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이 아닌 네트워크


  이번 호에 실린 글 중에 우리나라 지방자치를 이야기하는 글의 제목이다. 광역시와 도를 통합하겠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런 통합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문제제기.


  통합이 자칫 독점으로 갈 수 있고, 다양성보다는 단일성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래서 통합보다는 다양한 지역들의 네트워크가 더 바람직하다고... 다양성이 확보되면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간다면 어느 힘센 지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글.


이 글을 세계에 적용하자. 지금 세계는 전쟁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미국과 이란-레바논 전쟁. 후자를 과연 전쟁이라고 해야 하는지, 일방적인 침공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고, 트럼프조차도 이는 전쟁이 아니라 군사작전이기 때문에 의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것이 전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한 나라를 폭격하는 행위가 단순한 군사 작전이라고? 이 상태가 바로 힘센 자들이 다른 곳들을 통합하려 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강자의 논리만 내세워 약자를 핍박하는 것. 자칫 통합이란 이런 식으로 강자에게 흡수되는 약자들의 모습을 지니게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각종 전쟁(자기 말대로 군사작전)을 벌이는 이유도, 약자들과의 협력 네트워크가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을 자신들에게 통합했을 때 미국의 이익이 더 커지기 때문이고, 지금까지 지녀왔던 패권을 잃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나라들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통합을 바라는 자, 결코 네트워크로 주체성을 지니면서 협력을 하는 상태를 원하는 자가 아니다. 그런 자이기에 자신의(그는 미국의 국익이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기득권을 지닌 자들의 이익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미국 시민들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통합하려는 모습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한다.


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통합이 아니라 네트워크다.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인데,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을 매달기 위한 줄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종을 매달 구멍에 맞는 하나의 쇠줄은 종을 지탱하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다고. 


그렇게 굵은 줄 하나로는 매달 수 없었는데, 작은 줄 여럿을 꼬아 놓으니 종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었다는... 굵은 줄 하나를 통합이라고 보면, 작은 줄 여럿이 꼬여 있는 것은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몇몇 강대국으로 통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나라들이 서로 네트워크로 협력할 때 인류를 위해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네트워크를 거부하는 자, 바로 트럼프다. 그는 세계를 미국이라는 나라로 통합하려 한다.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왜 그럴까?


통합은 성장주의의 토대


통합을 하려는 이유는 덩치를 키우려는 것이다. 왜 덩치를 키우는가? 바로 성장을 위해서다. 큰 것이 더 클 가능성이 많고 작은 것은 큰 것에 병합당할 수 있기에 덩치를 키우는 것. 그래서 통합은 바로 성장주의의 토대다.


많은 언론에서 성장률, 성장률한다. 성장률이 적으면 경제가 어렵고 마치 나라가 위험에 빠질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성장이 안 된다면 우리가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성장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과거에 비해 지구는 전체적으로 얼마나 성장했는가?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행복해졌는가? 평등해졌는가? 성장의 과실을 있는 자들이 거의 독식하지 않았던가. 불평등이 더 늘고, 사람들은 더욱 바쁘고, 힘들게 살지만 살림은 나아지지 않는 상태. 


게다가 통합이 무조건 내쪽이 되어야 한다는 강압으로 나아가니, 그렇지 못한 존재들은 그 선 밖으로 추방당하고 있는 상황.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성장을 추구해온 결과 아니던가.


바로 성장하기 위해서 통합을 하고, 통합을 하면 거기에 들지 못하는 존재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의 반복. 미국이 패권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이 지지부진하다고 여기는 트럼프는 미국의 성장을 위해서 통합, 관세든 전쟁이든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쓰고 있다. 


이런 미국식 통합이 트럼프 이전부터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이번 호에 실린 '페트로 달러와 기후위기'라는 글에 잘 나와 있다.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하겠다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비밀 협정을 맺었다는... 이게 무슨 짓인지...세계적으로 거래되는 화폐조차도 통합을 하려 한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서였으니... 각 나라가 석유를 거래하는 화폐를 자국의 화폐로 해보라. 달러가 패권을 유지할 수가 없다. 페트로 달러를 통합이라고 한다면, 각국의 화폐를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이런 성장을 위한 통합이 결국 군사력까지 동원해 세계를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성장주의는 제로섬 게임


바로 이렇게 통합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한 곳이 플러스(+)가 되면 다른 곳은 마이너스(-)가 된다.


