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혼합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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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을 열자 상중(喪中)엽서가 들어 있었다."(5쪽)로 시작한다.


상중엽서... 상을 당해서 올해는 연하장을 보내지 못한다는 내용을 알리는 엽서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그런 풍습이 있다고...


그해 상을 당한 사람의 처지에서 새해를 축하할 경황이 없을 테니,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엽서를 보내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대 역시 섣부른 축하 인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상중엽서를 받으면 걱정되는 마음이 들 텐데... 소설에서 받은 상중엽서에는 남편이 죽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남편이 죽었다면 보통 반응은? '어떡하나? 마음이 많이 아프겠네. 힘들겠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소설은 여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부럽다."(8쪽)


이것이 소설의 주인공인 스미코에게 든 첫 감정이다. 그러면서 스미코는 '난데없이 솟아난 이 감정이 너무나 당혹스'(8쪽)럽다고 느낀다. 하지만 스미코는 알고 있다. 자신은 남편이 빨리 죽어줬으면 하고 바란다는 사실을.


남편이라는 존재는 스미코에게 없으면 좋은 존재를 넘어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이다. 30년이나 결혼 생활을 했는데, 남편이 견딜 수 없어진, 너무도 싫어진 스미코, 그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 특히 그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마저도 견딜 수 없게 된 스미코.


빨리 남편이 죽어 자신만의 생활을 하고 싶어하지만, 남편이 먼저 죽는다는 법이 없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신도 나이가 58세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이혼하는 것이다.


이혼? 말은 쉽다. 하지만 걸려 있는 것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다양한 것들이 얽혀 있어 쉽게 끊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결혼 생활은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아서 쉽게 풀 수가 없다. 과감히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혼이 결코 밝고 경쾌할 수 없지만 소설은 무겁지 않게 전개된다. 이혼을 하려는 스미코의 관점에서 소설이 전개되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스미코라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집안일에 충실하고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러면서도 부족한 살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는 나이 든 여성이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앞부분만 읽어도 누구도 스미코에게 '너무하네, 조금 참지.' 하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집 안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아내는 집에서 살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내를 전혀 안쓰러워 하지 않는 남편.


딱히 남편에게 이혼의 결격 사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 어른들이 말하듯이 "도박을 하나? 폭력을 쓰나? 바람을 피우나?"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 안에서 아내를 하인 부리듯이 부리는 남편에게 이혼의 결격 사유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남존여비. 가부장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부부관계는 이미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혼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기도 하고, 경제적인 고민도 있지만, 스미코는 남편에게 선언한다. "이혼하자"


이 말을 하기까지 스미코가 겪어야 했던 마음의 갈등, 고민들이 소설에서 잘 보여지고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이혼을 하려는 스미코를 응원하게 된다. 스미코가 잘살 수 있기를...


잘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힘들지라도 스미코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점차 주변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고, 당당한, 예전 고등학생 때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만큼 결혼이 스미코의 주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말인데... 스미코 부부만이 아니라 스미코의 친구들 이야기도 중첩이 되면서 왜 힘들게 참고 살면서도 이혼을 하지 않는 아내가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작가는 이혼을 하지 않고 참아가면서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이상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견뎌낼 뿐이다.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또는 비슷한 사람을 만나 남편을 욕하면서 감정을 다소 억누를 뿐이다. 스미코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이들 역시 스미코의 이혼을 마냥 비난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다양한 부부 생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의 장점은 이혼으로 인해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억지로 참으며 사는 결혼 생활보다는 이혼으로 홀로 서서 살아가는 삶도 즐거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혼한 친구들을 통해... 소극적이고 가정에만 매여 있던 스미코가 한발 한발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스미코를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안심하게 된다.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과감하게 끊을 땐 끊어야 함을... 참는 것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더욱 꼬이게 할 수도 있음을... 이혼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내는 한 방법임을 이 소설을 통해서 보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부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일방적으로 한 쪽에만 감정 노동을, 가사 노동을 하게 하는 관계는 결국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늦지 않았음을, 남존여비 사상이나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지내왔던 남편도 바뀌어야 함을... 바뀌면 부부 관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스미코의 둘째 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으니... 이 소설을 이혼 장려 소설로 읽지 말자.


오히려 이 소설은 이혼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부부 생활의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82년생 김지영]이 많이 읽혔다. 그 소설이 30대 아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제 그 아내가 20여 년이 흘렀을 때 겪게 되는 모습이라고... 남편이 그 소설 속 남편보다 더 가부장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점에서 아내가 읽어도 좋지만 오히려 남편이 읽어야 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일본에서 황혼 이혼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참고 살았던 아내들이 더 이상 견디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는 결혼 생활이 존재해서는 안 되니까.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려 하고 있다. 이젠 부부가 은퇴한 이후에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졸혼이라는 말도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아마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소설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 소설에 나오는 '부원병(夫源病)'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 부원병 : 퇴직한 남편이 근원이 되어 아내에게 생기는 병으로 '은퇴 남편 증후군 Retired Husband Syndrom) 또는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도 한다.(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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