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프로페셔널 - 자신이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사람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텔레비전 채널을 이러저리 돌리다 우연히 '역사 저널 그날'을 보게 되었다. 가끔은 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천민 출신인 장영실을 세종이 기용하여 쓰려고 하는데, 천민에게 벼슬을 주어 기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황희가 그런 전례가 예전에도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장영실을 쓰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내용.

 

이것이 바로 선례의 힘이고, 기록의 힘이고, 아는 것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 행해진 일들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재판에서도 판례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사람을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었지만, 그런 사회에서도 능력에 따라 쓸수 있는 전거를 마련해 놓았다는 것이 머리 속에 남았는데...

 

이 프로그램의 내용과 이 책이 연결이 되었다. 우리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조선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반으로 행세깨나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천민, 기생까지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번듯한 기록은 잘 남아 있지 않지만 이들의 활동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남아 있던 자료들을 모아 저자가 정리해주고 있다.

 

기록의 힘이다. 이렇듯 조선시대에도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 소위 '덕후들'이 있었음을. 이런 '덕후들'로 인하여 조선사회가 좀더 깊고 넓어졌음을.

 

열 명의 프로페셔녈을 다루고 있다. 영어로 프로페셔널이라고 하지만, 우리말로는 전문가, 대가 정도 될테고, 요즘 용어로는 '매니아' 또는 '덕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행가 정란, 바둑기사 정운창, 화가 최북, 조각가 정철조, 무용가 운심, 책장수 조신선, 원예가 유박, 천민 시인 이단전, 음악가 김성기, 과학기술자 최천약

 

조선시대 많은 인물들을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 중에 최북만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 정철조 편을 읽으면서 그의 호가 '석치'라는 사실에 박지원과 관련된 일화들에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듣는 이름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여행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원예가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 

 

이들을 모두 한자어로는 벽(癖), 광(狂), 나(懶), 치(痴), 오(傲)라고 한다. 자기분야에 빠져 다른 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도 자부심이 넘쳐나서 다른 사람에게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남들 눈에는 한쪽으로 치우쳤거나, 미쳤거나 오만하거나 바보같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요즘 용어로 표현하면 이들은 모두 '매니아'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매니아 수준을 넘어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신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신분과 환경을 넘도록 자신을 채찍질하고 단련하고 노력하여 결국 넘어선 사람들이다.

 

이들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신분에 의해, 환경에 의해, 또는 끼리끼리에 의해 자기들만의 경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장영실이 기용된 것이 전례가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지금 우리가 '덕후'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들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시대에 남들이 하지 않은 일, 하고자 하지 않은 일들을 한 사람도 있고, 신분 제약을 넘어 일가를 이룬 사람도 이 책에 등장한다.

 

그나마 다른 양반들의 기록에 이름자를 남겼기 때문에 이들의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고, 또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인데...

 

그렇게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찾아 하나로 엮어낸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저자의 노력으로 조선후기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세대들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생각하게 할 수도 있으니...

 

덧글

 

여기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다. 바로 '책장수 조신선' 편인데... 영조, 조선후기 문화 중흥을 이끈 임금임에도 이때에 분서갱유라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것 참... 이래저래 문화는 정권에게는 견제해야만 할 어떤 것인가 보다...

 

씁쓸했다. 이 부분은. 책의 유통과 출판을 국가가 통제한 이유도 바로 이런 정권 유지였을테니... 지금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참으로 오랜 연원을 두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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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0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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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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