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 낯선 장소로 떠남을 명받다
염은열 지음 / 꽃핀자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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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죄인을 벌주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유배형이 있었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 그곳에서 지내게 하는 것.

 

당시에 고향을 떠나 사는 일은 뿌리 뽑힌 삶이라는 인식이 강했을테니, 이 책에서 말한 대로 유배형은 사형 다음 가는 무서운 중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유배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겨주었는데... 그것은 교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시대에 유배를 통해서 교류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우월한 문화를 습득한 지식인이 유배를 떠나 낯선 곳, 그곳은 요즘 말로 하면 오지라고 할 수 있는데, 문화혜택을 받기 힘든 곳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중인 이하의 사람들은 생업에 종사하겠지만, 대부분 그것도 중앙관료 출신인 양반들은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교육을 통한 생계 해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유배 온 사람을 통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른 지역과 비슷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방 수령은 물론이고, 그 지방에 살고 있던 양반들, 또는 부유층들은 유배온 사람을 반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반역 행위를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언제든지 유배에서 풀려 서울로 올라갈 사람들이고, 이들에게 배웠다는 것으로 서울로 올라갈 가능성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문화가 일방적으로 유배 온 사람에게서만 전파되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유배지의 생활, 문화가 유배 온 사람에게 영향을 준 사례도 있다. 그러니 유배는 상호 문화교류를 본의 아니게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유배에 관해서 두 가사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안도환의 '만언사'와 김진형의 '북천가'

 

안도환은 남쪽 추자도로 유배를 간 중인이고, 김진형은 북쪽 명천으로 유배를 간 양반이다. 즉 이들은 공간적으로도 상대적인 위치에 있지만 계급적으로 상대적인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유배를 받아들이는 자세나 유배지에서의 생활 등에서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이 차이를 중심으로 유배가 우리나라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 나가고 있다.

 

두 작품을 중심으로 하지만 유배를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두 작품을 설명하면서 유명한 사람들이 언급되고 있다. (우리가 유배하면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다산 정약용과 손암 정약전이다. 또 추사 김정희도 서포 김만중도 떠올린다. 이들은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된다.)

 

따라서 유배가 형벌이기는 하지만 이 형벌이 문화적인 면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유배를 통해서 학문이 교류됐고, 사람들이 관계를 맺었으며 지역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었고, 또 정치에 목매인 삶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학문에 몰두하게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유배는 곧 낯선 곳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낯섬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또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관계들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 융합된 문화들이 나타났음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배라는 형벌을 통해 학문적, 문화적 성장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면 현대에는 감옥이라는 또 다른 유배를 통해서 학문적, 문화적 성장을 이루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얼마 전 작고한 신영복 교수이지 않을까 싶다. 20년의 감옥 생활, 그 생활을 대학시절이라고 부른 사람. 그는 감옥 생활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자신을 성찰했으며 다른 학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글들을, 글씨를 남겨 놓았다. 이렇게 형태는 다르지만 유배는 과거나 현재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냥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유배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해주고 있는 책이고, 유배가 긍정적인 역할도 했음을 깨닫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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