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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김현희 지음 / 생각비행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박일환의 청소년 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에 나오는 세 편의 시가 생각났다.
'찔리십니까? 찔리시냐고요? 찔리실 겁니다'
그런데 만약 교사들이 찔렸다면 이런 책이 나왔을까? 아마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학생들이 찔리냐고 교사들에게 외쳐도 교사들은 찔리지 않았나 보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사로 10년을 근무한 교사가 학교의 현실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도대체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들이 많은지를.
교사 개개인을 놓고 보면 이상한 사람이 별로 없을지 모른다. 정말로 이상한 교사들이 있기는 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머리를 보면 신경질을 내던 어떤 교사를 예로 들었는데, 그렇게 이상한 교사들이 학교에 한두 명 있다고 해서 이상한 선생들이 많을까 라는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결국 학교에 이상한 선생이 많은 이유를 이 책은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구조나 제도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제도나 구조의 문제로 넘어가면 우선 학교에서는 여전히 - 뉴스에서 교권추락에 대해서 많은 기사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이는 여전히 교사가 권력자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 교사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그런 구조다.
수업이나 생활지도에서 교사들은 전권을 휘두른다. 많이 완화되었다고들 하지만 아니다. 학교 현실에서는 여전히 교사의 강압이 통한다. 학생들이 이 강압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동조해주는 교사를 만나긴 힘들다. 그만큼 교직사회는 경직되어 있다.
이런 평범한 교사들, 보통 교사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줄도 모르고 그 권력을 행사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권력에 취해 있으니, 자신들이 정상적으로 행동한다고 하는 것들이 학생의 처지에서 보면 이상할 수밖에 없다.
창의성, 21세기, 개성 운운하면서, 민주시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학교에서는 여전히 두발, 화장, 염색을 잡는다. 똑같은 옷을 입혀 놓는다. 똑같이 행동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학생은 사람이 아니다. 그냥 학생이다. 통제되어야 할. 여기에 교육은 작동하지 않는다. 토론? 그런 거 없다. 교칙이니까 당연히 지켜야 한단다.
그 교칙의 정당성, 시대적 유용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교사들이 대다수다. 불합리한 교칙이라도 준수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또 그대로 행동하는. 이들 교사들에겐 '시민불복종'이란 없다.
'시민불복종'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말이고, 실제 학교에서는 적용되어서는 안 될 말이다. 학생들이 이런 불복종 운동을 하면 학교엔 비상이 걸린다. 비상사태는 진압되어야 한다. 재빨리 진압하려고만 한다. 학생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을 징계하기에 급급하다.
너희들은 아직 어리다. 판단력이 없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출퇴근 시간 파괴가 요즘 대세인데... 학생들을 정해진 시간까지 꼭 등교하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단지각이라고 해서 벌점을 주거나 다른 징계를 한다.
근무 유연성, 이런 거 학교에는 없다. 출결을 점수로 매기는 조직이 바로 학교다. 세상에? 성실히 학교에 나오면 좋기는 하겠지만, 나오지 않는 것이 무슨 죄라고 점수를 깎는단 말인가. 마치 학교에만 앉아 있으면 허수아비라도 모범생이 된다는 듯이... 그렇게 출결로 학생들을 움켜쥐고 있는데도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데, 출석을 강조하는 초기 산업혁명 시기의 행동들을 버젓이 하고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교사들이다.
이런 보통교사들,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교사가 되어 버린다.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사회와의 거리 역시 멀어진다.
학교만큼 변화에 둔감한 곳이 있을까. 교사만큼 변화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직업이 있을까. 그냥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내는 교사들이 많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들은 문제교사다.
학교를 시끄럽게 하는 교사, 교사를 불편하게 하는 교사, 그들은 다른 교사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교사들은 이상하게도 학교를 일찍 그만둔다.
정년까지 남는 교사들, 교감이나 교장이 되는 교사들, 장학사, 장학관이 되는 교사들, 이들은 학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가 아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하는 교사가 아니다. 학교 교육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교사가 아니다.
그냥 주어진 체제에 안주하고, 잘 적응하는 교사들이다. 동료관계가 좋은 교사, 특히 윗사람들과 관계가 돈독한 교사들이 그런 교사들이다. 그런 교사들만 살아남게 된다.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자리에.
그러니 자연스레 이상한 교사들만 득시글하게 된다. 학교에 이상한 선생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실 '선생'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선생(先生)'이라 함은 먼저 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먼저 나다는 말, 시간적으로 먼저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깨닫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스승'이라는 어마어마한 말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다. 말로 행동으로 지식으로 하여튼 무엇으로 나에게 감명을 주는 사람,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그들이 바로 '선생'이다.
이런 사람이 학교에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선생'이 아니다. 그냥 교사일 뿐이다. 직업인으로서의 교사. 그런데 교사들이 자신들을 선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우해주길 바라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선생이 아닌데 선생으로, 아니 선생님으로 대우받고 싶은 욕망. 이상한 교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권위와 존경을 강요하고 있으니...
절절하다. 이 책. 교사들, 읽으면 찔릴 것이다. 아니 찔려야 한다. 그런데, 안 찔릴 수 있다. 나이 든 교사 - 모두가 똑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더 젊은 교사들도 많다. 진짜 선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대다수는 이렇다는 얘기다 - 는 이런 책을 읽지 않는다. 젊은 교사는 읽을 시간이 없다.
어쩌면 이런 현실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고민해봐야 바뀌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보통교사로 살아가려 한다. 이렇게 보통 교사들이 학교에 득시글하게 된다. 찔릴 수가 없다. 이런 보통교사들이 바로 이상한 선생인지도 모르면서.
교육부 장관, 교육감, 교장, 교감부터 또 나이 든 교사들부터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찔려야 한다. 정말로 교사들이 찔리지 않으면 학교 변하지 않는다. 교육지원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교육청, 쓸데없는 연수 하지 말고 이런 책 학교에 보급해서 교사들에게 읽으라고 권장이나 했으면 좋겠다.
찔리는 교사가 많이 나오게... 그래야 학교가 바뀔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