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병원에 입원해서 병상에 누워 몸을 옴짝달싹도 못하고 그냥 누워만 있었다. 그것도 며칠동안이나.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니 미칠 노릇이다. 앉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음식도 남이 먹여주어야 하니 이거야 살아 있는 시체가 따로 없었다.
그때 내 몸을 생각했다. 내가 내 몸을 너무도 막 썼구나. 내 소중한 몸을 이리도 막 다룬 결과가 지금 이것이구나.
내 몸을 내가 아끼지 않으면 누가 아끼겠는가. 내가 몸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정신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닌, 몸과 정신이 함께 바로 '나'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은 시간이었다.
자신의 몸을 이렇게 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어떤 계기가 있는데... 그 계기가 없으면 우리는 우리 몸이 영원히 계속 잘 활동할 줄 알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아니다. 어떤 계기가 없어도 자신의 몸에 대해서 늘 관심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살펴야 한다. 몸이 너무 피곤하지 않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바로 자신의 몸 아니던가. 그런 몸을 이렇게 막 굴리다니... 그런 안 되지.
그러다 김사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이 생각났다. 이 시집을 펼쳐보니, 두 번째 시 '노숙'이 눈에 들어온다.
병원에 입원해서 내 몸에 대해 생각했듯이 시의 화자도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 몸이 참, 내가 입원해 있는 것만큼 혹사당했나 보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데,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몸의 혹사는 결국 정신의 혹사로 이어지고, 그것은 바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
많이들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닌데도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더라도 내 몸, 내가 지켜야 함을 생각해야 겠다.
세상을 얻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노숙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험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10년 초판 11쇄. 12쪽.
시에서 말하는 몸과 건강을 잃은 몸과는 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그 몸으로 살아왔지만 몸에 대해서 제대로 대우를 해주지 못햇음도 공통점이다. 그렇다, 노숙은 자신의 몸뚱이를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뉘인 행위이지만, 병원에 누워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내 몸 사랑해야 한다. 그 몸이 지금까지 날 위해 해온 것에 대한 보상, '네 노고의 험한 삯'을 우리는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그 지불, 몸의 주인인 내 몫이기도 하지만, 내 몸이 살아가는 사회, 내 몸으로 살아가는 사회도 역시 '노고의 험한 삯'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몸도 안락한 곳에 뉘일 수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은 시다.
작고 힘없는 존재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시다. 이런 애정이 우리를 좀더 건강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