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재벌들의 유산 싸움, 또는 상속 싸움을 보면 저것이 과연 제대로 된 유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말이 있지만, 자본이 세계를 잠식한 시대에서는 돈 나고 사람 났다는 듯이, 형제들끼리도, 심지어는 부모자식간에도 돈을 두고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니 부모가 막대한 재산을 지니고 있다가 돌아가셨을 경우, 그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형제간이 다툼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으로 추잡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돈이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자세, 남을 나만큼 사랑하는 태도, 무언가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벌들의 재산 싸움을 보면,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중에 자식에게는 돈 말고는 제대로 된 유산을 물려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돈만이 아니다. 정치계도 대물림 되고 있는 현실인데... 그 대물림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그런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인지는 그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지금까지의 모습은 자신들이 쌓아올린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를 지키려는 과거 역사 속 '음서제도'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좋은 사회일수록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데...

 

장석남의 시집을 읽다. 그 시집을 읽으며 요즘 뉴스에 주로 등장하는 모 재벌가의 경영권 다툼이 떠올랐는데... 특히 '나의 유산은'이라는 시를 읽고.

 

정말, 물려줄 게 있다면 이랬으면 좋겠다. 이 시처럼...

 

나의 유산은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장마 큰물이 덮었다가 이내 지쳐서는 다시 내보여주는,

은근히 세운 무릎 상부같이 드러나는

검은 징검돌 같은 걸로 하고 싶어

 

지금은,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듯

섭섭함의 시간이지만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밑의 묵묵한 목숨

과도한 성냄이나 기쁨이 마셨더라도

이내 일고여덟 형제들 새까만 정수리처럼 솟아나와

모두들 건네주고 건네주는

징검돌의 은은한 부동(不動)

나의 유산은

 

장석남,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문학동네. 2012년 초판.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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