다 같이 성장하지 못한다. 뭐 함께 성장한다 치자. 그건 인간에게만 해당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제국주의부터 인간도 함께 성장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인간의 성장이 자연의 소멸로 가고 있지 않은가. 자연자원을 파괴하면서 인류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지구만으로 부족하니 이제는 달에서 자원을 얻자는 주장도 나오고, 화성에도 이주를 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인류의 성장은 다른 존재들의 쇠퇴로 이어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이 제로섬 게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 인류가 머리를 맞대어도 신통치 않을 판에, 인류끼리도 성장을 위해서 서로를 갉아먹고 있다. 미국의 성장을 위해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트럼프 행정부처럼. 


이제 이런 성장주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통합을 주장하기보다는 네트워크를 주장해야 한다. 통합이 아니라 연합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덩치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작은 덩치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나라끼리도 연합, 한 나라 안에서 지역끼리도 연합. 그리고 그 지역은 서로가 서로를 알고 의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소규모 지역들이 네트워크로 연결이 되면 그것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번 호를 읽으면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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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의 질문 - AI와 우리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13
미리엄 메켈.레아 슈타이나커 지음, 강민경 옮김 / 한빛비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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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창발성으로 가는 길이다. 질문을 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자율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의문을 지니지 못하는 존재는 입력한 대로만 결과를 산출하지 그것에서 다른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라면, 그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라면,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면 더더욱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부터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까지도.


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게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든 우리에게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인공지능에 대해서 너무 환호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부정만 해서도 안 된다고. 적절한 질문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하여 책의 작은 제목에 'AI와 우리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13'이라고 되어 있는데, 굳이 질문 13개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거역할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라고 보면 된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은 이 말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종말론과 기술의 유토피아를 넘어선 세상은 AI로 인간을 돕고, 더 강하게 만들고,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곳이어야지 대체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407쪽)


이 말에 의하면 인간이 좀더 편리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인공지능을 개발해야지,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서 개발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전쟁에 사용되는 인공지능을 보라. 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을 보라.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파괴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이런 인공지능의 개발에 대해서 세계는 아직 공통된 규제 법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핵무기와 인공지능을 비교하고 있는 부분은 의미가 있다.


'핵분열과 AI에는 실제로 공통점이 많다. 우선 신속함이다. ... 원자폭탄과 AI는 둘 다 엄청난 효력을 보이는 기술이다. ... 원자폭탄과 AI의 세 번째 공통점은 이 두 기술이 모두 국제적인 경쟁을 부추겼다는 사실이다. ... 마지막으로 원자폭탄과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는 특정 물질이 필요했다.'(395-398쪽)


하지만 원자폭탄과 같은 핵폭탄은 국제적인 협약이 -비록 전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다수의 나라가 참여하고 있고, 그 방향에 대해서는 모두 옳다고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 있는데, 아직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협약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핵무기만큼이나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핵무기를 적절히 통제하고 그것을 에너지 자원으로 이용한 것처럼, 인공지능 역시 어떻게 통제하고 이용하느냐가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들이 주장하는 'AI로 인한 인류의 멸종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대신, 그 기술이 초래할 즉각적인 위험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 데이터 보호, 차별, 콘텐츠 조정, 책임 및 지속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389쪽)는 말을 참고해야 한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유발한다는 것을 명심해서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개발에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인공지능을 개발한다는,따라서 인간의 행복을 저해하는 쪽으로 인공지능이 사용되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서로 공존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 단지 인공지능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들과 함께 이 지구에서 공존하는 삶. 그러한 꿈을 인공지능은 실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파괴가 아니라 상생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을 위해서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 것이다.


질문하는 능력. 이것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한 방편일 것이고, 저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서 우리 역시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질문을 잊지 않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인공지능이 초래할 세상을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로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마치 당신은 어떤 세상이 오기를 바라십니까?라고 묻기라고 하듯. 


인공지능에 대해 여러 면으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특히 인공지능에 대해서 질문을 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이 중요함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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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장소
나희덕 지음 / 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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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세상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만물의 파괴자가 되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싶다.


인간들끼리 전쟁을 한다고? 아니다. 죽어나가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도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수없이 죽어나간다. 죽어나갈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삶을 유지하기도 힘들어 진다.


