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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평점 :
'밥도둑'하면 먼저 게장을 떠올린다. 게딱지에 밥을 쓱쓱 비벼 먹으면 밥 한 그릇은 뚝딱 먹어치우게 됐으니 말이다.
또 김을 생각한다. 갓 구워낸 김에 밥을 말아 간장에 찍어 먹으면 얼마나 많은 밥들을 순식간에 먹을 수 있었는지.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밥도둑이 참 많다. 밥도둑이라는 말 대신에 음식이라는 말을 써도 무방한 이 책은 소설가 황석영이 밥 반찬에 관해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쓴 책이다.
밥은 곧 관계다. 밥은 곧 사람이다. 밥은 곧 하늘이다. 사람은 곧 하늘이다. (인내천(人乃天)) 장일순 선생이 해월의 말을 빌려 했다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 하늘로써 하늘을 먹는다. 밥이 하늘이고, 사람이니...
밥은 그래서 사람들의 관계다. 사람들의 모든 것이 밥에 담겨 있다. 이 때 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쌀이나 보리 또는 잡곡으로 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찬을 포함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이다.
밥에는 그 지방의 풍속과 문화와 사람들의 습성이 담겨 있고, 또 밥하는 사람의 정성이 담겨 있는데... 그래서 밥으로 그 지역을 알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온갖 종류의 밥들이 나온다. 아니 밥도둑이 나온다. 즉 반찬이다. 지역에 맞는 반찬, 그런 반찬으로 밥을 먹을 때의 맛이란... 잊을 수 없는 맛이고, 그 맛이 자신의 삶 내내 따라다니게 된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시인인 백석의 시에서 '맛'을 분류해내 "백석의 맛"이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겠는가.
그만큼 음식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이 책에 나오는 음식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만큼 작가 황석영의 삶이 다양하다는 얘기도 되는데...
그의 가정에서 먹던 음식과 북한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먹은 음식, 본의든 타의든 외국에 나가 있을 때 먹었던 외국의 음식들, 그리고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하면서 먹었던 음식들 이야기가 나온다.
읽다보면 자신이 먹어봤던 음식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기도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은 우리가 맛볼 수 없는 음식들이 너무도 많다.
음식도 세계화 표준화를 이루었는지, 이제는 어느 지방을 가도 비슷한 음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작가도 아쉬워하고 있는데.
자기만의 색깔을 잃어버린 것이 어찌 지역의 음식들 뿐이겠는가. 우리 학생들이 먹는 음식도 생각해 보자. 아침 저녁을 집에서 먹는다 해도 그 집안의 독특한 음식이 있는 집은 얼마 있지도 않을 뿐더러, 점심은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영양사들이 짜놓은 식단에 의해 거의 비슷한 음식들만을 먹고 있지는 않은지.
도시락을 통해 다양한 반찬을 나누어 먹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한 학교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음식을 먹는 획일화, 표준화된 음식 문화. 여기서 무슨 다양성이 꽃피겠는지.
다양성, 창의성, 융합, 통합 등등의 말을 하지만 삶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음식에서부터 이런 점들이 발휘가 안 되는데... 그리고 서울이든 부산이든, 아니면 제주도든, 전라도의 전주, 해남이든 어느 도시를 가도 비슷한 음식들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가.
그 지역의 특별한 음식들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음을 이 책의 뒷부분에서 알 수 있는데... 해남 출신의 젊은이가 '토하젓'을 모른다고... 이렇게 세상이 변해버렸음을.
음식은 문화이고 전통이고 역사임을, 그리고 음식은 바로 우리의 삶임을 생각해야 하는데, 표준화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표준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수많은 음식들이 이 책에 나온다. 그리고 그 음식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관계맺게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글들이다.
'먹방'(먹을거리 방송)이 대세로 수많은 방송에서 음식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방송에 나오는 음식보다 더 소중한 음식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에서 나오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서 어떤 음식이 마음에 와 닿는지, 기억에 남는지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