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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평점 :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름만으로도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이 읽게 만들 수 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조정래일 것이다.
어떤 프로그램에 나와 그는 말했다. 자신은 아직도 원고지에 손으로 글을 써서 넘긴다고. 이름 없는 작가들이 이렇게 했다간 원고를 퇴짜 맞을 가능성이 아주 많지만, 자신에게는 어쩔 수 없다고. 작가로서의 자부심과 조정래라는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잘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대형작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이름보다는 우리나라 현실을 소설 속에서 재현해내고, 그것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 작가, 어쩌면 그는 예전의 작품인 "태백산맥"의 작가로 단번에 그 자리를 차지했고, 그 이후의 소설들을 통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그가, 일제시대, 6.25, 독재시절 개발시대 등을 소설에 담아 내었다면, 다음 소설은 자연스레 교육 문제일 수밖에 없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교육 문제에 관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을테고, 교육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경제 문제와 더불어 너무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망국론이 나온 지 오래고, 그렇지만 변하려는 몸부림이 도처에서 있었지만 변한 것이 잘 보이지 않는 교육. 교육의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고 참으로 더디게 나타난다고 해도, 대안학교 붐이 일었던 것이 1997년 정도부터이니 대안 교육도 이미 20여년이 되어 가는데, 그 때 대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일할 때가 되었음에도 어떤 변화가 보이지 않으니...
교육은 이렇게 20년이 되어도 그 변화를 잘 포착하지 못하는데, 해방 이후 공고화된 교육 문제가 어떻게 몇 년 내로 싹 해결되겠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해결이 아니라 더 안 좋은 쪽으로 심화되었다는 것이 조정래의 생각이 아니던가.
이 소설을 읽어보면 참, 암담하다. 도대체 희망이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라면 이 나라 도대체 가능성이 있는 나란지 참담한 마음만 들 뿐이다.
이게 소설 속 상상의 세계에서나 그렇다면 괜찮겠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의 현실이 그대로 느껴지니 더 문제다. 그러니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불편해진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결말이 없다. 그냥 진행형이다. 가장 암담한 순간을 제시해 놓고 소설은 끝나버린다. 이게 현실이라고, 똑바로 보라고, 지금 대치동에 가 보라고? 이렇게 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소설 속에 긍정적인 인물들도 나온다. 모두 전교조 교사들이라는 짐작이 가게 만드는 그런 교사들인데, 이들에 공감하기가 참 힘들다. 특히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강교민". (그는 말했다. 이 이름은 자기가 포기할 수 없는 이름이라고. 자기의 의도가 담긴 이름이라고. 교육민주화의 줄임말) 이토록 완벽한 교사가 있을까?
교장에게서도 무시당하지 않고, 동료교사들에게도 인정을 받으며 학생들에게는 짱이라는 소리를 듣고 수업도 잘하고 생각도 바른데, 여기에 자기 자식 교육까지 완벽하게 잘 시킨 사람... 이상적이어도 너무 이상적이다. 이런 사람이...
이 사람의 아내는 교사였는데, 아이가 혼자 밥 먹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전업주부 생활을 한다. 그리고 아이가 알아서 공부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혀 강요는 없다. 아이는 알아서 자기주도 학습을 한다.
그런데 좋아보이지 않는다. 이 완벽한 가정의 모습, 가정과 학교의 생활을 일치시킨 강교민 선생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심보인지 반발감이 막 생긴다. 도대체 뭐야, 이 사람? 하는 마음이 든다.
그가 해결 못 할 일은 없다. 아니 있다. 그것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편법, 개인의 힘이 작동할 수 없는 함법을 가장한 편법은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이것 빼면 나머지는 모두 '수퍼맨'이다. 그는 교육계의 '수퍼맨'이다.