그들이 살아가는 장소를 파괴하는 인간들.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으랴. 하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은 만물의 파괴자라고 해야 한다. 이대로 나가면 이런 이름을 벗어날 길이 없어질 것이다.


나희덕의 산문집이다. 2017년에 출간한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를 개정한 개정판이라고 한다. 예전에 출간된 글을 다시 손보고 낼 정도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장소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놓는 장소, 어디일까? 장소라고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장소라는 말에는 사람도, 시간도 포함되고, 추상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포함된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존재라면 바로 '마음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산문집에서 많은 장소들이 나온다. 글쓴이의 글을 따라가면서 단지 글자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간다. 글쓴이가 마음을 주는 장소에 읽는 나도 마음을 주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을 놓아두게 된다. 그 장소에... 또 글쓴이가 언급하지 않는 장소를 찾고 거기에 내 마음을 놓기도 한다. 내게도 마음의 장소가 있지, 그래, 누구에게나 마음의 장소가 있다. 


그 장소를 떠올리면서 자신을 추스리기도 할 테고... 이런 마음의 장소 중에 글쓰기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그것은 글쓴이의 이 문장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상적 시간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일이다.'(68쪽)


즉 글을 쓸 때 자신의 마음을 그곳에 놓아두게 된다. 마음을 놓아두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고 남이 본 뒷모습을 통해 내 뒷모습을 인식할 뿐인데...


그런 뒷모습이 바로 내 본연의 모습일지로 모른다는 생각.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키워준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는, 그렇다면 내 뒷모습에 나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뒷모습이 바로 내 마음의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


글쓴이는 '무엇보다도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 넘치는 거짓과 위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나마 정직하고 겸손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한 등을 가졌기 때문이다. 뒷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다.'(86쪽)고 하고 있다.


뒷모습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 그는 정직할 수밖에 없다. 꾸미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가 마음을 놓을 장소가 거창하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 간이역처럼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는 작은 장소여도 된다. 


'빠르게 달리던 기차가 잠시 속도를 늦추는 간이역들은 앞만 보고 달려가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며 지금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되묻게 하다. 그 작은 모퉁이에서 꿈과 현실, 기억과 예감은 서로 흘러들어 오롯한 공간을 만든다.'(231쪽)


그렇다. 바로 이러한 간이역과 같은 곳, 그곳이 바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장소다. 그런 장소를 지니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은 정직하고 겸손한 모습일 것이고, 인간뿐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는 사람일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지 않고 만물과 함께하는 그런 존재라고... 그의 앞모습, 뒷모습이 모두 보여줄 것이다. 그러한 마음의 장소를 지닌 사람들이 많아질 세상. 그런 세상이 바로 글쓴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이지 않을까.


나도 내 마음을 놓을 오롯한 장소를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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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제 이혼합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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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을 열자 상중(喪中)엽서가 들어 있었다."(5쪽)로 시작한다.


상중엽서... 상을 당해서 올해는 연하장을 보내지 못한다는 내용을 알리는 엽서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그런 풍습이 있다고...


그해 상을 당한 사람의 처지에서 새해를 축하할 경황이 없을 테니,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엽서를 보내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대 역시 섣부른 축하 인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상중엽서를 받으면 걱정되는 마음이 들 텐데... 소설에서 받은 상중엽서에는 남편이 죽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남편이 죽었다면 보통 반응은? '어떡하나? 마음이 많이 아프겠네. 힘들겠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소설은 여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부럽다."(8쪽)


이것이 소설의 주인공인 스미코에게 든 첫 감정이다. 그러면서 스미코는 '난데없이 솟아난 이 감정이 너무나 당혹스'(8쪽)럽다고 느낀다. 하지만 스미코는 알고 있다. 자신은 남편이 빨리 죽어줬으면 하고 바란다는 사실을.


남편이라는 존재는 스미코에게 없으면 좋은 존재를 넘어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이다. 30년이나 결혼 생활을 했는데, 남편이 견딜 수 없어진, 너무도 싫어진 스미코, 그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 특히 그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마저도 견딜 수 없게 된 스미코.


빨리 남편이 죽어 자신만의 생활을 하고 싶어하지만, 남편이 먼저 죽는다는 법이 없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신도 나이가 58세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이혼하는 것이다.


