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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기 - 세계가 높이 산
최준식 지음 / 소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지나친 겸손은 결국 자만이라고 했던가. 나는 이런 사람인데, 나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를 낮춘다. 그러나 나는 낮은 사람이 아니라 높은 사람이다. 이런 생각에서 겸손을 가장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말을 우리 문화에 적용해 보면 우리는 우리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하고, 그래서 아직도 세계의 변방에 불과하고 등등. 우리를 자꾸만 낮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낮추는 일이 결코 우리가 낮다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는 더 높아야 하는데, 지금 그 자리에 있지 못하다는 자책이지 않나 싶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문화가 실질적으로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의 문화가 우리의 기대치에 모자라는가?
이 책을 읽으면 전혀 아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야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악마나 거리 응원으로 전세계에 이미 알렸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굳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드러난 일 말고도, 곳곳에 있는 노래방을 보라. 자신의 신명을 노래로 풀어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만큼 열성인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이 책에는 문기(文氣) 하여, 문화 면에서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알아주는 민족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나라의 인쇄문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일명 '직지심경'부터 시작한다. '직지심경'이라는 이름은 잘못된 것으로 요즘은 줄여서 그냥 '직지'라고 한다고 하는데, 본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국사 시간에 그토록 자랑스레 배우고 외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발간되었다는 사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유산은 프랑스에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금속활자본 말고도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목판인쇄본으로 '무구정광다라니경' 도 있다고 하니, 인쇄문화가 관해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앞서 갔던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세계최초라는 수식어만 가지고는 우리 민족이 '문기'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문기를 잘 드러내는 기록물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문기'를 자랑해도 된다.
그것은 바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다. 한 왕조의 역사를 이렇게 긴 세월동안 빠짐없이 기록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기록을 잘한 민족이 문화가 없는 민족일까? 아니다. 우리는 한때 일본인은 기록을 잘하는데, 우리는 기록을 잘 안 한다는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과연 그럴까?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출판물 중에서도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일기가 나오고 있듯이, 우리 민족은 예전부터 기록을 중시했다. 그것도 자신에게 유리한 기록만이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려는 정신을 지니고.
그것이 왕조의 역사를 방대한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기록들의 백미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훈민정음'이다.
자신들의 문자를 어느 순간 특정한 개인이 만들었다는 사실, 창제자와 창제 원리가 밝혀진 문자가 등장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원리가 기록된 책이 남아있다는, 통칭 '해례본'이라 칭하는 "훈민정음"이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문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도 이래서 한글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훈민정음'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의 위대함이야 많이들 이야기하니 여기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 말고도 상주본이라고 하나가 더 있다는데, 이것이 지금은 어디 있는지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책은 돈으로 해결될 책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다.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입해서 보관해야 한다)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문기'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굳이 우리를 낮출 필요가 없다는, 우리는 낮추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자부심을 지닐 수 있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만,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저자가 이런 자부심, 자랑을 너무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냥 사실만 서술해도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자부심은 강조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느끼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충분히 문화 민족이다. 그것을 우리가 계승 발전시키면 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만 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