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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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책을 읽었지만, 전우용이란 학자의 책에는 믿음이 간다. 그냥 "우리 역사는 깊다"를 재미있게 잘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글에서 얻을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특정한 장소에 얽힌 역사적인 깊이를 느낄 수가 있다. 그냥 우리가 덕수궁 돌담길 하면 현재의 공간을 떠올리고, 그 공간에서 생각을 진척시키려 하는데, 그의 책은 덕수궁 돌담길이라고 해도 덕수궁이라는 지리적 공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 공간을 다루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몽골이나 알래스카 같은 초원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눈'이 좋다.' (187쪽)

 

뜬금없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읽어가다 보면 왜 이렇게 시작했는지 알게 된다. 이것은 결국 '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힘'으로 나아가고, 이 공간을 개조하는 힘들이 어떻게 근대화가 되던 대학제국 시절에 덕수궁을 개조해 갔는지 설명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결국 덕수궁, 이것은 궁궐 이름이라고 하기 힘들다. 지금은 우리가 그냥 덕수궁이라고 하지만 궁궐로서의 정식 명칭은 경운궁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렇게 그는 하나의 장소에 얽혀 있는, 또는 녹아 들어가 있는 역사를 끄집어내어 우리에게 알려주고있다. 따라서 지금 존재하는 하나의 공간은 그냥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축적된 우리 기억의 총체로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서울에 있는 많은 장소들을 이런 식으로 알려주고 있다.  

 

처음은 '서울'에서부터 시작한다. 제목이 '신시, 서울'이다. 서울이 곧 신시라는 것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세계에 건설한 첫도시를 신시하고 했다. 신이 세운 도시... 아니, 신이 세운 도시라기보다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으로 신시라고 한단다.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는 솟대라든지, 국사 시간에 배운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소도라든지 하는 말에서 '새, 소, 쇠'라는 말은 모두 신성하다는 뜻을 지닌다고 하고, 그래서 신성한 울타리, 이것이 곧 '서울'이라고 한다.

 

서울이 한자어가 아니라서 참 생경했는데, 조선을 건국하고 그 도시를 신성한 도시로 통칭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서울의 모든 것을 풀어가고 있으므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 동의하지 않으면 반대되는 사실을 찾으면 된다. 또는 반대되는 주장이나 다른 주장을 하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면 된다.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저자 역시 추론을 하고 있을 뿐이고, 사실은 더 많은 자료와 사실들에 의해 계속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 읽어가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고 느낄 수 있다.

 

이런 것들보다도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에 이렇게 깊은 역사가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 참으로 깊고 깊은 도시가 바로 서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단지 서울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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