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묵의 건축 - 한국전통의 명건축 24선, 개정판 김개천 교수의 명건축 산책 1
김개천 지음, 관조 사진 / 안그라픽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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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4선에 안 들었다고 명건축이 아니란 얘기는 아니다. 어차피 책이란 지면에는 한계가 있으니 좋은 건축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건축을 선별한 건축가의 눈, 건축가의 마음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이런 책을 읽는 방법이다.

 

그가 왜 이 건축을 명건축이라고 했는가? 하고많은 건축 중에 왜 이 건축을 선택했는가? 그는 이 건축에서 무엇을 보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가면 그가 선정한 24선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말하고 싶고, 이렇게 말해야만 하는데...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 책은 분명 실패한 책이다. 이 책에서 그런 경탄을 자아내는 것은 너무도 아름답게 잡아낸 사진 뿐이다. 글로는 이런 경탄을 자아낼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를 더 혼돈 상태에 빠뜨린다.

 

그냥 책에서 건축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감탄을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멋있게 사진이 잘 나왔다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사진을 보고 그곳을 찾아갔을 때 우리는 결코 사진에 나온 장면과 같은 건축을 찾을 수 없다. 우리 눈에는 더 추레해 보이는 건축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진으로 봤을 때 너무도 선명하고 아름다운 단풍을 직접 산에 가서 보라. 사진 속의 일관된 선명성, 아름다움들이 곳곳에 얼룩이 진 단풍들과 다른 요소들에 의해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다.

 

마찬가지다. 건축도. 사진으로만 보며 감탄을 자아내던 그 건축이 막상 가서 보면  애걔 겨우 이거야 할 때가 많다.

 

결국 건축은 사진으로 보면 안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기가막히게 잘 찍은 사진을 보며 감탄하지만 사진은 카메라의 시선에 담긴 건축만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고 사진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진을 찍은 관조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으로 우리나라 건축을 남겨주신 것에 대해... 다만, 사진에 건축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직접 보아야 한다. 직접 보면서 느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느끼지? 건축의 멋을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리 멋진 건축을 보여줘도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일부만 보고, 일부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 점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을 쓴 저자의 글이다. 저자의 글은 건축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게 하고 전체적으로 보게 한다.

 

건축만 보게 하지 않고 주변과 함께 보게 한다. 또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않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게 한다.

 

외형에 담겨 있는 정신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건축에 관한 책이긴 하지만 동양사상에 관한 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 건축이 자연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존재했다는 사실, 그렇게 지어졌다는 사실, 그것은 바로 자연융화의 사상을 생활에서 실천하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이 표현되었다는 것.

 

건축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은 어렵다. 마치 어려운 동양 경전을 읽는 듯하다. 뭔 내용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같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렇지,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도 그 건축의 정신이 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동양경전을 한 번 읽고 이해할 수 없듯이, 이해는 커녕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고 지나기 일쑤인 그 글들과 같이 이 책에서 건축을 설명한 글들도 만만치 않다.

 

다만, 우리 건축이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제목도 '명묵의 건축'이다. 밝음과 침묵이 함께 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무엇 하나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짝이 있다. 상대적이다. 그러니 '명묵(明默)'이다. 우리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 함께 존재한다. 건축이라는 외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조상들의 사상이라는 정신과 함께 존재한다.

 

그 점을 알라고 이 책의 글은 이렇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진으로 감탄하고, 글로 무언가 모를 분위기에서 헤매면서 우리 건축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딱 이거다 라고 정리하지 못함, 거기서 우리 건축의 멋, 위대함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 소개된 건축, 대부분은 내가 보았던 건축이다. 저자와 전혀 다르게 느꼈던, 어떨 때는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그 건축에서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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