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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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 그의 책 가운데 두 번째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소설은 아니다. 사실을 기록한 책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될 당시까지는, 지금은 모르겠다 - 출판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에도 '금서'라고 읽혀서는 안될 책들의 목록이 존재했듯이 중국에서도 '금서(禁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금서가 되는가? 그것은 주류 사회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고, 읽고 싶지 않은 것을 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건전한 비판은 사회를 발전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아는 지도자라면 금서를 지정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장려해야 한다. 그런 비판이 더이상 나오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지내 비슷한 눈과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비판한 글을 읽어야 한다.

 

이것이 지도자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하는데... 세계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중국도 아직까지는 이렇게 열린 자세를 지닌 지도자가 있는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잠깐 언급이 되지만 경제 발전과 정치체제 사이의 거리, 모순이 크게 존재하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위화는 이 책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그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53-354쪽)

 

유마경에 나오는 구절처럼 세상이 병들었으니 자신도 병들었다는 말, 또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나왔던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말... 그리고 영화 '터널'에서 오줌을 마셔도 된다는 전문가의 말에, 자신이 먼저 마셔보는 구조대장의 행동 등등.

 

타인의 아픔을 나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중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길 수 있는 지도자만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다.

 

과연 중국은 그랬는가? 중국은 커다란 아픔을 겪어왔다. 이 책에서 그런 커다란 아픔 중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나온다. 위화의 생애에서 겪게 된 가장 큰 아픔. 그리고 중국을 바꿔놓은 고통 두 가지.

 

하나는 문화대혁명이다. 이는 위화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천안문 사태다. 이는 위화가 어른이 되었을 때 겪게 된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되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말은 이 책의 첫번째 꼭지인 '인민(人民)'에서 나온다.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39쪽)

 

비극으로 끝난 천안문 사태, 그 비극 직전에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서 느낀 감정이 바로 위 글이다. 우리나라 촛불을 연상시키는 장면.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의 촛불을 통해서 이를 깨닫지 않았던가.

 

작은 촛불들이 모여 거대한 횃불이 되었는데, 이 때 이런 빛보다도 더 멀리 간 사람들의 목소리, 더 큰 에너지를 낸 서로 함께 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에너지를.

 

위화 역시 이를 겪었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그의 경험이 자신의 작품 속에 잘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이 책은 위화의 작품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겨우 허삼관 매혈기 하나만 읽었을 뿐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허삼관 매혈기에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책을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다른 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민중에 대한 애정, 중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도 있어서, 이 책은 위화가 살아온 중국 현대사를 자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이것을 통해서도 중국이 만만치 않은 나라임을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열 개의 낱말로 자신이 지내온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민, 영수(領袖),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홀유(忽悠)

 

이 단어들을 통해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문화대혁명부터 현재의 중국까지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성장시켰는지도... 무엇보다도 이 책의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목인 '5월 35일'을 읽으면 마음이 아파오기도 한다. 우리나라 광주민주화운동이 떠오르기도 하는, 황지우의 시 '묵념, 5분 27초'를 떠오르게 하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달력에 없는 날,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날, 이것이 바로 위화 작품을 이루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제목이다.

 

이 날은 '1989년 6월 4일'이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만든 날... 민중들이 절대 잊지 못할 날. 여기를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위화는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다시 위화 소설의 기반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위화 소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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