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구한 책이다.

 

  이제는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시인. 더 이상 시가 나올 수 없는 시인.

 

  일찍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시인이 남긴 시집이다. 고정희 시인 하면 사회 참여적인 시를 썼다는 쪽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시집은 제목처럼 사랑시집이다.

 

  한자로 연시집이라고 하는데... 사랑을 노래한 시들이 실려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시집에 있는 시들도 한두 편은 그대로 수록되어 있기도 한데...

 

  사랑시집이라고 해서 남녀간의 감상적인 사랑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한용운의 '님'과 같이 이 시집에 나오는 '너, 그대, 당신'도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냥 단순히 사랑하는 남녀로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갈구할 때 사랑에 빠지지 않는가. 그런 순간을 시로써 잘 표현해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신의 온마음을 상대에게 바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하나, 다른 시집에도 실려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랑... 그런 시

 

사랑법 첫째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더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하여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놓습니다

 

고정희, 아름다운 사람 하나, 푸른숲. 2000년 첫판 10쇄. 73쪽. 

 

사랑은 내 기대를 그대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에 맞춰 내 기대를 낮추는 것.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 어찌 남녀 사이의 문제만이랴. 나와 다른 존재들이 관계맺을 때 명심해야 할 그런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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