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 이름앤솔러지 1
오준호 지음 / 생각과느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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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에는 '자유'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오죽하면 대통령 연설에 자유가 몇 번이나 나왔는지를 세어 발표하기도 하겠는가? 


자유는 중요하다.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속박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유가 남을 착취할 자유, 또는 굶어죽을 자유여서는 안 된다. 자유는 평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강자의 논리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평등이 자유와 대립되는 개념이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도 있지만, 평등과 자유는 같은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다. 평등과 자유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가는 개념이다.


자유 없는 평등 없고, 평등 없는 자유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러니 자유란 말이 넘치는 이 사회에서 우리 평등이란 말도 그만큼 넘쳐나도록 하자.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작은 책에서는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1장에서 6장으로 나아가는데 동심원을 그리듯이 점점 더 평등의 개념과 내용을 확장해가고 있다.


1장은 불행 배틀 시대, 평등의 의미를 묻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불행 배틀은 경쟁으로 바꾸어도 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경쟁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남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경쟁에서 진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져서는 안 된다. 경쟁은 서로가 발전하기 위해서, 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 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경쟁이 서로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런 경쟁사회는 지양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치열한 경쟁, 승자독식주의로 흘러가고 있으니, 경쟁에 대해서 다시 물어야 한다. 경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경쟁을 공정하게 하자고 하는데, 공정에 대한 개념이 또 문제가 된다.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2장으로 넘어가면 평등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 평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평등이냐다. 형식적 평등이냐, 실질적 평등이냐를 묻는다.


우리는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3장, 평등한 시민들, 공정한 분배를 말하다로 넘어간다.


공정한 분배,,, 이것, 산수처럼 딱 1/N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분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공정한 분배다.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과 육상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똑같은 선에서 출발한다고 하면 그것이 공정일까? 아닐 것이다. 신체적 특성에 따른 출발선의 차이. 그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공정한 분배란 환상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공정한 분배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자연스레 4장으로 넘어간다.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여러가지 제도들이 마련이 되고,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져 왔다.


이 장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바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 '평등한 시민들의 공정한 분배는 '차등의 원칙'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차등의 원칙을 단순히 호소하는 정도를 넘어 제도로 만들어야 합니다.'(104쪽) 


이 차등의 원칙을 지킨다면 당연하게 5장에서 이야기하는 능력주의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게 된다.


능력주의는 결코 평등이 아니다. 능력에 따라서 대우를 받자는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회가 제공되고, 과정이 공정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말은 형식적으로 누구나 똑같은 기회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면 '지역균형주의'라든가, '소수자 우대'는 불평등하다고, 능력주의에 반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니다. 자신이 발휘하는 능력이 오로지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능력은 다르게 발현된다.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능력주의를 숭상하게 되면, 그 사회는 차별이 공고화되는 사회가 된다. 자, 능력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6장이다. 한 걸음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장에서는 기본 소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적어도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기본 소득이 주어지는 사회. 그래서 저자는 '먼저 능력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추가 소득을 준다'(174쪽)는 분배 정의에 관한 통념을 '기본 소득으로 삶을 보장하고 더 일한다면 추가 소득을 올리게 한다'(175쪽)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기본 소득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는데, 기본 소득이란 말을 기본 배당이라는 말로 바꾸자. 공유 자원은 누군가가 독점하고, 거기서 나오는 소득을 자신만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공유 자원에서 나오는 소득은 모두가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생각.


그러니 이는 소득이 아니라 배당이라고 해야 한다. 공유 자원의 정당한 배당. 우리는 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구에서 나오는 이익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배당받을 권리가 있고, 그런 배당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좀더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등은 나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평등은 나와 남을 우리라는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야 한다. 결국 다른 존재를 헤아리는 마음이 평등인 것이다.


이렇게 평등이 실현되면 개인의 자유는 더 커진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자유가 더 크게 보장되고,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자유가 제약을 받는다.


