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근배커리 약사 김소진 문학전집 4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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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전집을 1권부터 순서대로 읽었으면 좋았으련만, 도서실에서 빌린 책이 그 순서를 무시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선 있는 책부터 읽어야 했기 때문.

 

순서가 바뀌었다고, 또는 건너뛰었다고 소설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소설이란 그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독립적인 소설들이 읽다보면 하나로 꿰어지는 어떤 일관성이 있지만.

 

김소진 소설의 일관성은 바로 '기억'이다. 자신의 경험을 과거로 과거로 되돌리는 기억. 그 기억을 현재로 불러내는 일. 그래서 어떤 소설을 읽어도 김소진 개인의 경험과 그의 기억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집에 있는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는 전집의 1권이 된 "장석조네 사람들"의 제목을 지닌 장석조네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목마른 뿌리'라는 소설은 비록 통일이 된 미래를 가정하고 있지만 월남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작가가 된 자신이거나 대학생이 된 인물이 등장한다.

 

이토록 김소진 소설에서는 김소진이라는 작가 개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의 가족도. 여기에 80-90년대 사회 분위기 역시 인물들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 되고 있다.

 

그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는 아득하게 먼 과거가 된 듯한 시기가 눈 앞에 떠오른다. 기껏해야 30여년 전인데도 조선시대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우리나라의 과거.

 

결국 그의 소설에서는 현재적 갈등은 그다지 심하지 않다. 소설이 현재에서 시작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현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과거를 불러낸다.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재현해 내고만 있다.

 

한때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문학에서도 '후일담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유행했었다. 일본식의 용어를 따서 '사소설(私小說)'이라는 말도 했었고. 그들은 이제 과거를 들려주고자 했을 뿐이다. 미래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온몸과 온정신을 바쳤던 사회주의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세대.

 

소위 운동권이라고 하는, 일명 386이라고 하는, 자랑스럽게도 자신들의 과거를 드러내었던, 그러나 컴퓨터로 따지면 386은 구식 중에서도 구식이고, 얼마 쓰이지도 않고 486에, 펜티엄에 자리를 내주고 만 그런 컴퓨터 아니던가.

 

김소진 소설을 읽으면 그런 386컴퓨터의 운명이 생각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서서 과거를 회상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때는 최신식이었지만 곧 쓰임새를 잃어버린 그런 인물들이 그의 소설에서 주종을 이루고 있으니.

 

온갖 과거를 끄집어내지만 그 과거가 생산적으로 인물을 밀고 나가지 않는다. 인물은 그냥 멈춰있을 뿐이다. 멈춘 상태에서 과거 속으로 무한히 들어간다. 어쩌면 김소진이 더 살았다면 이제는 과거들을 종합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기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 전집에는 두 편의 미완성 유고가 있다. 한 편은 짧은데 (내 마음의 세렝게티), 또다른 한 편은 좀더 길다. (동물원)

 

'동물원'이나 '내 마음의 세렝게티'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내 마음의 세렝게티'에서는 본격적으로 동물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소설이 끝난다. 완성이 안 되었다. 그러나 연수원에서 훈련받는 사람들 모습이 바로 동물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물원'이란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 속에서 '남생이'이야기가 언급되고 있고, 또 여자의 입을 빌려 동물원에서 만난 수달 이야기도 언급되고 있지만, 주된 이야기의 인물은 대학생이 된 영기의 경험이다.

 

그의 경험이 과거 회상을 통해 펼쳐지는데, 이런 회상 속 인물들의 모습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더 진행이 되었어야 하는데 미완으로 끝난 점이 아쉽다.

 

주인공이 취재를 해야 하는 나비, 화려하지만 인간에게 잡히면 박제가 되어야 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광고 속에 존재해야 하는, 그런 나비... 이것과 인물들이 얽힌 이야기가 잘 맞물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여하튼 두 권째 읽은 김소진의 소설에서 인물들이 하는 과거 회상을 통해서 그다지 멀지 않지만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과거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어떤 소설을 펼쳐도 그렇게 이 과거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때 변두리 사람들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 우리의 기억을 불러낸다는 점이 김소진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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