이혼? 말은 쉽다. 하지만 걸려 있는 것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다양한 것들이 얽혀 있어 쉽게 끊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결혼 생활은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아서 쉽게 풀 수가 없다. 과감히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혼이 결코 밝고 경쾌할 수 없지만 소설은 무겁지 않게 전개된다. 이혼을 하려는 스미코의 관점에서 소설이 전개되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스미코라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집안일에 충실하고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러면서도 부족한 살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는 나이 든 여성이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앞부분만 읽어도 누구도 스미코에게 '너무하네, 조금 참지.' 하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집 안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아내는 집에서 살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내를 전혀 안쓰러워 하지 않는 남편.


딱히 남편에게 이혼의 결격 사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 어른들이 말하듯이 "도박을 하나? 폭력을 쓰나? 바람을 피우나?"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 안에서 아내를 하인 부리듯이 부리는 남편에게 이혼의 결격 사유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남존여비. 가부장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부부관계는 이미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혼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기도 하고, 경제적인 고민도 있지만, 스미코는 남편에게 선언한다. "이혼하자"


이 말을 하기까지 스미코가 겪어야 했던 마음의 갈등, 고민들이 소설에서 잘 보여지고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이혼을 하려는 스미코를 응원하게 된다. 스미코가 잘살 수 있기를...


잘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힘들지라도 스미코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점차 주변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고, 당당한, 예전 고등학생 때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만큼 결혼이 스미코의 주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말인데... 스미코 부부만이 아니라 스미코의 친구들 이야기도 중첩이 되면서 왜 힘들게 참고 살면서도 이혼을 하지 않는 아내가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작가는 이혼을 하지 않고 참아가면서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이상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견뎌낼 뿐이다.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또는 비슷한 사람을 만나 남편을 욕하면서 감정을 다소 억누를 뿐이다. 스미코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이들 역시 스미코의 이혼을 마냥 비난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다양한 부부 생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의 장점은 이혼으로 인해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억지로 참으며 사는 결혼 생활보다는 이혼으로 홀로 서서 살아가는 삶도 즐거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혼한 친구들을 통해... 소극적이고 가정에만 매여 있던 스미코가 한발 한발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스미코를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안심하게 된다.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과감하게 끊을 땐 끊어야 함을... 참는 것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더욱 꼬이게 할 수도 있음을... 이혼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내는 한 방법임을 이 소설을 통해서 보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부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일방적으로 한 쪽에만 감정 노동을, 가사 노동을 하게 하는 관계는 결국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늦지 않았음을, 남존여비 사상이나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지내왔던 남편도 바뀌어야 함을... 바뀌면 부부 관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스미코의 둘째 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으니... 이 소설을 이혼 장려 소설로 읽지 말자.


오히려 이 소설은 이혼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부부 생활의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82년생 김지영]이 많이 읽혔다. 그 소설이 30대 아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제 그 아내가 20여 년이 흘렀을 때 겪게 되는 모습이라고... 남편이 그 소설 속 남편보다 더 가부장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점에서 아내가 읽어도 좋지만 오히려 남편이 읽어야 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일본에서 황혼 이혼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참고 살았던 아내들이 더 이상 견디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는 결혼 생활이 존재해서는 안 되니까.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려 하고 있다. 이젠 부부가 은퇴한 이후에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졸혼이라는 말도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아마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소설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 소설에 나오는 '부원병(夫源病)'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 부원병 : 퇴직한 남편이 근원이 되어 아내에게 생기는 병으로 '은퇴 남편 증후군 Retired Husband Syndrom) 또는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도 한다.(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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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의 테크노-차이나 탐문 뉴 노멀 탐문 2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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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국이라는 생각을 했다. 큰 나라다. 영토도 넓고, 인구도 많고 자원도 많은 나라니 그야말로 큰 나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다른 나라를 대하는 태도까지 크다면 더욱 좋겠지만, 한때 동북공정이다 뭐다 해서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속국 취급한다고 중국에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닌 사람도 많았다.


