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장소에서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냥 자신도 그 장소를 이루는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낯선 장소에 자신을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면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장소와 다른 자신이 있을테니 말이다.

 

 여행을 통해 또다른 자신을 발견한다고들 말한다. 그렇게 여행은 다른 곳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낯선 곳을 우리에게 들여오기도 한다. 바로 우리 장소를 다르게 보기 위해서다. 여행은 이렇게 나를 낯선 곳으로 보내는 일이면서도 낯선 곳을 익숙한 곳으로 데려오는 일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느낀 점을 쓴 일종의 기행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이집트, 몽고, 일본, 우즈베키스탄, 그리스, 이탈리아, 유럽 등등.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들을 시로 쓴 것을 모아놓았다고 한다. 그만큼 낯선 자신을 발견하는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제목도 '낙타의 길'이다. 특급열차, 비행기, 버스가 아니라 낙타다. 짐을 싣고 사막을 건너는, 빨리 갈 수 없는 낙타.

 

그런 낙타의 길이 편할 수만은 없다. 우리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그렇게 장소와 하나가 되는 여행, 그것이 바로 낙타의 길이다.

 

이 시집에서 이 시, 그람시에 관한 시가 눈에 들어왔다. 안토니오 그람시. 이탈리아 혁명가. 혁명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무솔리니에 의해 감옥에 갇혀 감옥 속에서 죽은 사람.

 

헤게모니라는 말과 진지전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 바로 그를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나다. 그를 만난 것이 아니라 소나기를 만난다.

 

 혁명을 생각하며

- 그람시를 위하여

 

이탈리아 크레모나 학회에 가는 길

밀라노에 내려

안토니오 그람시 광장 옆

하필 연변에서 온 동포가 운영하는

하숙집 독도하우스에서 들어

밤을 지새다가, 딩굴며 지새다가

아침 산책을 나선 길에 공원에 들렀는데

소연히 쏟어지는 소나기를 만나

휘몰아치는 소나기 언제나 그렇듯

천둥과 번개 더불어 오는 것

한 사람의 생애가 소나기처럼

혹은 번개처럼 휘몰아 폭발하기 위해서는

저 밑바닥으로부터 몰려오는

구름과 물결이 있어야 하리.

 

그람시여, 그대 기다리던 민중의 소나기는

어느 언덕에 물보라로 밀리고 있느뇨.

 

우한용, 낙타의 길, 태학사. 2012년. 162쪽.

 

그람시가 기다리던 민중의 소나기는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죽은 뒤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그의 희망이 이제는 덧없음을 알려주는 지도 모른다.

 

그가 꿈꾸던 사회는 과연 사라졌는가. 아니, 아직 오지 않았다. '밑바닥으로부터 몰려오는' 그런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람시가 꿈꾸던 혁명을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이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민중들이 거대한 흐름을 이뤄 정권을 바꾸어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먼저 소나기를 몰고 왔는지도 모른다. 그를 생각하며 썼던 이 시를 지금, 우리는, 그람시에게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은 시다.

 

하여 이 여행시집에서 그람시를 통해 다시 우리를, 나를 만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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