'자유, 자유'하는 이 시대,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도 우리는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헤아리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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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저 1호.


  인간이 만든 물체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떠나가고 있는 존재.


  망망한 우주를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우주선.


  시집 표지가 캄캄하다. 우주는 이렇게 암흑이다. 그리고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 역시 모른다. 캄캄할 뿐이다.


  다른 생명체가 우주에 있을까? 태양계를 겨우 지금 벗어나고 있는 지금, 빛의 속도로도 200만년이 걸린다는 안드로메다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그 밖의 우주에 도달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인간이 만든 물체가 그때까지 버텨줄까?


우리가 그린 그림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퇴색되고 사라지듯이, 보이저 1호 역시 언젠가는 제 수명을 다하지 않을까?


우주 공간에 산소가 없으니 부식이 되지 않아 고장이 나지 않을까? 그냥 관성의 법칙으로 앞으로만 나아갈까?


이 모든 일들은 미지의 세계에 속한다. 그럼에도 보이저 1호는 우주로 나아간다. 일말의 소통 가능성을 안고.


다른 외계 생명체를 만났을 때 우주에 또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지구의 언어, 지구의 문화를 담고서.


이렇게 캄캄한 암흑에서도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통하기 위해서 하나로 통일하지 않는다. 지구에 존재하는 많은 언어들을 레코드판에 담고, 또 다른 예술작품도 담아두었다.


소통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찾는 일. 그것이 바로 소통불능의 시대에 소통을 추구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다.


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로 계속 나아가는 보이저 1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의 방법이 담겨 있는데... 암흑 우주가 아닌 푸른, 창백한 푸른 점, 아주 작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란...


마치 보이저 1호가 외계 생명체를 만나 그 속에 담긴 지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들이 그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이저 1호가 찍어서 보낸 지구의 모습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는데, 그 속에 사는 우리는 마치 우주와 같이 거대한 지구라고 여기고 살아가고 있으니...


지구에 살고 있는 각 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외계인 바라보듯이 보고 있지는 않은지...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서로를 외계인 보듯이 보고 있지는 않은지... 각자 자기 말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보이저 1호에 담긴 메시지들이 이해받지 못하고 계속 우주로 나아가고 있듯이, 우리 역시 이러한 소통불능의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적어도 보이저 1호에는 소통하고자 하는 여러 노력이 담겨 있는데... 류성훈 시집을 읽다가 제목이 된 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보이저 1호. 언제 보이저 1호는 그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생명체를 만날까 하는 생각. 그러다가 우리 모두가 보이저 1호처럼 아직 소통불능의 세계에 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각자의 메시지를 담고서.


다만, 보이저 1호는 다양한 언어를 담고 있으니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자기만의 언어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이 판치는 세상은 소통불능의 세상이 된다. 


류성훈 시를 읽으면서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 봐도 좋겠다.


       보이저 1호에게

 