하지만 그런 교사는 없다. 그리고 그의 가정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그의 아내는 아이가 혼자 밥 먹는 것 못 보겠다고 학교 그만두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맞벌이 가정들은? 자신의 인생은? 그녀 역시 자신의 인생을 가정 또는 자식에 건 것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주인공이 우선 감정이입을 하는데 거리를 두게 만든다. 문제적 시대에 문제적 개인이 등장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건 너무도 완벽한 중세의 영웅이 소설이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런 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범속한 사람들일 뿐이다. 영웅 앞에서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인물들. 이것이 소설에 마음을 주기 힘들게 한다.
게다가 이 땅의 어머니들은 다들 왜 이리 못됐는지... 자신의 인생을 오로지 아들의 인생에 건다. 아들이 무슨 자신의 아바타라도 되는 줄 아는지. 그러나 특정 엄마들은 이럴지 몰라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렇지 않다.
아들과 자신의 인생을 구분할 줄 아는 엄마들이 더 많다. 그리고 그런 엄마들 때문에 이런 지옥같은 교육현실에서도 살아남는 아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 점이 아쉽다. 소설에서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지만 자식과 자신의 삶을 구분할 수 있는 엄마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전혀 나오지 않기에 이건 너무 과장이 심한 것 아냐, 그냥 다른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기가 쉬어진다. 감정이 이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설을 읽으며 아이들의 불행에 두 손을 꽉 쥔다든지, 눈물을 머금는다든지, 화가 나 두 손이 부르르 떨린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설은 내 마음 바깥에서 그냥 사건을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등장인물에게도 마음이 다가가지 않는다. 도대체 왜 다들 이렇게 나쁜 쪽 인물들과 성공한 인물들만 나오는지...
작가가 너무 위에서 교육 현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현실은 위에서 그리고 바깥에서 보면 진실을 알 수 없다. 그 복잡함을 알 수 없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얽히고 설켜 있는 그 복잡함을 무슨 알렉산더라고 단 칼에 잘라버릴 수는 없다.
단 칼에 잘라버리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냥 통쾌할 뿐이지, 그 어려움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은 강교민이나 다른 인물들처럼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에 처절하게 실패해 가는 보통 사람이 나와야 한다.
교사라면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학교 권력자인 교장과 교감, 교육 당국에 끼어서 고뇌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야 한다. 그런 사람, 결코 이 소설의 주인공인 강교민처럼 학생들에게까지 짱으로 불리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학교에서 하겠는가. 얼마나 많은 실패를 수업에서 하겠는가.
마찬가지다. 엄마들도... 엄마들을 이렇게 모두 악마로 만들어 버리면 엄마들의 모습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서 무조선 좋은 대학, 좋은 성적, 이것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 중 일부일 뿐이다.
그들의 고뇌는 나오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고전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처럼 악인은 그냥 그냥 악인일 뿐이다. 변화가 없는. 다만, 힘에 의해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누를 뿐인.
성적지상주의, 학교폭력, 왕따 문제, 영어만능주의 등 많은 것들을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데, 어느 하나도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지 않다. 그 점은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되갰는가. 그것은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소설의 장점을 이 점에서 찾는다. 조정래라는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가 교육 문제를 소설로 다뤘다는 것. 교육 문제를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졌다는 것.
이제 이 화두를 풀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누가 대신 풀어주지 않는다. 누가 대신 풀어주길 기대해선 안 된다. 자, 화두는 나왔다.
그 화두를 중심으로 궁리하고 고민하자. 짧은 시간에 깨달으려고 하지 말자.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아니라, 점수돈오(漸修頓悟)다. 천천히 천천히 고민하고 실천하고 하는 과정에서 해결책은 하나하나 나오기 마련이니.
덧글
여성주의자들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이 나라 교육 문제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됐는데, 마치 여성들이, 특히 엄마들이 일으킨 것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극성스런 교육열은 사실 교육 문제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한 것은 제대로 살기 힘든 우리나라 사회 구조 아니겠는가. 그 점이 이 소설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으니, 여성들, 특히 자녀를 둔 여성들에서 이 소설은 많이 거슬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