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 인간이 지닌 숙명이라고 해도 좋다. 어차피 인생은 한계가 정해져 있으니.

 

  이 세상에 산다고 해도 다른 존재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 물려주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다.

 

  삶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내것으로 소유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물려줘야 한다. 예전과 달라서 지금은 평생동안 이사를 여러 번 한다. 예전에 한 집에 태어나 그 집에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면, 그것도 장남에 한정해서이겠지만, 지금은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죽는 경우는 너무도 드물다.

 

이사를 할 때 내가 남겨놓은 뒷자리 모습은 바로 내 삶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이사할 때 당연히 깨끗하게 모든 것을 싸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서수찬 시집 "시금치 학교"를 읽다가 '이사'란 시를 발견하고, 이사가 모든 것을 깡끄리 싸서 깨끗이 치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뒷사람을 위해서 남겨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사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을 들추어내자

만 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트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꽃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서수찬, 시금치학교. 삶이보이는창, 2007년. 45쪽.

 

따스하다. 내가 떠난 자리에 다른 사람이 깃들어 살텐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뒤에 올 사람들이 잠시라도 웃을 수 있는 그런 이사.

 

꼭 이사만이 아니어도 그렇다. 삶에서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주거나 웃음을 주거나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우리들 삶이니... 이제 봄이다. 세상이 따스해지기 시작한다.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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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7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7 1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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