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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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0일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다. 교사 한 명을 포함하여 학생 12명이 죽고 20여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었다. 총기 규제가 거의 없는 미국에서 지금도 빈번하게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지만 고등학교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은 거의 없었나 보다. 이 사건이 미국에 굉장한 충격을 안겨준 것을 보니.

 

이 사건이 있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원인 규명에 목소리를 냈다. 학교 따돌림이 문제라느니, 가정 교육이 잘못되었다느니, 총기 소지가 자유로워서 그랬다느니, 아이들의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느니, 또는 아이들이 약물을 복용했다느니, 잘못된 종교때문이라느니... 많은 원인 진단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명확한 원인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이 사건을 일으킨 부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언론에서는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단 한 줄이라도 기사 또는 방송을 내보내면 그 부모는 속절없이 죄인이 되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쓴 수 클리볼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자식을 괴물로 잘못 키운 죄인이 되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겨를도 없이 왜 자신의 자식이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려고 든다. 도대체 왜 내 자식이? 무슨 이유로? 답을 찾지 못한다. 아니 답은 없다.

 

수 클리볼드의 아들인 딜런은 집에서는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세상 어느 부모에게 자신의 자식이 나쁜 아이이겠는가. 부모 말 잘 듣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그런 자식들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자식이 어느날 살인자가 되어 자신들 앞에 나타난다.

 

부모들이 느낄 당혹, 절망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수 클리볼드도 마찬가지다. 정신을 추스릴 수가 없다.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도 희생자일 뿐이라고... 그러다 처절한 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살인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한 살인에 자신의 아들이 가담한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아들은 살인자라는 것을. 절망 끝에 서게 된다.

 

이육사의 '절정'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된다. 수 클리볼드의 심정은 바로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곳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육사 '절정 2-3연)

 

절망의 끝.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아들을 감싸안는다.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한다. 자신에게는 사랑스런 아들이었음을.

 

그렇다면 한 발 나아가야 한다. 수 클리볼드는 처절하게 아들과 지내온 날들을 되돌아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되돌아보면서 아들이 자신에게 수많은 신호를 보냈음을 파악하게 된다.

 

아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심한 절망에 빠져 있었다. 술도 마셨으며 총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들과 대화를 잘했고, 아들은 착하게 살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사건을 일으키기 몇 해전부터 사소한 사고를 일으키고는 했지만 이는 아들들이 커나가면서 겪게 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부모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부모는 우선 자식을 믿어주지 않는가. 게다가 폭력적인 가정교육을 방침으로 삼지 않는 부모라면 더더구나.

 

이들은 아들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들을 놓치고, 결국 아들은 살인-자살을 감행하기에 이르른다. 사건이 벌어진 뒤 수 클리볼드는 이 사태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처절한 노력이다. 그리고 그 노력 끝에 이 책을 내기까지 한다.

 

피해자들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자기의 아들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일이 특별한 아이, 특이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명심하라고... 이런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들을 잘 살펴야 한다고... 겉모습만으로 아이들을 판단하지 말라고.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영화를 보고 미국의 총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총기문제보다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아이에게 어떻게 관심을 주어야 하는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찜찜한 마음을 거두지 못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뇌에 문제가 있으면 사고를 치기 쉽다. 수 클리볼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뇌에 문제가 있어도 증상을 안다면 예방할 수 있다. 그것을 부모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즉 행동에는 유전보다는 환경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 그것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한 발 더 나아갔으면 했다. 미국의 총기 소지 자유에 대해 총기 규제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쪽으로 말이다. 물론 이 책에도 총기 소지 자유에 대해 비판적인 부분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쉽게 총을 소지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순간적인 분노가 총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고, 계획적인 총기 사고를 일으킬 개연성을 더 높이기 때문에 총기 난사 사건을 개인적인 뇌 문제, 심리 문제, 가정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사회문제로까지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 그런 공이 잘못 튀어도 치명적이지 않은 환경을 만들 의무가 어른들에게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잘 살피고, 대화를 꾸준히 하며, 그들의 뇌건강도 보살펴야 하고, 또 사회적인 환경 변화도 이끌어야 하니, 부모 노릇하기 참 어렵다. 하지만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부모들이 해야만 할 일이다. 그래야만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수 클리볼드는 이 책을 통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고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고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비록 총기난사 사건 같은 일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도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으니 이 책을 꼼꼼하게 읽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부모로 살아가기 정말 힘들다. 하지만 부모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고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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