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중심 삶창시선 47
정세훈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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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명징하다. 시에 쓰인 낱말들도 그렇고, 시를 이루고 있는 주제도 그렇다. 명확하게 다가온다. 아니  마음으로 에둘러 오지 않고 직접 마음에 꽂힌다. 그렇게 시가 쓰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가 바로 시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시로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하다? 그 삶이 바로 노동의 삶이기 때문이다. 거짓이 없는 노동의 삶.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노동하며 살아온 사람의 삶이 이 시집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그렇게 시인은 시를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소외되어 온 노동을, 노동자들을 시의 중심으로 다시 불러내고 있다.

 

잊혀진 것 같지만 노동은 잊혀져서는 안된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있는 순간에도 노동은 이루어지지고 있고, 이 노동현장에는 아직도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고 있기에.

 

이것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것으로 포장해도 감춰질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들을 시인은 다시 시를 통해 불러내고 있다.

 

그래서 명징하기는 하지만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아직도 이런 일이? 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아프기도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잊으려고 애써 눈 감고 지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더욱 아프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노동현장일텐데...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을 받고 심지어는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에 시인이 눈 감아서는 안되지.

 

이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몸의 중심'이라는 시, 중심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시인이 이런 표현을 해서 그런지, 국정 농단으로 언론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이야말로 진정 우리 사회의 중심일텐데... 우리는 너무도 이 중심을 잊고 지내오지는 않았는지.

 

시를 보자.

 

몸의 중심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정세훈, 몸의 중심, 삶창. 2016년. 26-27쪽

 

얼마나 진실한 표현인가. 얼마나 명징한 표현인가. 마음 속으로 곧장 날아와 꽂히는 말이지 않은가.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 안 되는 / 상처난 곳'이 몸의 중심이라니. 그렇다. 우리 몸의 중심은 바로 이곳이다. 아픈 곳, 상처난 곳, 그래서 우리가 늘 어루만져 주어야 할 곳.

 

몸의 중심이 이럴진대 사회의 중심은 어디인가? 정치권의 꼭대기에서 권력을 누리는 자들인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해 사적으로 써버리는 경제권력들인가. 기타 힘있는 자들인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중심은 바로 어루만져 주어야 할 사람들,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들, 드러나지 않으나 사회를 지탱해가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중심이다.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소외받는 곳에서 그래도 우리 사회를 지탱해가도록 노동하는 사람들, 우리 인간들의 생명을 유지해나가도록 노동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사회의 중심'이다.

 

우리의 관심도 이제는 국정농단을 넘어 이렇게 '사회의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들이 아프지 않도록. 더는 아프지 않도록 말이다.

 

이번 시집을 읽으며, 특히 이 시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시집이다. 너무도 잘 읽었기에 고맙고 기쁘다.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생각해낸 기분을 느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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