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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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로 알게 된 작가다. 말괄량이 삐삐, 얼마나 우리의 동심을 자극했던지. 드라마로 보면서 삐삐의 행동에서 통쾌함을 느끼면서 어린 시절의 환상을 키워갈 수 있었다고나 할까. 보통 사람과는 다른, 독립해서 살아가는 그런 삐삐의 모습에서 말이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어린 시절에 읽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것이 1983년이라고 하니, 꽤 오래된 책임에도 말광량이 삐삐만큼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소년이 온다"의 작가 한강이 노르웨이에서 한 강연의 원고를 읽으며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한강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소설. 어쩌면 이 소설에 나오는 형제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소년은 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읽게 되자마자 한 순간에 책의 끝부분에 도달했다. 세상에 이승에서 저승에 해당하는 낭기열라까지 가는데 순식간에 가듯이, 또 낭기열라에서 또다른 세상인 낭길리마로 가는데 순식간이듯이, 소설 역시 순식간에 읽힌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독재권력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자꾸 떠올리게 하고, 벚나무 골짜기 사람들과 들장미 골짜기 사람들이 함께 교류하며 잘 살다가 들장미 골짜기 사람들을 억압하는 텡일이라는 독재자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자꾸만 우리나라가 겹치게 되기도 한다.

 

자유를 다시 찾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 이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목숨을 거는 일, 두려운 일이다. 주인공인 동생 칼은 이런 두려움을 느낀다. 아니, 형인 요나탄도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두려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들은 나서야 했다. 특히 요나탄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맨 앞으로 나서야 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으므로.

 

동생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너무도 어린 나이 아닌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자유를 위해 자신을 던져야 한다는 것에는. 그럼에도 요나탄이나 칼은 이런 생각으로 싸움에 나서게 된다. 아니 자신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법인데, 만일 그걸 하지 않으면 쓰레기처럼 하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230쪽)

 

그렇다. 사자왕 형제는 이런 생각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 이들은 하잘것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소년이 온다"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죽음 앞으로 다가간 사람들이 나온다. 주인공 소년인 동호 역시 마찬가지다. 왜 두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거기서 물러설 수가 없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영화 "화려한 휴가"를 다시 봤다. 도청에서 나갔다가 진압 전날 밤, 다시 도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죽을 줄 알면서도 다시 돌아와야만 했던 사람들. 남아야 했던 사람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폭도가 아니라고 절규하는 주인공.

 

그렇다, 이들이 남을 수밖에 없었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 폭도가 아니라고 절규하는 것,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죽어가는 것, 이들의 선택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용기다.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것.

 

이 소설의 주인공인 형제는 바로 이런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 한다. 사람다움의 기본은 무엇인가. 바로 자유 아니던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 그 자유를 독재자가 압도적인 물리력을 동원해 침해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고 다시 되찾는 것. 되찾은 다음, 자신이 영웅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 아니던가.

 

사자왕 형제는 그래서 '낭기열라'에 남을 수가 없다. 그들은 이제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낭길리마'다. 형제는 그곳에서 평온한 삶을,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그곳에는 독재자는 없으니까.

 

이 소설의 묘미는 우선 재미다. 재미있게 아이들이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칼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겪게 될 일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 두려움 앞에서 누구나 떨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두려움이 있지만 두려움을 인정하고 앞으로 한 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용기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으면 앞으로 겪게 될 일에 해보지도 않고 미리 주저앉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무엇이 용기인지 알 수 있게 되니까.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렵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 그래야 쓰레기같은 하잘것없는 삶을 살지 않게 될 테니까.

 

한강 덕분에 좋은 작품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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