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시선 394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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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이야기했다고 '감옥'에 갇혀야 했던 시인. '희망버스'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감옥이라는 곳으로 끌려가야 했다. 그러나 그 감옥은 절망이 아니고 또다른 희망이었다.

 

이 시집,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었던 국적, 한국인. 그러나 이 국적은 성인이 되면 스스로 버릴 수도 있다. 망명을 통해, 또는 또다른 국적을 취득해, 한국인이라는 국적을 포기하면 되니까.

 

이 시집에 실린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는 한 편의 서사시다. 부끄러운 한국의 자화상. 아니 한국의 자화상이 아니라 권력과 결탁한 한국 자본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저지르는 자본의 비인간성, 그 비인간성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가는 노동자들. 노동자들.

 

그래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란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은 국적이 없는데, 유독 노동자에게만은 국적을 강요하는 자본과 권력.

 

그런 자본과 권력에게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그들의 지배를 거부하는 시인. 그런 시들.

 

이건 국적 포기가 아니다. 한국인이라는 국적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나라,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이렇게 노동자를 착취하고 탄압하는 한국인이 아닌, 힘든 사람들과 연대하는 한국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한 편의 서사시다.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으면 없던 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음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자본은, 한국 자본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음을 직시하라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이런 시들이 이 시집에 너무나 많다. 시인은 절망의 시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우리 사회가 절망스러운지, 얼마나 캄캄한 어둠, 그리고 무덤들이 많은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시 '저녁 운동장'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캄캄함을, 무덤과 같음을,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음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152쪽)

 

이런 어둠 속에서 그냥 주저앉아야 할까? 아니다. 주저앉을 수 없기에 시인은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를 보자.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라는 시. 다른 시들에 실존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고, 실제 사건이 나온다면, 이 시는 그것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희망'은 우리가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것임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임을.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몇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송경동,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 2016년. 초판 2쇄. 79쪽.  

 

그렇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의 글이 생각났다.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우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사람이 되라는.

 

시인은 비를 함께 맞아주는 사람이다. 그의 시들을 통해 우리는 비를 함께 맞아줄 수 있다. 어설프게 우산을 씌워주거나, 우산을 주겠다는 거짓부렁이를 나불거리는 사람이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집을 통해서 우산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의 허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함께 비를 맞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안전하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있으면서, 너희에게 우산을 주겠다고 호언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이다.

 

한 편 한 편이 마음 속에, 결코 머리 속이 아니다, 아프게 콕콕 박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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