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가고 있다. 여름이면 생명들이 왕성하게 활동한다. 생명을 누리기 위해, 또다른 생명을 남기기 위해.

 

  그렇게 봄은 여름을 위해, 여름은 가을을 위해 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 다음은 없다는 식으로 자기만의 삶을 살지 않는다.

 

  열심히 살되, 미래도 생각한다. 다음을 예비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런 자연에서 우리는 삶을 배운다.

 

  정권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영화를 위해만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실천하기도 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당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치는 미래를 보고 하는 것.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에 꽃을 피울 수 있게, 또 지금 핀 꽃이 지지 않게 하는 것.

 

그런 정치가들을 우리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잘라버린 정치가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적당히 가지치기도 하고, 물도 주고, 토양에 거름도 주며, 주변의 다른 존재들과도 어울리게 하는 그런 정치가를 원한다.

 

민주주의 나무를 베어버린 사람, 지금은 쫓겨났다. 그리고 다른 정치가가 그 뒤를 이어받았다. 그에게는 잘린 나무를 살려내야 할 의무가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잘린 나무가지를 가져와 물을 주고 그 나무에서 꽃이 피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단지 꽃만 피는 것이 아니라 꽃들이 열매를 맺고 다시 뿌리를 내려 풍성한 나무로 자라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정치가, 우리 국민이 바라는 정치가가 아니겠는가.

 

배용제 시집을 헌책방에서 구했다. 제목도 달콤하다. "이 달콤한 감각"

 

그러나 시의 내용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밝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어둡다고 가리지 않는다.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고. 이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그런 시들이 많은데, 그 많은 시들 중에 유독 이 시가 눈에 들어왔다.

 

현실은 어둡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희망적이다. 물론 지금은 힘들다. 하지만 힘듦 속에서 꽃이 피어날 수 있음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이 가지가 잘린 조팝나무를 가져와 물을 주고 그 나무에 꽃이 피길 바라는 것,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꽃들은 그에게 많은 자식들을 의미하고, 그럼에도 그 자식들이 잘 자라기까지에는 많은 일들이 있음을 이 시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으로만 이 시를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조팝나무 가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잘라버린. 지금까지 잘 자라지 못한. 그 조팝나무 가지에 물을 주고 꽃을 피우는 사람. 그런 정치가. 지금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정치가 아니겠는가.

 

자기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 시는... 

 

 꽃들은 상처 자국에서 핀다

 

뿌리 잘린 것들의 밑바닥엔 모두 상처가 있지

조팝나무 가지가 꽂힌 그릇의 물을 갈아주며 그가 중얼거린다

봄빛을 따라간 산책길에서

주워 온 꺾인 가지 몇,

시퍼런 눈조차 뜨지 못했던 것들 어느새

새하얀 연고 같은 꽃들을 매달고 있다

무슨 보물인 양 여기는 그의 우스꽝스런 몸짓을 보면서

고아원 양지바른 곳에서

여린 가지를 뻗고 자라온 그가

남매를 두고서도 또 다른 아이를 원하는 집착에 대해

생각해본다. 여지껏 삼켰을 눈물에 대해

어쩐지 그의 웃음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눈물이 싱싱해질수록 더욱 선명한

조팝나무 저 꽃들,

바람에 날려 온 봄빛의 부스러기일지도 몰라

상처를 딛고 악착같이 반짝이는 딱지 같은 꽃들을

무슨 별인 양 바라보는

그의 양팔에 아이들이 매달린다

어떻게 이것들이 내게서 생겨났는지

햇살과 공기와 구름과 모든 계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그러나 꽃들이 제 몸을 벗어나기 전까지

그것들이 단단한 씨앗을 품을 때까지

아직은 잘린 상처로 눈물을 삼키며 허공을 움켜쥔

조팝나무 가지의 아슬아슬한 터전, 그의 봄날.

 

배용제, 이 달콤한 감각, 문학과지성사, 2004년. 22-23쪽.

 

상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상처에서 꽃이 피게 해야 한다.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 자신의 상처를 인식하고 극복하려 했기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정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잘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다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그렇게 이 시를 확장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꽃을 피우기 위해 우리가 물을 주고 돌보아야 할 차례다. 꽃을 피우게 하는 것, 정치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자주 물을 갈아줄 수 있도록 우리 함께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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