가짜 뉴스는 또 어떤가? 중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뉴스들. 그러한 일들에 중국의 책임도 있겠지만 그것이 중국만이 지어야 할 책임은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우리가 직접 겪고 있는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 파괴로 일어난 문제만도 중국에게 온전히 책임을 전가하기는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중국만이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을 따라가려는 나라들이 개발을 하기 위해서 환경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환경에 대해서는 유럽이나 미국 역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전까지는. 개발도상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환경 파괴가 더 심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다 이대로 가다간 공멸한다는 위험 신호가 나오니까 그때서야 부랴부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나친 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위치까지 가지 못했던 나라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상황도 있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이제 중국은 환경에도 신경을 쓴다고 한다. 그것도 최첨단 과학기술과 결합해서.


이것이 이 책이 이야기하는 '테크노-차이나'다. 이제 중국은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짝퉁 천국이라고 해도 아니다. 이제 중국은 짝퉁 천국이 아니라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보유한 그야말로 테크노-차이나다.


그것도 세계를 선도하는... 환경 파괴국, 탄소 최다 배출국이라는 소리를 듣던 중국이 에너지 분야에서도 신재생 에너지 쪽으로 전환해서 이제는 세계를 선도한다고 한다. 


신재생 에너지, 전기차, 바이오 산업에 인공지능, 우주 산업까지 중국은 이제 선진국을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중국을 적대시하면서 그들과 담을 쌓을 수 없음을 이 책을 읽으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중국과 담을 쌓는다는 얘기는 뒤처지겠다는 얘기와 통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만큼 중국의 발전이 놀라울 정도다.


이런 중국의 발전한 모습을 네 개로 나누어 알려주고 있는데, 1장에서는 '스페이스 차이나'라고 해서 우주 개발에 뛰어든 중국이 이제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우주 강국이 되었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2장에서는 '바이오 차이나'라고 해서 생명공학 분야에서 어떠한 발전이 있었는지, 이들이 인공지능과 결합해서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를 보여준다. 인공지능과 결합한 의료가 이미 실용화되었다는 것. 그래서 의사의 수가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이 부분을 통해서 알게 된다.


여기에 전염병 예방을 하는데, 중국에서 인공적으로 유전자를 변형한 모기를 통해 모기의 번식을 막기도 한다는 것과 이러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바이오 차이나'라고. 의료가 한참 뒤떨어진 나라가 아닐까 했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3장에서는 '그린 차이나'라고 해서 탄소 최대 배출국이라는 오명을 씻어내는 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중국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탄소 배출국인 동시에 세계 첨단의 탈탄소 기술 국가다'(131쪽)라고.


신재생에너지에 투여한 시간,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생태 문명, 순환경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4장에서는 '디지털 차이나'라고 해서 디지털 기술과 결함한 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폐부터 도시, 국가까지 디지털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2035년까지 디지털 차이나를 완성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것을 이렇게 정리했다.


'2035 디지털 차이나'의 방향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표방했다. 디지털 경제, 디지털 사회, 디지털 정부다'(181쪽) 


이렇게 네 부분에 걸쳐 중국이 얼마나 최첨단 과학기술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막연히 중국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 특히 서양을 따라한다는, 짝퉁 천국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겨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중국은 이제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다. 앞서가는 나라다. 다른 나라들을 앞에서 이끄는 나라다.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그것이 바로 중국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중국의 다른 면, 어쩌면 우리가 달의 뒷면을 보지 못하지만 달의 뒷면도 엄연히 존재하듯이, 우리가 외면하려던 중국의 모습을 저자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안 보려고 하지 말고, 보이지 않더라도 있으니 그것을 보려 해야 한다고 하는 듯하다.


저자가 중국을 너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하게 할 정도로 이 책에는 중국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우리가 보지 않았던 또는 보려하지 않았던. 그래서 설마? 에이, 중국이? 이거 너무 친중 아니야? 하는 생각은 잠시 접고 저자가 제시하는 사실들을 확인해 봐야 한다. 그러면 달의 뒷면처럼 그간 보이지 않았던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저자의 이 말 무시하고 넘어가면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는 땅은 비(非)서방이다. 그리고 그 비서구에서 형성디고 있는 새로운 인프라, 미래의 디지털 신경망의 상당수가 중국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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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4-28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의 발전 정도는 진짜 무서우리만치 나아갑니다. 전세계 이공계 석학들을 빨아들이고 있죠. 하지만 중국은 절대 대국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중국은 중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진핑과 같은 인물이 있는한..

kinye91 2026-04-28 09:51   좋아요 0 | URL
앞으로 중국을 무시할 순 없을 테니 잘 지켜보고 현명하게 관계를 맺어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