     물통 속에 밤이 퍼졌다

     내 붓은 차갑게 씻기고


     안부라는 건

     대개 꿈풍선일 뿐, 눈부신

     우주 방사선 속에서


     버릴 꿈이 없어서, 널 닮은

     연체동물을 그렸다 저 외행성 출신의

     물기 없는 입을, 활짝 핀

     중력 없는 팔들의 짙푸른 기별을


     축하한다

     악수하는 법도 몰랐으면서

     우리는 늘 몽상이라는 교신 위에서

     지구에서의 너를 그렸으니

     한때 색색 풍선보다 더 필요했던

     날숨을, 더운 붓을 휘갈겨 본다


     화장실 창밖이 밝아 오고

     벌어진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다

     그 금빛 껄끄러움 또한

     교신, 이라 생각했던 물음을 안고

     나는 지금 태양권의 어디쯤을

     쫓아가고 있을까


류성훈, 보이저 1호에게, 파란. 2020년. 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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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이유와 그 연결에 숨어 있는 놀라운 과학
톰 올리버 지음, 권은현 옮김 / 브론스테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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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글 제목이 영어 제목과는 좀 다르다. 영어 제목은 THE SELF DELUSION인데, 이것은 자아라는 환상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자아'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요소 아니던가. 그런 자아를 강조하다 보면, 개인에 매몰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되어 있지 않다. 개인은 개인이 아니다. 개인을 홀로 존재하는 자아라고 한다면, 그런 자아들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 점을 내내 강조한다. 자아가 환상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수많은 관계 맺기를 통해서 존재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주에서부터 미생물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글 제목은 영어 제목을 풀이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너무도 거대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중 어느 연결이 끊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지점에서 연결이 끊긴다면 자신이 지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환경에 들어설 수 있다.


너무도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너무도 길고 방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공간이 모두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연결을 잊고, '자아'라는 환상에 갇혀 살기도 한다. 연결의 끊김이 바로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음도 인식하지 못하고, 연결을 되살리는 쪽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오로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과학기술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는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지낼 것을 이야기한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결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런 연결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삶은 자연과 우주와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사는 삶이기도 하고, 또한 '나'라는 몸으로 국한시키더라도 내 몸에도 수많은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최근 과학이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인 중심주의에서 연결성을 중심에 놓는 사고와 행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한 나라만 잘 살아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을 저자는 실과 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실의 삶에서 벗어나 천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자아정체성의 범위가 넓어지고, 자신이 하나의 실이라던 인식에 머물지 않고 전체 천의 웅장함을 볼 수 있게 관점이 바뀌면서, 우리는 모든 인류의 더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노력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291쪽)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관계가 바로 인간이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을 사회적이라는 말로 한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사회뿐만이 아니라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고, 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 우리가 그런 인간이란 생각을 지닌다면 개인에 매몰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우리는 인간이다. 사람 사이... 아니 모든 존재 사이. 즉 이 사이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끈을 만들며, 또 서로 엮여 살아가는 존재.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실들이 모여 이룬 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올이 나가면 천도 망가진다. 다른 실들이 온전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연결된 세상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살아야 하는 세상. 이때 우리는 인간만이 아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 보이지 않는 존재부터 볼 수 없는 존재까지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연결되어 살아감을 이 책의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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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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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민주주의가 트럼프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민주주의 국가의 전범으로 불리는 미국에 전제주의 국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인식.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붕괴고, 대다수 사람들에게 재앙이 된다.


민주주의 붕괴는 제도를 무시하는 개인의 등장에서 비롯된다. 갑자기 튀어나온 개인... 갑자기라고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 그 위기를 구원할 수 있는 인물로 제도권에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제도권에 대한 기대를 접고, 그 밖에 있던 사람에게서 지금의 난관을 타개할 능력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에게 많은 권한을 넘겨주게 된다. 그는 그 권한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하지만, 권한을 내려놓지 않고 기존 제도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면,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주의는 붕괴되고 만다. 전제주의 또는 전체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미국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나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아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이 된 이후 얼마나 많은 민주주의 후퇴가 있었던가? 이 책은 민주주의 후퇴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첫째는 심판을 매수하는 일이다. 심판이라 함은 삼권 분립이 이루어진 나라에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입법부, 사법부를 자신의 의도대로 행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견제할 수 없게 된다. 입법부를 장악하기는 힘들다. 대신 사법부를 장악하기는 쉽다. 미국에서 어떻게 연방 대법관 자리를 놓고 대통령과 입법부 사이에 견제와 투쟁이 일어났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대법관뿐만 아니라 헌법재판관 임명을 놓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라. 그래도 우리는 임명이 안 되는 경우는 없었는데, 또한 재판관 수가 정해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미국은 대법관의 수가 정해져 있지 않아 법적으로는 권력의 입맛에 따라서 조정이 가능하다고 하니...


여기에 언론에 대한 통제까지 곁들이면 심판 매수는 끝나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에 출입을 금지한다든지,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인다든지 해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일을 한다.


