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폭력 검은 저항 - KKK의 탄생과 흑인 민권 이야기 생각하는 돌 16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김충선 옮김, 오찬호 해제 / 돌베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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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파농의 책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떠올랐다. 하얀 폭력, 검은 저항이라니... 분명 인종문제와 관련이 있는 책이라는 생각.

 

작은 제목에 KKK의 탄생과 흑인 민권 이야기라고 하니, 오호라 미국 이야기군.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책이군 하는 생각. 백인우월주의자들과 그에 맞서는 흑인의 이야기를 파농의 책, 백인을 추종하려는 흑인을 비판한 책에 빗대어 제목을 붙였다.

 

원래 영어식 제목은 이게 아니었을텐데, 번역을 우리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붙였다. 파농의 책들이 이미 읽힌 상태에서 흑인들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데는 이만한 제목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파농의 책은 흑인을 중심으로 흑인의 내면에 숨어들은 백인성 추구를 비판하는 내용이라면, 이 책은 백인들이 흑인들을 어떻게 차별하고 억압했는지를 중심으로 다룬다.

 

흑인 민권 이야기라고 하지만, 흑인들이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해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가 중심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는 영어 원래 제목대로 KKK라는 단체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중심이다.

 

남북전쟁에서 퇴역한 군인 여섯 명이 모여 어느날 우리 모임 하나 만들자는 말에서 만들어진 단체. 시작이 이렇게 우연에서 출발했지만, 이들의 우연은 곧 필연이 된다. 이름이 참 거창하겠단 생각을 하지만, 이 단어는 겨우 '모임-모임'이라는 뜻이라니..

 

이렇게 노예제를 찬성했던 남부에서 흑인들이 자신들과 동등해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백인들이 흑인들의 권리가 신장될수록 자신들의 권리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미국 남부 백인들은 어떤 두려움을 느꼈으리라. 이 두려움이 이들을 뭉치게 만들고, 폭력적으로 만든다. 힘으로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자신들은 우월하다는 감정까지 가세하니, 흑인들이 자신들과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흑인들이 재산을 가진 것도, 교육을 받는 것도, 투표를 하는 것도, 또 흑인들에게 이런 권리를 알려주는 백인도 그들은 용납할 수 없다.

 

그 결과 그들은 폭력 행위를 벌인다. 혼자서는 하지 못하던 일을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저지른다. 자신들의 나약함을 가면과 집단 속에 숨겨두고 폭력으로 해소를 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하얀 폭력이다.

 

흑인들에 대한 테러, 흑인을 도와주는 백인들에 대한 테러. 남북전쟁에서 노예해방을 지지하는 북군이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남부 흑인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KKK의 폭력 앞에서 이들은 속수무책 당하기만 한다. 간혹 고소를 해도 백인은 무죄로 풀려나고 흑인들만 무고죄로 기소당하고 구속당한다. 게다가 KKK에 의해서 목숨을 잃기도 하고.

 

결국 연방정부가 개입해 사태가 어느 정도 무마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흑인들의 희생이 많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희생될 줄 알면서도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고 묵묵히 그곳에서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 의해서 흑인 민권은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흑인과 백인의 구분은 불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시키는 일에서 흑인이냐 백인이냐 하는 인종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고, 그들이 자유민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얻어내고 지켜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비록 전쟁에서 패했다고 하더라도 남부의 백인들 중 처벌받은 사람은 극히 드물고, 이들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흑인들을 예전처럼 지배하려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적 안정을 원하던 북부의 정치인들이 미적거린 데서 흑인들은 몇 년 동안 극심한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비록 희생을 치렀더라도 그들은 이제 자유민의 삶에서 노예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런 자각, 이런 생활이 지지자들을 불러 모았으며, 스스로의 자각과 활동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하나씩 하나씩 찾아갈 수 있었다. 이것을 검은 저항이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간혹 폭력적인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비폭력 저항을 한다. 떠나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집을 지키는 것, 학교에 가지 말라는 말에 학교에 가는 것 등 폭력이 아닌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일들을 그냥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려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저항이 된다. 이렇듯 검은 저항에는 비폭력이, 인간의 존엄이, 인권이 담겨 있다.

 

그것이 노예해방선언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무려 100여 년의 시간이 더 걸렸을지라도.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완전한 인간적 존엄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들도 똑같은 인간임을 명심하게 한다.

 

이 책을 우리 사회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비단 미국이 아니라 우리 역시 이런 차별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은지.. 어쩌면 미국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차별을 우리도 지니고 있지 않은지... 파농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노란 피부, 하얀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책, 바로 이 책이다. 다시금 미국에서 이런 차별주의가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한 번 자유민이 된 사람은 다시는 노예가 될 수 없듯이, 이미 신장된 인권은 후퇴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이 자리에서 확보된 인권이 후퇴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여기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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