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요코 - 마녀에서 예술가로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가끔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아직도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먼 옛날의 사람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

 

과거의 명성만을 기억하고 현재의 삶에는 관심을 덜 주는 사람,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인물로 각인되어 있을뿐, 현재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잊게 된다.

 

내게 오노 요코는 그런 사람이었다. 비틀즈 멤머의 한 명이었던 존 레논의 부인으로만, 전위예술가로만 기억되던 사람.

 

먼, 과거의 사람. 존 레논의 죽음이 아주 먼 과거인 것처럼 느껴지듯이 그의 죽음과 더불어 오노 요코도 현재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는데...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아니다. 오노 요코가 아직도 살아 있다. 그가 출생한 년도가 1933년이니 이제 80대의 할머니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오노 요코에 대해서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냥 존 레논의 부인으로만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전위 예술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니다. 전위 예술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를 잘 설명해주고 있고,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부인으로서가 아니라 오노 요코는 존 레논과 대등한 예술가임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레논을 이끈 사람이 요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기도 하고.

 

비틀즈를 해체한 마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오노 요코. 남편의 유명세에 빌붙어 돈을 번 여자라는 오해를 산 오노 요코. 많은 책들에서 오노 요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서술했는데, 이 책은 오노 요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그것도 아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철저하게 오노 요코를 위대한 예술가로 인정한 상태에서 그의 생애를 훑어가고 있는 이 책은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한 사람, 디아스포라 - 일본인으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주로 활동을 하고, 결국 미국 영주권을 얻게 되는, 일본의 가족과는 절연하고 사는 그런 오노 요코이기에 - 라고 할 수 있는 삶을 산 한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읽으면서 백남준의 부인인 구보다 시게코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는데, 물론 이들은 서로 교류도 하고 그랬지만, 일본인이라는 공통점, 또 자신의 이름보다는 남편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남편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더 잘 알려졌지만, 사실 알고보면 이들 자신이 예술가로서 자리를 잡고 활동했음을 책을 읽어가면서 새삼 생각하게 한 점도 그렇고.

 

미국에서 시작한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린 오노 요코, 영국에 건너가 존 레논을 만나고 그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함께 음악을 하는 과정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존 레논이 암살 당한 다음의 이야기는 간략하게 후기처럼 정리가 되어 있을 뿐이지만, 1980년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오노 요코의 삶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행위 예술에서 영화, 음악까지 예술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활동했던 오노 요코, 그의 예술 활동에는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드러나 있으며 - 그래서 페미니즘 운동과 연결이 될 수 있고 - 존 레논을 만난 다음에 하는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도 잘 드러나 있다.

 

존 레논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레논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인정받게 되었다는 오노 요코.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자신이 꿋꿋하게 꾸려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물론 오노 요코의 사생활은 우리나라 감성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예술활동으로만 보면 치열했던 예술가로서의 삶을 볼 수 있어서 오노 요코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존 레논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당당한 예술가로 기억되어야 할 오노 요코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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