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이 시집을 읽으며 자꾸 '4퍼센트 우주'라는 말이 생각났다.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우주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이 겨우 4퍼센트라는.

 

  나머지는 알 수 없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아니 모두가 알 수 없는 물질은 아닐테지만, 우주 자체도 밝혀진 것이 너무도 적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네 삶은. 우리네 삶 역시 4퍼센트 정도밖에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사람을 각 부분별로 해체해서 다시 결합한다면 다시 그 사람이 될까? 아니,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각 부분들의 합이 그냥 사람이 아니라, 그 부분들 사이사이에 있는 알 수 없는 무엇이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알려지지 않은 그 사이들... 사이들이 이루는 무엇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왜 나희덕의 이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허공'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어둠'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상하게도 이 시집에는 '비어 있음'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그런, 여기도 저기도 아니고, 나도 너도 아닌, 비어 있는 '허공' 그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 많다.

 

비어 있음... 그 비어 있음으로 채움. 노자의 도덕경을 연상시키는 시들이 꽤 있는데, 시집을 읽다 보면 비어 있음을 비어 있음으로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비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 어둠 속에서 길을 내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싶다.

 

4퍼센트 인간이라고 하면, 지금 살아 있는 바로 여기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과 장소이다. 다음으로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장소.

 

허공이나 어둠이 소중한 이유는 바로 '지금-여기'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96퍼센트를 위해 시간을, 정열을 낭비하지 말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4퍼센트의 나를 위해 '지금-여기'를 살아가야 한다는 말. 그렇게 이 시집을 읽었다.  물론 모든 시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 시집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

 

미루지 말자, 뒤로 넘기지 말자. 광활한 우주도 4퍼센트의 물질로 충분히 우리에겐 존재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몇 퍼센트 안 되더라도 내 삶은 너무도 소중한 전부다. 그 전부를 다른 것으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가 마음에 와닿았다.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창작과비평사. 2002년 8쇄. 40-41쪽. 

 

너무 늦게 놀러가지 말자. 함께 해야 할 때가 있다. 나든 너든, 우리든. 그런 생각을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11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