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114호를 읽으면서 갑자기 몇 주 전의 장면이 생각났다. 포항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연기된 날.

 

  수능 전날 자신들이 공부하던 참고서, 문제집들을 모두 버렸던 수험생들... 그러나 시험이 연기되자 부랴부랴 다시 자신의 문제집을 찾으러 가야만 했던 수험생들.

 

  하지만 책들의 산더미 속에서 자신의 문제집을 찾는 일은 한강 모래밭에서 바늘 하나 찾는 격.

 

  결국 다른 학생의 문제집, 참고서를 들고 온 수험생들이 많았다는 후문.

 

한데... 수능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중요하지만, 그 수능으로 인해 버려지는 수많은 책들, 그 책들을 이루는 종이들에 대해서, 그런 소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언제든가 학교에서 교과서 물려주기 운동을 한답시고, 쓴 사람의 이름을 적게 한 적이 있었는데... 교과서를 후배들이 물려받은 적이 있단 얘기를 들은 적은 거의 없다. 아주 적게... 극소수의 학교에서 이루어졌다는 얘기는 들은 기억이 있지만...

 

교과서나 참고서, 문제집들의 종이질을 본 적이 있는지...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그 책들이 고급스런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재생용지로 만들어도 충분한 교과서를 이상하게 화려하게 만들어야만 채택이 된다는 식으로, 겉으로 번지르하게 만들고 있으니...

 

수많은 나무들이 목숨을 바쳐 학생들의 공부를 돕지만, 일회성으로 그치고 말 뿐. 책들은, 예전에 그렇게도 귀했던 책들은, 돌려보고 돌려보고, 베껴쓰곤 했던 그 책들은 이제는 너무도 흔한 소비물품이 되어 쓰레기가 되든지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지든지 한다는 사실.

 

이번호 특집이 '윤리적 소비'에 관한 것인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거쳐온 학교에서 가장 비윤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지 않은지...

 

이미 비윤리적 소비를 생활에서 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윤리적 소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소비란 바로 생활 아니던가. 그런데 배움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조차 윤리적 소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윤리적 소비에 관한 책을 소비한다면... 이 엄청난 배움과 실천의 괴리, 앎과 실천의 괴리, 글과 생활의 괴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윤리적 소비'에 관한 글들을 읽으며 마음이 뜨끔했다. 나 역시 윤리적 소비와는 거리가 먼, 쓰레기를 양산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가능하면 조금 덜 쓰자고 하지만, 여전히 많이 쓰고 있는 형편이고, 생산은 없고 소비만 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으니... 이런 내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고 윤리적 소비 운운하는 것도 모순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뜨끔' 하니, 무엇을 소비할 때 한번 더 생각하는 태도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생각.  

 

'민들레'를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어른'이다. 반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어른. 그러므로 민들레를 읽는 독자들은 이 윤리적 소비를 주제로 다룬 글을 읽으며 '뜨끔'하겠지만 정작 뜨끔해야 할 사람들은...

 

농축산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농축산물에 관해서는 상한가를 10만으로 올린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결정... 이것과 '윤리적 소비'를 생각하면 과연 이 방침이 옳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신자유주의적 소비 생활'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니... 한번에 흐름을 바꿀 수 없겠지만, 이런 소비의 풍토에 작은 저항이라도 할 수 있는 이 민들레를 뿌려봄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고.

 

이런 '윤리적 소비'에 관한 글도 마음을 움직이게 했지만, 무엇보다도 짠한 글은 농아인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란 글이었다.

 

왜 농아인들에게 우리와 같은 말을 하도록 강요를 하는가? 그들에게는 그들의 언어인 수화가 있는데... 오히려 그들이 자유롭게 수화로 대화를 할 수 있게 하고, 일반인들도 수화를 배워 함께 대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의 대화 방식을 인정하고, 일반인들이 음성언어로 이야기를 하듯이 그들 역시 수화로 대화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그런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글...

 

지나치게 일반인으로 표준화된 대화 방식만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그들을 위해 인공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대화 방식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글이었으니.

 

다양함,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그것이 바로 민들레의 표어인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하는 그런 사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글이다.

 

본질을 잊고 되는 대로 살아온 삶을 반성하게 하는 민들레다. 이번 호를 읽으며 많이 '뜨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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