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화첩기행 1 - 예의 길을 가다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떤 예술가들은 우리들 기억에 영원히 남으려는 듯이 그가 활동했던 장소에 그의 흔적들을 곳곳에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수가 없다. 그가 살았던 장소도 변해버리고, 그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없어진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예술가들은 장소를 통해 복원해 낸다. 예술가들을 우리들의 기억 속으로 다시 불러낸다. 아니 기억 속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생활 속에 불러낸다. 그렇게 그는 예술가들이 살았던 장소,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장소를 찾아간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들고서.

 

그곳에 가서 예술가들을 만난다. 실제로 만나지야 못하겠지만 예술가들의 혼과 소통을 한다. 그런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 그 장소를 그림으로 그린다. 이것이 바로 '화첩기행'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를 통해서 많은 예술가들과 장소를 만난다. 비록 그 장소가 예술가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너무나 멀리 와 있을지라도 예술가의 흔적을 저자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을 홀대했던 시대가, 나라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이제는 흔적도 찾기 힘든 장소도 많지만, 이런 저자의 노력으로 조금씩 조금씩 예술가에 대한 흔적이 남겨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도 예술의 폭을 넓고 깊게 하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문화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절대로 홀대해서는 안 될.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오는데...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을 구분하지 않는다. 예술을 그렇게 구분하는 것 자체가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활동에 모두 혼신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예술가들을 보자. 어떤 장에서는 특정한 누구라고 하기 힘든 사람들도 나온다. 가령 '진도소리와 진도' 하면 그것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진도라는 섬에 대한 이야기다. 그 섬이라는 장소가 그런 소리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이난영과 목포, 진도소리와 진도, 강도근과 남원, 서정주와 고창, 허소치와 해남·진도, 이매창과 부안, 윤선도와 보길도, 운주사와 화순, 임방울과 광산, 이효석과 봉평, 김삿갓과 영월, 아리랑과 정선, 나운규와 서울·남양주, 김명순과 서울, 최승희와 서울·도쿄, 정지용과 옥천, 나혜석과 수원, 이건창과 강화, 김동리와 하동, 안동 하회와 별신굿 탈놀이, 이인성과 대구, 남인수와 진주, 박세환과 경주, 문장원과 동래, 암각화와 언양, 이중섭과 제주, 김정희와 제주, 정선과 금강산, 최북과 구룡연, 최익현과 금강산

 

이것이 1권에 나온 예술가와 장소다. 내가 가 본 곳도 있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알고 있던 예술가와 모르던 예술가가 함께 모여 있다.

 

이 중에 슬픈 사연, 예술가를 이따위로 대하는 나라에 대한 절망, 그 시대에 대한 분노, 바로 이인성과 대구 편이다. 이인성, 소설가 이인성은 알았는데, 화가 이인성은 모르고 있었다. 그가 한국적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 그리고 경찰관과의 시비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민중을 지킨다는 경찰이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로 한 나라의 예술가를, 그것도 자부심이 넘쳐나던 예술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그 시대, 그 야만.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테니까. 각 공간은 그냥 물질적 공간으로만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예술가들이 그 공간에서 활동하는 순간 공간은 장소가 된다. 드디어, 공간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장소.

 

그 장소들에서 우리는 예술을 만나고 예술가를 만나고,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삶을 만나게 된다. 그 점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2권에서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예술가들을 만날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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