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의 황홀경
조용훈 / 문학동네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시골 - 서울과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다른 장소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에 내려가 살던 저자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치 못하다, 그 자연에서 시와 그림을 발견하고 그것을 글로 옮긴 책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 아름다움, 즐거움, 놀라움 등등을 느끼다가 문득 자연에서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그림을 떠올리면서 화가가 왜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고, 다시 그림과 더불어 또 자연과 더불어 떠오르는 시를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시와 그림과 자연이 하나로 저자의 마음 속에 파고든다. 그 파고듦을 혼자 누릴 수 없어 편지 형식의 글로 엮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편지 형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순간 책을 쓴 이와 읽는 이 단 둘만이 존재한다. 책을 쓴 이가 자신이 느낀 것을 조근조근하게 읽는 이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단지 사실이나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감정의 전달, 글을 쓴 이의 감정이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서 오롯이 읽는 이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그 장소에서 어떤 감정이었으며 무엇을 느꼈고, 그 때 떠올린 그림들과 시에 대해서 읽는 사람 역시 공감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특히 이 책은 가을에서 겨울의 초엽까지의 계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상실의 계절이기도 한 가을에서 느끼는 감정...

 

책의 시작은 그래서 고흐의 그림에서 시작한다. '감자 먹는 사람들' 결코 부유하지 않은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려 했던 고흐. 그는 광부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과 공감하려 했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그렸으며, 이렇게 가난한 가족을 그렸다.

 

그런 그를 가을이 깊어가는 시점에서 떠올리고 있다. 황금빛 논을 바라보면서 벼를 생각하면서 고흐의 그림과 더불어 이성부의 시 '벼'를 소개하고, 이윤택의 시 '이런 정신주의를 경계함'을 떠올린다.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라고 마냥 풍요로운 것이 아님을, 그 속에는 치열한 노동과 사람들의 땀이 배어 있음을, 그래서 이윤택의 시에서는 '논길은 .... 농부가 걸어가야 할 노동의 길'이라고 하지 않는다.

 

수확의 기쁨만을 누리는, 결실의 모습만 보고 환희에 젖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배인 땀을 알아봐야 하는 것, 그런 가을...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에 수록된 많은 글들이 그래서 자연을 객관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자연은 사람과 함께 하는 자연으로, 단순히 배경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에 깊숙히 들어와 사람 삶의 일부가 된 자연으로 이야기된다.

 

이런 자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을 화가는 어떻게 표현했고, 시인은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편지 형식으로 전해주고 있다.

 

아니, 화가와 시인의 표현을 전해주고 있다기보다는 그것에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전해주고 있다. 그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는 듯이.

 

하여 시와 그림과 글이 하나로 엮여 감동을 준다. 예술이 각 분야로 찢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여행을 갈 때 그곳에서 그동안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또 머리 속에 있던 예술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비단 저자의 느낌만이 아니라 그렇게 우리도 느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이 사람의 삶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또 자연과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삶과 예술과 자연이 하나로 엮여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이다.

 

잔잔한 감동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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