트럼프는 이 일을 극단적으로 한 인물이지만, 과연 지금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정치는 심판을 매수했다는 말에서 자유로운가 생각해 볼 일이다.


둘째는 정적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이는 상대편에서 유력한 정치인이 제대로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그에게 여러가지 죄를 뒤집어씌운다든지 또 그를 사회에서 용인하지 않는 주의에 동조하는 사람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일이다.


트럼프가 힐러리를 범죄자로 몰아붙였듯이, 또는 오래 전 미국에서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정적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듯이 그렇게 정적이 자신과 같은 정치판에서 활동할 수 없게 만든다.


성공하기 힘든 전략이라고 하겠지만, 의외로 이 전략은 잘 먹힐 때가 있다. 바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다. 경제가 침체되어 있거나 이념적으로 양분되어 있을 때 이런 전략은 잘 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북좌파'라는 말이 가장 잘 통했다. 여기에 요즘은 부패한 사람이라는 낙인까지 동원되고 있으니... 이는 상대 진영의 사람이 정치 활동을 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자기만 선수로 뛰겠다는 발상, 이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민주주의란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이념을 박멸하기보다는 토론을 통해서 더 나은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 데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대표적인 예가 선거구 조정이다. 미국은 게리맨더링이라고 해서 선거구 조정을 하는데, 인종과 경제적 차이를 반영하여 선거구 조정을 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판을 짤 수 있다.


또 선거에 참여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어 소수가 자신들을 대변하는 사람을 선출할 수 없도록 하는 일도 가능하다. 


미국보다는 우리나라가 이런 일을 하기에는 좀더 어렵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소수 정당이 원내에 진입하기는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확실히 양당체제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역시 양당체제라고 해야 한다. 다른 정당들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하게 하는 사람이 어떻게 등장할까?


이 책은 그 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떻게 트럼프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한 정당의 대표로 출마할 수 있을까?


트럼프를 극단주의자라고 한다면 예전에는 극단주의자를 걸러낼 능력을 정당이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극단주의자가 등장하면 서로 힘을 합쳐 그가 선출되지 못하게 하는 능력. 그것을 저자들은 민주주의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극단주의자들이 등장하고 많은 표를 얻어 정당의 후보자로 추천된다. 그 이유는 바로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된 데 이유가 있다고 한다.


정치를 정당이 해야 한다는, 특별한 개인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는데, 정당에 대한 불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정당 밖에 있는 인물이 선출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인물은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권력을 휘두르기 쉽다는 것. 그가 권력을 휘두를 때 기존 제도는 무력화된다는 것. 이런 무력화는 다음 정권에서도 독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일, 지금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 상대에 대한 관용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트럼프 시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


그 다음 제도적 자제는 법에 있더라도 자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불법이 아니면, 또 법에 명시되어 있으면 그 법을 활용해 자신의 권력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도 타협해서 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제도적 자제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제도적 자제는 한쪽이 법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권이 교체되어도 이 관행은 지속될 수 있으므로, 일방이 아닌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이기도 하고.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이지만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지표를 적용하면 트럼프 시대와 지금 우리 시대가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더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저항을 해야 한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의회와 법원, 그리고 선거를 통해 저항을 해야 한다. ...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저항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중요한 책임이다. 하지만 저항의 목표는 권리와 제도를 뒤엎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274쪽)


'극단적인 양극화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 사회적 분열을 인정하면서 엘리트 집단 간의 협력과 타협을 도모하는 것이다. (277쪽) ... 미국의 양극화를 고착화하는 두 가지 요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요인이란 인종적, 종교적 재편, 그리고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경제 불평등을 말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정당이 대변하는 대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79-280쪽)'


미국의 상황에서 저자들이 제시한 대책이지만 이를 우리나라에 변용해서 적용할 수 있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일. 그리고 정당들이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정당 개혁을 하는 일... 그렇게 하도록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그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트럼프가 물러났다고 해결되었을까? 여전히 지속적이지 않나? 우리 역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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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는 영화 관련 글이 많다.


