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농익음을 거부함. 그것은 바로 끝이기 때문이다. 더이상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더이상 발전이 없게 될 때, 그때는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라져야 함. 사라지지 않고 버티게 되면 그것은 추함에 불과하다.

 

  사과를 빨강과 일치시킨다. 빨간 사과, 빛에 반짝이는 그 붉은 빛을 보면 잘 익었다고 생각한다.

 

  잘 익은 사과, 땅과 하늘과 바람과 사람의 노력이 한데 모여 결실을 이룬 것.

 

  이 결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잘 익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잘 익어서 다음을 이루는 것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럼에도 개인으로 보면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모든 사과가 빨개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문자의 시를 읽으면서 개인이 추구하는 목표는 다양할 수밖에 없음을, 그 다양함을 인정해야 함을 생각한다.

 

어쩌면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만 달리게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 시를 통해 부정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태양과 푸른 사과

 

푸른 사과만 열리는 사과나무 한 그루 심고

푸른 사과가 열리기를 기다려 왔다

끝내 타지 않으려는 껍질과

끝내 웃지 않으려는 슬픔이

새파랗게 앙다물고 있으면

반드시 붉어진다는 사과들의 가설을 어기고

붉은 사상들을 지나

혼자만 새파란 얼굴 지킬 거라고

푸른 사과를 기다려 왔다

 

푸른 사과만 골라서 사 먹은 적이 있다

뜨겁게 졸이면 무작정 붉어지는

맹목의 순종이 섬뜩해서

전에는 풀의 열매였을지도 모를

풀의 기억 하나만으로

발개지지 않는

사과의 푸른 정신을 사 먹었다

태양을 절취한 둥근 손바닥에

어지러운 듯한 짙푸른 사과 향

태양보다 그걸 더 사랑했다

나는

 

최문자, 사과 사이사이 새, 민음사. 2012년. 100-101쪽

 

세상은 이렇게 주류에 반대해 자신을 지키는 사람들에 의해 더 다양해진다. 이런 사람들로 세상이 더 살 만해진다. 그렇게 다양함, 그것을 찾고 알려주는 일, 시인이 한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갈 때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도 존중받는 그런 사회,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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