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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길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05
윤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강병철의 [작가의 객석]을 읽다가 윤중호를 발견했다. 발견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그를 수필가나 또는 기자로서 문학판의 주변을 관찰하고 글로 써서 남기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책에서 윤중호가 시인이라는 사실, 그 시가 왜 가슴을 울렸는지, 무언가 슬픔이 속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그런 시를 만났다.
그럼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소개로 윤중호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윤중호의 글을 통해서 만나야 한다. 시인이니 그의 시를 읽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인을 만나는 태도다. 어떤 시를 만나는가는 독자의 마음이니, 나는 그의 유고시집을 골랐다.
제목도 '고향 길'이다. 고향, 그리움을 자아내는 말. 그러나 현대인은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이지 않은가. 이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없다. 고향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현대인들은 뿌리뽑힌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고향 길'이라는 시가 마음에 와 닿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물리적인 고향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는 모두 마음의 고향이 있다. 그런 고향에 대한 정서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해도 좋고,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와야만 하는 미래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해도 좋다.
하여 '고향 길'이라는 제목은 아득함과 아늑함을 동시에 주고 있다. 시집을 읽으면 시 한 편 한 편이 마음을 파고든다. 시집 뒷부분에 있는 김종철이 발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어느 시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어려운 낱말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충청도 사투리가 여과없이 드러나 있는 시가 있음에도 시들이 모두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냥 그렇게 아득한 과거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아늑함이라니.
'한때는 귀신이 펑펑 울 그런 해원의 시를 쓰고 싶었다. 천년의 세월에도 닳지 않을, 언듯 주는 눈길에도 수만 번의 인연을 떠올려 서로의 묵은 업장을 눈물로 녹이는 그런 시.' ('영목에서' 부분. 10쪽)
이게 젊었을 때 우리 모습 아닌가. 과거를 치열하게 부정하며 오직 현재와 미래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시절. 산업화로 과거를 모두 밀어버리던 우리나라 현대사의 모습. 그러나 이런 시는 없다. 이런 삶은 없다.
시인은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것, 티나지 않은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 우리 삶은 그렇게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어 왔고, 무언가를 이루지 않고 물 흐르듯이 사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지게 작대기 장단이 그리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고향은 너무 멀고 그리운 사람들 하나 둘 비탈에 묻힌 이 나이가 되어서야, 돌아갈 길이 보인다.' ('영목에서' 부분. 10쪽)
'아무 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 / 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 ('영목에서' 부분. 11쪽)
이게 바로 이 시의 핵심이다. 무언가를 억지로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흔적을 억지로 남기려 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그 삶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자연스러움은 산업화된 현재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사람들끼리 함께 살던 공동체가 살아 있던 과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니다. 단지 과거가 아니다. 이 과거는 바로 미래다. 오래된 미래. 윤중호는 나이를 먹어서야 이 오래된 미래를 보았다. 우리게에 보여줬다. 이 시집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아무 것도 이룬 바 없는 사람, 이것은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살아왔다는 이야기. 그런 사람의 삶은 자연과 사람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다. 시인은 완두콩에서 바로 생명의 원초적인 모습을 본다.
완두콩
콩깍지 속에
새파랗게 빛나는 완두콩 여섯 개
곰실곰실 누워 있다가
콩깍지를 터니, 부시시 깨어나
서로 몸을 기대며 웅크립니다.
무심코 콩깍지를 훑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완두콩마다, 콩깍지에
허연 탯줄을 달고 있었거든요.
윤중호, 고향 길, 문학과지성사. 2005년. 초판 2쇄. 65쪽.
이토록 아름다운 시라니. 완두콩에서 발견하는 공동체, 또한 생명의 모습. 어떻게 감히 생명을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시인이 함부로 무엇을 이루려고 할 수 있을까.
자연스레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가. 그것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하나. 단 몇 분도 흙을 밟지 못하는 삶, 하늘을 올려다 볼 시간을 거의 갖지 않는 삶.
주변 사람을 돌아보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는 삶. 사람이 아닌 다른 대상들은 모두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판단하는 그런 세상. 그런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시인의 이 시집은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들이 지니고 있어야 할 탯줄은 무엇인가. 우리는 탯줄을 아무 생각 없이 잘라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고향 길... 단지 떠나온 곳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그래서 시인은 '아는 얼굴들 모두 신작로 따라 대처로 떠나고, / 이제 내가 아는 얼굴 되어, 신작로 끝 / 빈집, 불 밝혀야 하나.'('고향 길 2' 부분. 23쪽)라고 하고 있다.
시인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이제는 고향 길에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빈집, 불 밝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윤중호, 그는 뜻하지 않게 갔지만, 그의 시는 남아서 이렇게 우리에게 불을 밝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