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마르가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4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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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제목을 보자마자 '와, 이건 벨라스케스에 관한 소설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으니... '달과 6펜스'가 고갱에 관한 소설이듯이, 마르가리타라는 이름은 벨라스케의 그림인 '시녀들'에 나오는 공주 이름이니...

 

거장은 벨라스케스이고, 마르가리타는 공주이겠고, 그렇다면 이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되겠지, 배경은 스페인일테고 하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된 것.

 

아니다. 해설을 조금 보니 스페인이 배경인 화가 이야기는커녕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다. 거장은 화가가 아니라 그냥 거장이라고 불리며, 그는 소설가이다. 그리고 마르가리타는 공주가 아니며 거장을 좋아하는 유부녀이다. 그뿐이다.

 

여기에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그다지 크지 않다. 마르가리타는 그래도 많이 나오는 편인데, 거장은 아주 적은 부분에서만 나온다. 그럼에도 그가 주인공인 이유는 소설 속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본디오 빌라도' 이야기가 그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소설과 또 소설 속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1930년대에 구상되고 쓰여졌다고 할 수 있는 소련 소설에서 보기 힘든 환상적인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의 작가인 미하일 불가코프는 1940년에 사망했으며, 이 소설은 그가 살아있을 때 나오지 못하고 죽은 다음에도 한참 지나서 그의 세번째 아내 덕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원고 역시 그가 아내에게 구술한 내용이라고 하고)

 

사회주의가 막 건설되고 자리를 잡아가려고 할 때 악마와 신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니... 당시에 발간이 안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악마든 신이든 이들은 인간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바로 우리 인간이 지닌 양면인 것이다. 인간의 양면성... 소비에트 사회의 양면성... 이것이 바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인물이 지닌 모습이다.

 

주인공은 볼란드라는 악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분명 악마다. 악마 하면 우리 인간을 유혹하고 해를 입히는 인물로 나타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소설을 읽어갈수록 그는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다.

 

그와 함께 다니는 다른 수행원들이 인간 사회에 못된 짓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비에트 사회가 지닌 모순들이 함께 드러난다. 그들의 악행이 모순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인물들이 어떻게 안 좋은 행위들을 하고 있는지가 그들을 통해서 하나하나 까발려진다.

 

사회주의적 인간, 이타적인 인간, 공동체를 사랑하는 인간, 그런 소비에트의 모습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게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이 출간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주의가 정착, 발전되어 가야 할 시기인 1930년대 소련 사회는 오히려 사람들의 곤궁이 드러나고, 곤궁으로 인한 탐욕이 발현되는 사회, 또다른 특권층이 대두하고 있는 사회임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권층이 나오고, 그들은 일반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공동체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악마를 통해서 너무도 잘 드러난다.

 

세상에 자본주의의 반대 편에 선 사회주의에서 소비를 지향하는 군중들의 모습과 돈이라면 어떻게든 지니려고 덤비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당시 사회가 사회주의 건설에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을 떠난 사회는 선전과는 달리 더 힘든 사회임을... 악마를 통해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악마는 나중에 주인공들에게 평안을 준다. 세상에 악마의 힘으로 평안을 얻는다? 어떻게 가능할까?

 

소설의 말미에 신(예수로 추정되는)의 심부름꾼이 악마에게 와서 그들에게 평안을 주라는 부탁을 한다. 악마 역시 수락하고. 이는 두 가지 면에서 평안을 얻게 되는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반대되게 한 빌라도가 평안을 얻는 것과, 그런 소설을 쓴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평안을 얻는 것.

 

방대한 분량이긴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 빠르게 읽어갈 수 있다. 그만큼 이야기의 몰입도가 높다. 악마라는 환상적인 인물이 등장하여 사건을 마치 마술과 같이 전개해 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환상성 속에서도 진실을 찾을 수가 있으니...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는 신을 추방한 사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은 추방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신을 추방했다면 악마 역시 추방했어야 하는데, 우리 주변엔 이런 악마의 유혹에 굴복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추방당한 신을 다시 불러올 때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신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는 신...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좋다. 다만, 우리 현실에서 보이는 수많은 탐욕들이 바로 악마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악마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악마에게서 벗어날 궁리를 하게 된다.

 

그 궁리 속에서 우리에게 신은 다시 돌아온다. 우리의 평안을 위해서. 하여 이 소설을 악마가 이끌어가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신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점을 '본디오 빌라도'이야기가 소설 속의 소설로 들어간 이야기일 것이다. 그를 고통으로 해방시켜주는 쪽으로 소설의 결말이 나니까.

 

이 소설은 악마의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보게 한다. 볼란드는 어느 나라든 갈 수 있다고 했으니.. 탐욕에 가득차 있으면 그는 언제-어디서건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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