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고 따스한 영화다.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만 앞으로만 내달리지 말라고 길은 여럿임을 보여주는 영화.
친구 셋이 등장한다. 도시 삶을 거부하고 농촌으로 돌아온 재하, 농촌에 살지만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는 은숙, 그리고 도시에서 잠시 돌아온 혜원.
주인공은 혜원이다. 임용고사에 떨어지고 도시에서 살기가 힘들어져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 그곳에는 언제나 그를 맞이할 집이 있다.
집에 돌아온 혜원을 발견한 은숙, 은숙에게 돌아온 이유가 '배가 고파서'였다고 말하는 혜원.
영화는 이렇게 셋 가운데 혜원을 중심으로 전개가 되는데, 혜원이 하는 요리들이 영화 장면마다 나온다.
음식... 생명에서 생명으로 생명을 이어주는 존재. 그것도 마트에서 사온 재료들이 아니라 직접 기른 채소들로 하는 요리.
이런 요리를 통해 혜원은 자신의 마음을 점점 치유해가게 되는데...
도시인들은 대부분 뿌리뽑힌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돌아갈 고향이 없다. 그냥 도시에서 그날그날을 살아갈 뿐이다. 먹을거리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인들이 먹는 음식은 뿌리뽑힌 음식일 뿐이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음식. 도시에서 음식을 먹을 때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그냥 소비하는 음식일 뿐.
혜원이 도시에 있을 때 아르바이트 하는 곳이 편의점이라는 설정이 마음 아프게 와닿은다. 편의점, 그야말로 뿌리뽑힌 음식들이 순간순간 지나쳐가는 곳 아니던가.
편의점 음식을 먹던 혜원이 그 음식을 뱉어내는 장면. 상한 음식이겠지만, 그렇게 도시 음식은 소모될 뿐 다시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만다. 그냥 버려지는 존재일 뿐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에게 음식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주는 존재다. 자신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존재다. 음식을 먹을 때 감사 인사를 하고, 은숙과 갈등이 있을 때도 음식으로 풀게 된다.
이렇게 많은 음식들이 나오는 영화에서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젊은이들, 자신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잡으려고 애쓰는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미 방향을 정하고 자리를 잡은 재하와, 여전히 자신이 있는 곳을 떠나려고 하는 은숙, 그 사이에 있는 혜원인데...
혜원은 결국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영화에서 엄마를 이해하는 장면이 바로 이것이다.
'리틀 포레스트' 영화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장소. 그것은 클 필요가 없다. 다른 존재에게 위압감을 줄 필요도 없다.
영화에서 혜원 엄마가 하는 역할은 바로 그것이다. 자기 자식이 깃들 수 있는 작은 숲을 만드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식도 그런 작은 숲을 만들어가게 하는 것.
혜원은 여러 단계를 거쳐 자신이 '작은 숲'을 만들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이 작은 숲에는 생명이 넘칠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한층 더 밝아지겠지.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의문이 남는다. 작은 숲을 청년들에게 만들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 영화 속 혜원 엄마가 혜원을 위해 작은 숲을 만들었듯이 지금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을 위해서 작은 숲을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
청년들에게 너희들이 이렇게 작은 숲을 만들어라고 하지 말고,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이 깃들 수 있는 작은 숲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하지 않고 청년들에게 조금 달라도 돼, 멈춰도 돼라고 얘기하는 것은 책임방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영화 속 혜원이 '아주심기'를 하려 하고, 작은 숲을 만들려고 하는 데는 엄마가 먼저 해놓은 일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더 막중하다는 것, 이 영화는 청년들보다는 기성세대들이 반성하면서 봐야한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좋았다. 때리고 부수고 꽤나 자극을 주는 장면이 많은 영화들을 보다가 생명이 넘치는 영화, 생명의 소중함을, 음식이란 단지 소모해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과 생명을 이어주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작은 숲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 작은 숲을 기성세대들이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