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 알베르 카뮈 전집 1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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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왜 떠나는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문화를 맛보기 위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아니면 낯선 곳에 자신을 떨어뜨려 놓아 낯설어진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이도 아니면 낯설어진 자신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혹 놓치고 있는 자신을 찾기 위해서.

 

결국 여행은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한다. 그것이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든 어쨌든 최종 귀결은 바로 '나'이다.

 

그래서 여행은 현재까지의 '나'에다가 여행을 통해 얻은 새로운 '나'를 더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여행의 묘미가 있다.

 

내 여행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여행을 엿보는 것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가본 곳에 간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면 자신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찾을 수 있어서 더 좋을텐데...

 

불행하게도 나는 카뮈가 여행하고 나서 일기를 쓴 이 나라들을 가보지 못했다. 아직도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다. 그럼에도 이 나라들에 대해서는 지구촌화 시대답게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서 많이도 접했으니 그리 낯설지도 않다.

 

이 낯설지 않음을 토대로 카뮈의 여행일기를 읽어가려 했다. 물론 터무니 없는 생각이었음을 몇 장을 넘기지 않아 깨닫게 되었지만.   

 

카뮈가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필요한 경우에는 여행을 했고, 그 여행의 경험을 자신의 작품 속에 남기곤 했다고 하는데...

 

이 여행일기는 독특하게도 작가수첩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어떤 작품으로 체화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물론 남미의 여행은 그의 작품 속에 남아 있기도 하지만, 이 여행일기가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직은 어떤 것으로 변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일기.

 

그래서 그는 이 책에 실린 두 곳, 미국과 남미를 여행하면서 주로 사실에 중심을 두면서 일기를 썼다. 나중에 어떻게 작품을 쓰겠다는 작가수첩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만난 사람들, 그 곳의 풍습과 자연, 그리고 자신의 건강 등을 구체적으로 쓰고 있어서 여행을 하면서 카뮈가 어떤 상태였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구체적인 면... 가령 이 책의 33쪽에는,

 

  흑인 문제. 우리는 마르티니크 출신의 한 흑인을 이곳에 파견시킨 적이 있다. 그는 할렘에 숙소를 정했다. 그 사람은 다른 프랑스 동료들과 자신이 같은 인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그와는 반대되는 관찰. 버스 속에서 내 앞에 앉았던 평범한 백인이 일어서서 늙은 흑인 부인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프랑스에서도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아 흑인들을 차별한 경우도 있었고, 파농의 경우처럼 마르티니크 출신의 프랑스인들 역시 차별을 받았는데... 그것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서술한 다음, 미국의 특징으로 백인이 흑인에게 자리를 양보한 일을 나열한다.

 

이런 일화를 통해 흑백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며, 인종차별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을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상한 점은, 아무리 남부와 북부가 달랐다고 해도, 카뮈는 주로 뉴욕 쪽에 있었을테니 북부에서만 흑백의 인종차별이 많이 완화되었음을, 그러나 남부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흑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백인이라는 개념은 찾을 수 없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결국 카뮈가 본 미국식 민주주의도 일부에 불과했음을 지금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미국에 대한 카뮈의 인상 또 하나... 36쪽에..

 

  철학과 관련된 도서 카드들을 찾아본다. W. 제임스, 그게 다였다.

 

유럽에 비해서 미국의 철학이 빈곤함을, 철학이라고 해봐야 겨우 실용주의 하나임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면 될테고...

 

이런 식으로 여행을 통하여 세계와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는데... 그가 미국과 남미 여행을 할 때는 유럽에서 주로 배를 타고 갔으니, 배를 타고 가며 바다에 대해 느낀 점.

 

이것은 카뮈의 바다에 대한 욕망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어서, 우리가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바다를 무척 사랑했다. - 이 고요한 무한을, 이 다시 덮이는 물길을, 이 매끄러운 길들을. 처음으로 수평선이 인간의 호흡과 맞먹는 크기를, 인간의 대담함만 한 넓이를 갖는다. 나는 늘, 인간들에 대한 강한 관심과 부산하게 움직이고 싶은 허영, 그리고 이 망각의 바다에도 손색이 없고 죽음의 환희와도 같은 이 무한한 침묵에도 손색이 없는 나 자신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찢어져 있었다. 나는 이 세상과 나의 동류들과 얼굴들에 대한 허영에 마음이 끌린디. 그러나 이 세기의 곁에서 나는 나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바다, 바다와 닮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바로 그것이다.  54쪽.

 

이런 구절이 바로 여행일기에서 미국 여행을 마치게 되는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그리고 다음은 남미 여행인데... 이 여행은 미국 여행보다 힘들어 카뮈를 매우 힘들게 한다. 그러나 광대한 자연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에게서 희망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카뮈의 여행일기를 읽으면서 곧 카뮈가 여행한 곳의 풍습이나 문화를 엿볼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 카뮈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이런 카뮈라는 낯선 존재에게서 '나'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것이 카뮈의 여행일기를 읽는 또 하나의 목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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