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도, 개인의 감정에 침윤된 시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시들이 모여 있다.

 

  그럼에도 감성을 자극한다. 이것은 시인의 재주다. 그는 언어를 통해 우리 감성을 어루만질 줄 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에서 멈춘다. 자신이 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진솔하게 풀어놓기만 한다. 나머지는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선정적인 내용의 시도 있고, 아무리 시인이라지만 이렇게 가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나 하는 시들도 있지만, 그렇지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많은 시들이 그렇다. 시에 나온 언어들과 시의 의미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류근은 사람들에게 더 다가올 수 있나 보다.

 

하긴 옛사람들은 시를 아무때나 읊어댔으니, 시와 생활이 떨어져 있지 않았고, 시와 의미가 멀리 있지 않았으니. 어쩌면 류근은 전통을 계승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중에서 '낱말 하나 사전'이 마음에 박혔다.

 

  낱말 하나 사전

 

내가 버린 한 여자

 

가진 게 사전 한 권밖에 없고

그 안에 내 이름 하나밖에 없어서

그것만으론 세상의 자물쇠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줄 수조차 없었던,

 

말도 아니고 몸도 아닌 한 눈빛으로만

저물도록 버려

버릴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

 

어머니,

 

류근, 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사. 2016년 초판 2쇄. 36쪽.

 

문장 부호가 두 개 나오는데, 앞에 나오는 쉼표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마지막에도 쉼표가 나온다. 당연히 마침표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아도 쉼표다.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를 자신은 버렸다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열려 있다. 어머니는 버려진 상태에서도 계속 나에게 머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자란다는 것은 어머니의 품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어머니는 계속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산다. 단 하나의 사전, 단 하나의 낱말, 그것은 바로 자식이다. 그런 자식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

 

멀어져 가도 그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잠시 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늘 간직하고자 하고, 그 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관계. 자식과 부모의 관계.

 

그 관계를 낱말 하나 사전에 빗대어 표현하다니. 부모에게는 자식이 오직 하나의 존재일뿐이라는 것, 자식 이외는 없다는 것. 그렇지만 자식은 그런 부모에게서 끝없이 떨어져나가려고 한다는 것.

 

맨 마지막에 '어머니'라는 낱말이 나오는 순간, 뭉클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이런 존재로구나. 이렇게 단 하나의 낱말만 싣고 있는 존재구나. 그것을 깨우쳐준 시다.

 

이제 추석이라는 명절이다. 단 하나의 낱말만 지니고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 이미 버렸더라도, 그것은 잠시일 뿐. 다시 돌아가야 할 관계.

 

류근의 이 시를 읽고 어머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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