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죽음 2
진중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1권에 이어 2권이다. 2권을 구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1권과 표지그림이 다르다. 1,2권이 나란히 있던데, 내게는 2권만 필요한데, 내가 가지고 있는 1권과 표지그림이 다르다니... 다른 책인가?

 

여러 번 펼쳐보고 찾아보고, 생각해 보아도 다른 책은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판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1권은 2005년에 나온 책이고,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이 2권은 2002년에 나온 책이다.

 

1권이 더 나중에 나온 책인데, 그래서 책의 쪽수나 그림의 위치, 그림의 크기 등이 좀 달라졌기 때문에 중고서점에 있는 책이 낯설었나 보다.

 

비록 판이 짝에는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대폭 개정된 것도 아닐테니 2권만 사기로 한다. 마치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 느낌을 그냥 지니기로 한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다. 역시 진중권의 글은 재밌다. 술술 읽힌다.

 

이번엔 4부부터 시작한다. '너의 죽음'이다. 그리고5부 '반대물로 전화한 죽음'이 나오고, 6부 '현대의 묵시록'에서 책은 끝난다.

 

시대에 따라서 그림에 나타난 죽음을 살펴보는 것인데, 이는 시대에 따른 죽음에 대한 인간의 의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답이 없는 것이 죽음 아니던가. 알 수도 없는 경험이고. 누구나 다 한 번은 꼭 경험하지만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생각은 시대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그림을 통해 살피는 것인데...

 

고대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존재들이 중세에는 신에게 간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던 존재들에게 죽음이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인간이 신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인간 존재 자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존재, 자신의 의식이 소멸한다는 것, 그것은 공포였다. 그러나 그 죽음을 나의 죽음이 아니라 너의 죽음으로 바꾸어 놓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너의 죽음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비극미라고나 해야 할까... 이때 죽음은 아름답게 표현된다. 낭만주의인 것이다. 이런 낭만주의에서는 자살조차도 아름다움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아름다움이 유지될 수는 없다.

 

죽음은 늘 공포인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집단의 죽음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바로 '현대의 묵시록'이다.

 

죽음은 결코 너의 죽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말살하는 죽음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공포를 그림으로 그려내기 시작했지만, 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을 그리려는 화가는 줄어들었다.

 

왜냐하면 그리던 그리지 않던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 있고,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죽음을 연기하는 의사들이 나오지만 그림에는 의사조차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 그림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인 것이다. 이 죽음 앞에 선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유한한 삶을 더욱 의미있게 살려고 한다.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죽음에 대한 그림들을 시대적으로 살펴보는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다. 어차피 우리는 죽음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날마다 죽어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니까, 잘 죽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잘 산다는 것이 되니까...

 

죽음 앞에 선 인간을 다른 말로 하면 '삶 앞에 선 인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이 죽음을 잘 맞이하는 방법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그림들... 그리고 삶과 죽음.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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