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장면 하나

 

뉴스를 보는데, 낙서 문화에 대해서 나온다. 그래피티가 아니다. 공공장소에 낙서하는 것을 그래피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뉴스는 그래피티로 이야기하지 않고 몰상식한 행위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이도에 있는 등대에 가보면 사람들이 한 낙서로 가득하다고 한다. 방송에 나온 등대 속은 온갖 언어들로 가득차 있다. 아무리 지워도 지워도 또 그런 언어들로 채워진다고 한다.

 

이 언어들은 어떤 온도를 지니고 있을까? 따스함일까? 차가움일까? 부드러움일까? 날카로움일까? 사람들이 빙그레 웃음을 짓게 할까, 찌푸리게 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언어들에서 어떤 감정보다는 낙서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차가움과 날카로움을 느끼고 얼굴을 찡그리게 될 것이다.

 

장면 둘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 갔다. 하얀 자작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여름이라 주변은 온통 푸른데, 나무 줄기들이 하얗게 서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팻말들에 적혀 있던 문구. 자작나무가 아프단다. 왜냐? 자작나무의 하얀 줄기를 무슨 도화지로 착각을 했는지, 온갖 언어들로 장식을 해놓기 때문이란다.

 

하얀 껍질을 벗겨 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 희디 흰 줄기에 자기의 이름을 써놓는다든지, 누구 왔가 감이라고 써 놓는다든지, 누구야 사랑해라고 사랑 고백을 자작나무 줄기에 해놓는다.

 

자작나무에 새겨져 있는 언어, 무슨 온도를 지니고 있을까? 오이도에 있는 등대에 있는 낙서와 자작나무에 있는 낙서가 다를까?

 

장면 셋

 

잘 알려진 산에 가 보면 바위 곳곳에 이름이 적혀 있다. 한자어로... 바위에 새겨놓은 이름들, 그 언어들.

 

자기가 왔다 간 흔적을 남기고 싶었는지, 도처에 이름들이 있다. 가끔은 아는 이름을 만나고서는 - 그것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유명한 사람 - 반갑기도 하지만, 도대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온갖 이름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 자신의 행적을 언어로 남기는 데는 일가견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북한 장면을 보면 세상에! 그 좋은 명산인 금강산에 온갖 구호들이 적혀 있으니...

 

그 언어들은 무기가 되어 우리들에게 다가든다. 그렇게 느껴진다.

 

이런 장면들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책이 바로 이기주의 이 책, "언어의 온도"였다. 세 장면에서 나타나는 언어들은 나에게 따스함을 주지 못했다. 그것은 따스함이 아니라 불쾌감만을 주었다.

 

하지만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나와 나를 잇는 역할도 하지만, 나와 남을 잇는 역할도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고 한다.

 

적당한 온도... 사람에게 따스함을 주는 온도, 그런 온도를 지닌 말. 그런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글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언어가 나와 나, 나와 남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래서 따스한 언어들이 총출동한다.

 

그냥 휴가 때 이 한 권을 들고 떠나 조용히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마음을 따스하게 덮어주기 때문이다. 일상에 지쳐 모난 마음을 잠시 내려둘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작가의 언어를 기록한 이 종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나무의 목숨값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목숨값이 헛되지 않도록 언어를 종이에 새겨야 하는 것 아닌가.

 

종이에 새겨진 언어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따스하게 새겨질 때 나무의 목숨값은 헛되지 않게 되고, 그 때서야 비로소 언어는 따스함이라는 온도, 부드러움이라는 결을 지니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은 그 값을 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말들, 글들은 참 따스하다. 우리 마음을 스르르 녹여주는 언어들이다.

 

그래서 마음이 거칠어질 때 책의 어느 한 편을 들춰 읽고 싶어진다. 아무 쪽이나 괜찮다. 거칠고 차가운 마음을 잘 보듬어 줄테니까.

 

나무의 목숨을 언어의 온도로 잘 감싸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조용히 한적한 곳에서 이 책을 펼치면 더 좋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도 등대나 자작나무, 또는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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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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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1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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