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시인이 학교 생활에서 느낀 점들을 시로 쓴 시집이다.
시인의 말이 이렇게 시작한다.
"네 아버지는 평생 악한 말을 한 번도 뱉은 적이 없는 분이다."
아버지의 지인들이 하신 말씀이다.
그 얘기에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교실에서 나는 얼마나 독한 말들을 제자들에게 쏟아부었는가?
미안하구나.
용서해다오. (시인의 말 중 일부)
제자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제자들에게 뱉어내었던 험한 말들. 그 말들이 과연 포장될 수 있을까.
어떤 이름으로도 포장될 수 없겠지만, 이미 나온 말들이 사라지지도 않겠지만, 교사로서 이런 마음을 지닌다는 자체가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을 지닌 교사가 뱉은 말들은 험함을 가장한 사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심해야겠지. 아무리 사랑으로 충만한 말이라도 험한 모습을 띠고 나오면 거부감을 줄 수밖에 없으니까.
요즘은 교사 역시 직업인일 뿐이다. 그런 인식들이 많다. 학부모들도(예전 어떤 광고에서 부모와 학부모를 비교했었는데...) 교사를 직업인으로 여기지 자식을 이끌어주는 선생, 스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는 진학이라는 상품이 개입되어 있고, 진학이라는 상품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순간 이들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고 만다.
여기에 학생과 교사 간의 관계도 예전같지 않다. 역시 둘 사이에 무언가가 끼어 있다. 그래서 요즘은 데면데면한 관계들의 집합소가 바로 학교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 교사들이 있다. 시집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관계. 여전히 교사와 학생 간에 직접적인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그런 학교들. 그런 선생과 제자들.
시집에 실린 첫번째 시. 이런 마음을 지닌 교사들이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교실은 청정 지역
압도적인 재난 앞에서도
학생들은
미친 듯이 웃고, 떠든다.
백석의 시를 읽고
바흐의 칸타타를 듣고
걸그룹의 <흔들려>를 듣는다.
종북, 친일, 극우, 핵무기, 관피아
아무리 세상의 언어가 험악해도
고등학교 교실은
청정 지역
비무장지대
즐거웠던 기억이나 좋았던 감정을 많이 나눠야겠다.
해학의 언어를 많이 사용해야겠다.
칭찬을 더 많이 해야겠다.
어른들보다 더 명랑하고 활기찬 사람으로 자라서
더 멋지고 위대한 나라의 목자가 될 수 있도록!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더라도
환란의 비바람 모질게 불어도
더 밝은 표정으로 학생들을 대해야겠다.
장인수, 교실 - 소리 질러, 문학세계사, 2015년. 12-13쪽.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교사를 만나는 행운을 우리 모든 학생들이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