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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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 있을 때 여러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은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다.

 

이론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고, 현재를 뛰어넘어야 하지만, 실천은 현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기층 민중과 함께 가야 한다고. 그들을 앞에서 끄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깨 겯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이론에 매여 이론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재단하지 말고, 내치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할 때는 이론을 잠시 넣어두고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사람이 우선이라고.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스한 가슴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신영복 선생의 삶을 보면 그는 자신의 학교 생활을 각 20년씩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우선 제일 먼저 20년은 본인이 배우는 시절이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절인 것이다. 초,중,고,대학교를 거치면서 배우는 학교 생활. 그러나 이 생활은 관념에 매인 생활이었다는 것. 아직 익지 않은 열매에 불과하다는 것.

 

두 번째 20년은 감옥 생활이다. 이 감옥 생활을 또다른 대학시절이라고 부른다. 섣부른 이론, 관념에 갇힌 이론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현실을 깨닫게 되는 학교 생활. 그것이 바로 감옥의 생활이다. 이때에서야 비로소 신영복 선생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관계를 알게 된다. 그가 실천을 우경적으로 할 수 있는 발판이 이때 마련된다.

 

세 번째 20년은 성공회대 교수로 생활한 학교 생활이다. 두 번의 학교 생활을 거쳐 이제는 실천을 하는 단계다. 그는 많은 강연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리고 다닌다. 여러 사람을 만난다. 만나면서도 이론을 앞세우지 않는다. 사람을 앞세운다. 사람보다 앞선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이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사람이 이론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는 지금 잃어버린 '관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관계는 사람을 사람으로 볼 때 찾아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사람을 사람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온통 교환가치만이 판치는 세상이고, 교환가치를 잃은 사람은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대우하는 것, 그것이 관계를 찾는 첫번째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의 생각을 볼 수 있는 유고집이다. 여러 곳에 실렸던 글을 모았고, 또 강연 내용도 수록했으며, 기존에 발표하지 않았던 글도 모아 놓았다.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꽤 있지만, 겹친다는 얘기는 반복된다는 것이고, 반복된다는 것은 강조한다는 것이니, 신영복 선생이 어떤 생각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나와 있는 이 부분을 참조했다. 그냥 신영복 선생의 생각을 텍스트로 읽고 아는 것이 아닌, 또 신영복 선생의 삶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아닌, 바로 읽는 나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나와 함께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 그런 의미를 새기면서 읽었다.

 

'책은 벗입니다. 먼 곳에서 찾아온 반가운 벗입니다. ... 독서는 모름지기 자신을 열고, 자신을 확장하고, 그리고 자신을 뛰어넘는 비약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텍스트를 집필한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그 텍스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필자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발 딛고 있는지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와 우리 시대의 문맥을 깨달아야 합니다.' (249-250쪽)

 

'독서는 만남입니다. 성문(城門)바깥의 만남입니다. 자신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자신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확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만남인 한 반드시 수많은 사람들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마치 바다를 향해 달리는 잠들지 않는 시내와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이 모이고 모여 어느덧 사회적 각성으로 비약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시대가 갇혀 있는 문맥을 깨트리고, 우리를 뒤덮고 있는 욕망의 거품을 걷어 내고 드넓은 세계로 향하는 길섶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253쪽)

 

이렇게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숲을 이루면 세상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 하나하나를 나무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그 나무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여 숲을 이루자. 이것이 바로 '관계'다. 희망이다.

 

그래서 절망의 시대에 좌절하지 말고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을 명심하자고 한다. 씨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것. 왜냐, 심어야 하니까. 심어서 열매를 맺게 해야 하니까. 어려울 때 씨과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땅에 심어야 한다는 것.

 

지금 우리는 새로운 씨앗을 심을 때가 아니던가. 사람들이 매주 토요일에 광화문에 모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새로운 씨앗을 심고자 함이 아니던가.

 

한 사람 한 사람은 비록 작은 나무에 불과할지라도 이 나무들이 모여 관계를 맺으면 거대한 숲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촛불을 통해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기가 막히게도 이 책은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가 싶다.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 (378쪽)

 

이 책의 제목은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서 또 사회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있을 때 불렀다는 노래에서 따왔다.

 

냇물이 강물로 가고, 강물이 바다로 가듯이 우리들도 이렇게 함께 모여 숲이 될 때 사회를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 바다는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고 다름을 포용하고 함께 가는 그런 '화이부동(和而不同)'이 이루어지는 사회라는 것. 그것은 바로 '평화와 소통과 변화'라는 것.

 

제목에서도 신영복 선생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지 이제 일년. 지금 우리는 정치의 시대에 와 있다. 어떤 정치를 우리가 해야 하는가를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그 점에서 신영복 선생의 이 마지막 글은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은 시간은 차분히 글을 읽으며 다시 신영복 선생을 만나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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