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강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김용택.

 

   조그만 분교의 선생으로 지내면서 순수함을 잃지 않은, 참으로 해맑은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시집에 나오는 시들을 읽으며 마음 한 켠이 짠해졌다. 세상에, 그렇게 순수한 농촌의 모습이 지속되었으면 좋으련만, 우리 농촌은 이렇게 사라져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대도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농촌들이 사라져갔는지. 그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이 시집에 나오는 시 '저 강변 위의 고운 햇살 1,2,3'을 읽다보면 새만금으로 파괴되어 버린 갯벌도 생각이 나고, 고전압 송전탑으로 삶이 피폐해져 버린 밀양도 생각이 나고, 해군기지 건설로 파괴되어 버린 제주 강정, 이젠 사드라는 놈으로 또다시 살기 힘들어진 성주도 생각이 나는데.

 

어디 이곳뿐이랴. 지금 농촌에 가 보라. 얼마나 많은 집들이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지. 폐가들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농촌 아닌가. 그럼에도 농촌을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니.

 

오히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장려금을 주는 나라, 강을 파헤쳐 그 모래로 논을 덮어버린 나라, 이것이 어떻게 제대로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 나라인지.

 

김용택의 시집에서 농촌에 관한 시를 읽으면 슬퍼진다. 사라져가는, 파괴되어가는 우리네 농촌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인을 무엇을 할 것인가. 도대체 시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집 후기를 보면 김용택 시인은 많이 아팠다고 한다. 물론 믿고 따르던 두 시인 이광웅, 김남주 시인의 죽음에 대한 충격도 있었겠지만, 죽어가는 우리네 농촌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시인'이라는 시를 보자.

 

시인

 

배고플 때 지던 짐 배부르니 못 지겠네.

 

김용택, 강 같은 세월, 창작과비평사. 1999년 7쇄. 33쪽.

 

시인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나타나 있지 않은가. 시인은 높은 곳 부유한 곳 편안한 곳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인은 낮은 곳 가난한 곳 어려운 곳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찾아가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은 위에서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몇몇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읊조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래야 시인이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 그 사람들이 알아들고 흥얼거릴 시를, 손바닥 치며 맞아 그래 라고 할 수 있는 시를 쓰는 사람.

 

그래서 시인은 배부름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시를 못 쓴다. 더이상 시라는 짐을 질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에 벌써 2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외침이지만, 이 시를 별다른 직업도 없이 편하게도 살아왔던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밥줄

 

화이고매

저런 쌔려쥑일 인사들이

시방까지 살아 큰소리치며

이 나라 하루 세 끼

아까운 밥을 쥑이네

저 더러운 손으로

저 더러운 입으로

우리 어매 피땀어린 삼시 세 끼

밥을 쥑이네 하얀 밥을 쥑여

저런 쥑일놈들이

저 밥이 어떤 밥이간디

아깐 밥 편히 묵고 앉아

함부로 남의 밥줄을 끊네.

 

김용택, 강 같은 세월, 창작과비평사. 1999년 7쇄.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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