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 읽은 셈인데...
첫번째 읽었을 때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두번째 읽었을 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들어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선주가 겪었던 일들이,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겹치고, 또 성고문과도 겹치면서 분노하게 된 일과, 도청 앞을 지나면서(이때는 도청이 광주에 있었다) 은숙이 왜 벌써 분수를 틀어놓느냐고 항의 전화하는 장면에서...
도청 앞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느꼈을 은숙의 절망이 다시금 마음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다시 봤다. 오래 전에 본 영화.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주인공이 '우리는 폭도가 아니야'라고 절규하는 그 장면.
자신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시민들을 폭도로, 간첩으로 몰아야 했던 현실. 거기에서 폭도라고 인정하는 순간 목숨은 건질지 몰라도 자신들이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
그러니 그들은 폭도가 아니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월은 왔고, 또 오월은 갔는데...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말...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오월은 우리들 가슴에 박혀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분수를 틀던 그 행정, 관료주의... 은숙의 분노...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일까.
곧 영화 "택시 운저사"도 개봉한다고 하는데...
시집을 한 권 집어들었다. 광주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집어든 시집이 아닌데... 제목이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이라서 편하게 밝게 읽겠지 했는데...
이 시집의 많은 시들은 고향에 대한 이야기다. 무겁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가 살아온 삶이, 그 고향의 삶이 가벼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목이 된 시 마찬가지다. 역설이다.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렇게 읽힌다. 자꾸만 오월 광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이렇게 '아물허지도 않게 맑은 날'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솔 꽃가루 쌓인
토방 마루
소쩍새 울음 몇
몸 부리고 앉아
피먹진 소절을 널어
말립니다
산 발치에서는 한바탕
보춘화 꽃대궁 어지럽더니
진달래 철쭉 몸 사르더니
골짝 골짝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쌓인 송홧가루
밭은기침을 합니다.
진동규,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문학과지성사. 2012년 초판 9쇄. 26쪽.
오월,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없다. 자연이 이리도 좋아도, 우리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그렇게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오월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시를 읽으며 소설 "소년이 온다"와 영화 "화려한 휴가"가 겹쳐서 떠오르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