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증가율이 세계 최저라고 난리다.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많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살기 힘들기 때문에.
먹고 살기가 힘든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가 있겠는가. 그 아이를 키울 가족의 곤란함과 또 아이가 자라서 고생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
생계야 어떻게 어떻게 꾸려나간다 쳐도 그 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교육비가 든다.
대학 등록금이 거의 살인적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대학 안 나오면 되지 하는 소리도 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터무니 없이 높다.
경제적 차이가 학벌 차별을 눌러버렸다고, 학벌없는 사회가 해산했지만, 그 경제적 차이가 학벌 차이를 낳게 되는 구조는 여전하기에 서민들은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기껏 아이를 낳아 키운 부모들. 아이를 대학에 보내도, 또 아이가 대학을 졸업해도, 지금 이 시에서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을까.
부녀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이의
추운 발소리를 듣는 애비는 잠결에
귀로 운다
김주대, 그리움의 넓이, 창비. 2012년 초판. 84쪽.
자식을 아르바이트 하게, - 말이 아르바이트지 사실은 생계 노동이다 - 만들어 놓고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부모.
아이의 고단함을 덜어줄 수 없는 무능함. 그래서 잠든 척이라도 해야 하는, 그런 부모. 아이의 귀가 발소리에 숨죽여 울 수밖에 없는 부모.
그런 부모들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이를 더 낳으라고 할 수 있는지.
금요일, 한 달에 한 번 4시에 퇴근을 하는 법을 만든다고 하는데... 퇴근하면 뭐 하나? 쓸 돈이 없는데... 쉴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결국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로 자신들의 청춘을 보내야 하고, 부모들은 그 청춘들의 아픔을 덜어주지 못해 눈물을 더하여 지내야 하는데...
아이를 나으라는 말을 하기 전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고, 그 조건을 통하여 아이가 자라서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이 먼저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정책 입안자들, 적어도 이 시에 나타난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겠지만 생각은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다시 봄이다. 청춘이다. 그런 청춘들이 아프지 않게 새벽까지 힘들게 청춘을 보내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