  드라마도 영화 관련 작품에 포함을 시키면 표지 화면을 장식한 공찬이 출연한 드라마부터, <사랑의 고고학>이라는 영화에 출연한 옥자연에 대한 글, 그리고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감독이자 출연자인 앤소니 심 감독 이야기까지.


  영화(드라마)가 소설과 비슷하게 우리에게 다른 인생을 경험하게 해주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관한 글들은 삶에 대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란 직업은 자신의 삶과 작품 속의 삶을 각자 살아가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기도 하는 사람이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영화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서 평소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은데, [빅이슈]를 읽으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만나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난다는 점에서 좋다.


이번 호에서 특히 생각할 글은 바로 말에 대한 정문정의 글이다. <정문정의 말빨글빨>이란 꼭지에 실린 글. 제목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품위를 지켜내는 비폭력 언어'(36쪽)다.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요즘이다. 그 누구가 내뱉은 말들이 국제 관계에 영향을 주는 모습을 요즘 보고 있는데, 국제 관계뿐만이 아니라 국내 관계에서도 이 말들이 숱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자신의 말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한 말하기를 하는 사람. 그 사람의 말하기가 여과 없이 방송을 통해서 나오고 있으니... 사회 전체가 비폭력 언어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지 않나 싶다.


많은 말이 있지만 4.19혁명을 기리는 기념식에 참석해서 한 말은 비폭력 대화가 아니라 폭력 대화임을 생각하게 되는데...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라는 말과 '독재와 폭력과 돈에 의한 매수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는 발언은 특정 정치인과 특정 정당을 지칭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대통령의 4.19 기념식 발언은 조금만 검색해도 찾을 수 있다)


정치란 한 당과 대통령과 그 측근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는 새의 날개처럼 좌우가 모두 있어야 한다. 좌우를 아우르는 몸통 역할을 행정부, 특히 대통령이 해야 한다. 자신이 날개 자리로 가면 안 된다.


날개 자리로 가지 않고 몸통을 지키는 대통령의 말하기가 바로 '비폭력 대화'일텐데, 상대를 사기꾼, 폭력. 돈으로 매수하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날개 자리로 자신을 옮기고, 그 날개만을 키우려는 말하기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한쪽만 키우는 말하기, 이는 몸통이 없는 비대칭 날개만이 있는 새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그 새가 날 수 있을까? 얼마 날지 못하고 추락하고 만다.


정치에서 비폭력 대화가 아닌 '폭력 대화'가 난무하면 정치는 날개는 있지만, 비대칭 날개를 지니고 균형을 지닌 몸통이 없는 정치가 되어버려,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이 오히려 본인이 비판한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도 이것은 가짜 민주주의입니다'에 해당하지 않을까. 왜 그 점을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니 이런 연설문을 보면 정문정이 한 이 말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싸울 때조차 상대를 존중하는 법, 상대와 나의 존엄을 지키면서 우아하게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법은 누구나 배우고 익혀서 써먹을 수 있는 교양입니다'(41쪽)라고 했다. 이 정도 교양을 행정부 수반이라는 직책을 맡은 사람이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적어도 행정부 수반이라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정치를 하는 다른 정당, 정치인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다른 나라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비폭력 대화'를 실천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행정부 수반이라는 자리다. 자신이 날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몸통이 되는 것. 


몸통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비폭력 대화' 아니겠는가. 이 비폭력 대화를 실천할 때 정치권도 안정이 되고, 국제 정치에서 우리나라의 처지도 안정이 될 수 있다. 굳이 애써서 몸통에서 벗어나 날개 자리고 가서 추락의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있을까? 


[빅이슈] 297호를 읽으며 한 생각이다. 영화만 잘 봐도, 감정이입을 할테니, 비폭력 대화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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