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메갈리아'란 말이 인터넷 공간을 점령한 때가 있었다. '있었다'라는 과거형을 쓴 이유는,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메갈리아'가 뭐하는 곳인지도 잘 모른채, 그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남성들로부터 추행, 희롱당한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 

 

양성평등을 부르짖는 시대에, 비록 제대로 정치를 못해 하야 압박을 받고는 있지만, 어쨌든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에서 아직도 여성은 피해자의 자리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주는 사이트였는데...

 

마찬가지로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에서 흑인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으며, 인종차별, 여성비하 등을 일삼는 부동산 재벌이 여성 후보를 누르고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니... 이 나라나 저 나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지금도 뭐 좀 힘있다고 여기는 남자들이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외모로만 판단하는 말들을 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니, 이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페미니즘이 나온 지가 한참이 되었음에도 여성들의 권리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하는데...

 

많은 부분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신장되었음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무시되고 있는 권리들, 또는 암묵적으로 비하되고 있는 부분들, 사회적 분위기, 또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여성에 대한 남성적 시선이 존재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양성평등 교육을 강화하고, 성희롱, 성추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도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성차별적 편견들을 없애는 데는 긴 시간, 오랜 노력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별이 몸에 배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차별인지도 모르고 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당신 그것은 성차별이야 하고 말해주는 사람도 적기 때문이고, 따라서 자신이 성차별적 말이나 행위를 하고도 모르고 넘어가는 수도 꽤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 이 책에서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것이 꼭 남자만의 문제일까? 여성을 비하하는 말 또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일까?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들 역시, 그것도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고 있는 여성들도 알게모르게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도 많다.

 

극단적인, 또는 올바른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들, 이 책에서 말한 이런 구분... 이건 유머라고 해야 하나?

 

근본주의 페미니즘은 곧 분노, 유머 감각 없음, 공격성, 확고부동한 원칙을 나타내며 적합한 페미니스트 여성이 되는 방법, 적어도 적합한 백인 이성애자 페미니스트가 되는 방식을 규정한다. 포르노그래피를 싫어하고 여성의 대상화는 무조건 매도하고 남성들의 시선에 부응하지 않고 남자를 미워하고 섹스를 싫어하고 일에만 열중하며 제모를 하지 않는다. (356-357쪽)

 

요즘은 이렇게 페미니스트를 규정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거나 주장하는 사람들을 페미니스트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은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여기서 '나쁜'이라는 말은 도덕적인 가치 판단이 들어간 말이 아니라, 이러한 페미니스트 규정에 따르지 않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다.

 

우리 말로 하면 '날라리' 페미니스트 정도 되겠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규칙대로 규정대로 살아갈 수가 있을까? 그것은 기계적 삶이다. 매뉴얼대로 입력과 출력이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그런 삶을 사람은 살아갈 수가 없다.

 

그때그때 자신의 처지에 맞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를 주장한다고 해서 꼭 다리나 겨드랑이의 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지내야 한다는 말, 이것은 이 저자도 '나는 종종 가장 마지막 건을 농담으로 삼는다'(357쪽)고 했듯이,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쪽에서 하는 말이기 쉽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남에게 좋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대부분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의 일들을 보고, 그 일들에 대한 글을 써서 발표를 한다. 그런 발표글들이 이 책에 묶여 있는데...

 

개인의 경험도 섞이고, 미국 사회의 문제도 섞이고, 페미니즘의 관점과 인종주의의 관점, 계급주의의 관점이 적절히 섞인 그야말로 자신만의 관점에서 미국 사회의 편견을 바라보는 글들이다.

 

여성차별주의가 중심이 되고 있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여성이 아님을 이 책에서는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상류층 백인 여성과 하류층 흑인 여성, 그리고 이주해온 동양, 라틴아메리카 여성이 그 사회,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아이티에서 이민온 흑인계의 후손으로서 흑인 여성의 입장에서 많은 일들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3부에 실린 "엔터테인먼트:인종과 젠더"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보여주고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흑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또는 흑인문제를 주제로 다룬 영화들에서 흑인들을 표현하는 방법을 다르게 파악하고 있는 것. 여전히 영화에서는 백인의 시선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흑인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여성이기에 또 흑인이기에,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음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쉬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은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하지만, 이 때 여성은 개별적 여성이어야 함을, 그리고 사회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시선에서 보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성을 무시하고 원칙이라는 큰틀만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개성을 살리고, 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여성이라는 성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서 사회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나쁜' 페미니스트가 주장하는 것이다. 글들이 참 통쾌하다. 읽기도 수월하고. 특히 영화에 관한 평은 내가 참 감명깊었다고 생각하는 영화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짚어주어서 더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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