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
최정화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얼마 되지 않아, '아, 쌍용이구나!'하는 신음이 튀어나오게 된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슬픔이 다시 스멀스멀 밖으로 새어 나온다. 이제는 좀 잊혀졌나 싶었는데,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진행 중일 수밖에 없다.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으니... 여기에 지금은 미국에 본사가 있는 지엠이 군산 공장을 폐쇄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공장들도 희망퇴직을 받고 있으니...
 
근 10년이 되어가는 그때의 일들을 소설을 읽으며 상기하는 일은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잊어서는 안 되고, 또 이 일이 단 한 번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전국 각지에서 또 세계 각지에서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으니, 소설을 소설로만 읽을 수 없는 현실이 슬프다.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서 제목만 가지고는 쌍용차 파업 사건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쩌면 노동자들은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경영에서도 배제되었고, 또 파업을 할 때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집단으로 우리 사회 안정을 해치는 집단으로 매도되지 않았던가.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하나의 점으로 인식하게 그들을 철저히 고립시키지 않았던가. 그 고립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 소설은 용역의 시점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무오, 김무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성인 김씨 성을 따고, 이름은 무오다. 한자어인지, 한글인지 모르지만 제목과 연결을 시키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제목과 연결을 시키면 무오는 한자어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무오(無吾), 내가 없는 사람. 즉 자의식이 없는,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사람. 이런 무오같은 사람이 많으면 노동자들은 점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연결이 된 선이나 면, 입체가 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는.
 
여기서 무오는 그렇게 나온다. 그에게는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없다.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이 없는 그에게 친구가 있을 리가 없다. 이런 그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 이부. 이름 참, 고약하다. 이부라니...
 
그냥 뜻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기껏 생각하면 두 번째 아빠나 다른 아빠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없는 무오에게 용역일을 시키는 사람. 무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람. 그러니 그는 앞에 나설 수 없는 사람이다. 
 
무오가 용역으로 파업 현장에 참여하면서 그 파업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 소설인데, 그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무오는 자의식을 만들어가게 된다.
 
비록 점으로 있는, 사회에서 점 취급을 받고 고립되어 있는 그들이지만,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고립되어 가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그 점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유대를 맺고 있음을 무오는 점점 깨달아 간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깨닫게 되고... 이런 무오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기에 소설 속에서 파업 노동자들이 겪는 아픔이 한 다리 건너서 전해진다.
 
공지영이 쓴 "의자놀이"에서 아프게, 마음 속으로 콕콕 찍어 박히던 그런 아픔과는 다르게 소설은 거리를 두고 파업 현장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이 자의식이 없는 무오가 서술자로 등장하는 효과다. 그렇다고 파업이 아프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파업 주동자였던 이자희가 무너져 가는 과정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해고는 살인임을, 이들이 얼마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어떻게 사람이 망가져 가며,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지를 이자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점과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이 모여 면을 만들고, 면과 면이 모여 입체가 되어 자기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데, 우리는 파업 노동자들이 계속 점으로만 지내게 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소설은 마지막에 에필로그를 통해 이자희의 모습을 작가 시점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현실임을.
 
이제 개정될 헌법에서(발의가 될지 안 될지 아직은 미지수지만)는 근로란 말을 노동이라는 말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 사회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것이 정당함을, 그들이 결코 점으로 머물러서는 안 됨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먹튀 자본가는 있어도 먹튀 노동자는 없으니, 그런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의 권리가 강화되어야 함을, 이 소설, 용역의 눈으로 파업 현장을 서술한 이런소설을 읽으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