평을 이룬다고 한다.


  달랑 세 행짜리. 하지만 시에서 행은 중요하지 않다. 행들의 길고 짧음이 시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지 않는다. 시는 시로서 수평이다.


  그러다 수평이라니.. 평평하다는 뜻인가? 평평은 그럼 다 똑같다는 뜻? 아니다. 이때 수평은 다름을 포용한다는 뜻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하늘 아래 제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하늘에서 보면 다 고만고만한 수평 아닐까. 그러니 비는 하늘에서 내려와 너희들은 수평이라고, 평등하다고, 그러니 모두 친하게 지내라고 하는 것 아닐까.


이 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하늘 아래 고만고만한 존재들이 자기들만이 특출난 듯 남들을 무시하는 행태들을 보면 참... 무어라 말해야 할지.


그땐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 모두는 하늘 아래서 수평이라고, 그러니 모두 잘 지내야 한다고 비가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137억 년이 넘는 우주의 역사에서 인간이 존재한 것은 아주 미미한 시간. 그런 우주의 시간에 인간의 역사란 아무리 돌출했다고 해도 평평한 역사. 이렇게 시야를 확대하면 고만고만한 우리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 있는 모습은 좀 그렇다.


더 큰 관점에서 인류를 보면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 평평하다. 우리는 수평이다. 이렇게 외치고 싶다. 그래서 시인의 말처럼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고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싶고.


  비


수직은


곧장 수평이 된다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


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13쪽.


그러다 다음 쪽으로 넘기니 또 다른 시. 와, 역시... '비'라는 시에서처럼 우리 모두가 수평이라면, 이제 남탓이 아니라 나를 돌아봐야 한다고... 내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하는 듯한 이 시.


이런 마음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면 너니 나니 하면서 구별하는 분별심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데... 내 탓이요 운동이 한물 가더니, 이젠 모두 네 탓이요, 네 탓이요 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이것도 역시 내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고 네 마음 탓을 한 것은 아닐지 우선 내 반성부터 하게 되었는데...


   겨울 호수


네가 던지는 돌에 / 내가 부딪히고 / 아픈 까닭은 //

물 샐 틈 없이 / 단단하고 차가운 / 나의 빙벽 때문이다 //

내가 물이라면 / 네가 던지는 돌이 / 상처를 내지 못하고 //

그 돌이 칼이라도 안으면 / 나비처럼 춤추며 가라앉아 / 그만 녹슬고 말 텐데 //

얼어붙은 나의 가슴을 먼저 녹여야 / 복수초도 꽃을 피우는 / 세상에 봄이 온다


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14쪽.


그래, 이런 마음의 자세라면 어찌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비난들이 난무하겠는가. 그런 비난이 들어설 틈이 없을 것이다. 칼도 받아들여 녹슬게 하는 마음일진대, 어찌 남을 향해 날을 세우겠는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내 마음을 열지 못하고 꼭꼭 닫아걸고, 얼어붙게 할 때, 그때 너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다침을 이 시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데...


이렇게 시집을 읽어가면서 마음을 녹여가고, 열어가고, 그러다가 '어머니 1~14' 연작에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하다가, '도긴개긴'이라는 시를 읽고, 햐! 이런 일, 비판도 이렇게 부드럽게 할 수 있구나, 이런 비판 누가 트집잡을 수 있겠는가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


  도긴개긴


토니 모리슨이 쓴 소설           

[The Bluest Eye]를 읽다가

먼 산 쳐다보며 뜬금없이 

지앙스런 상상을 한다


숯검정 같은 흑인을

"깜둥이"라고 경멸하는 

좀 덜 검은 혼혈아를

"참 어처구니없는 놈이네"

하고, 한국인이 비웃듯이


전라도 사람을

"홍어좆"이라고 멸시하는

일베 철부지를

"헐 느자구없는 새끼네"

하고, 콧방귀 뀌는 콩고인을


김정원. 아득한 집. 푸른사상. 2021년. 81쪽.


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 누군가가 이런 시를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으니... 시집에 실린 시들, 마음을 푸근하게 감싼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각박해진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지닌 시들이다.


토니 모리슨의 [가장 파란 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좋은 문학은 다른 문학과 연결되어 있으니, 한 작품이 다른 작품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일을 하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기도 하니까.


(참고로 지앙스럽다에서 지앙은 전라도 사투리로 '말썽'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고 하고, '느자구없는 놈'에서 느자구는 '싹수'의 사투리라고 한다. 그런데 지앙스런 상상이 말썽이 되는 상상이라고 하기엔 좀... 그냥 남들이 하지 못하는 나만의 상상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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