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전쟁 - 우리말 우리글 5천년 쟁투사
김흥식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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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자극적이다. 한글 전쟁이라니... 언어를 두고 일어난 변천을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왜, 패자는 역사에서 사라지니까. 승자만이 살아남으니까.

 

전쟁에 빗댄 표현은 무섭기는 하지만 적실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면 지금 세계는 총성 없는 언어의 전쟁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언어와 전쟁을 하고 있나? 대표적인 언어가 바로 영어다. 영어는 세계 곳곳으로 자본과 함께 들어와 자본이 그 사회를 변모시켰듯이 그 나라 언어를 변화시켰다. 아니, 변화가 아니라 사라지게 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세계 곳곳에 존재하던 언어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소수 민족이 쓰던 언어들은 이제 살아남지 못했고, 한 때 나라를 구성하고 있던 사람들이 쓰던 언어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언어에 관한 갈등은 전쟁일 수밖에 없다. 승자는 살아남고 패자는 사라지는.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유한 말을 쓰고 있었다. 말은 있으나 표기할 수 있는 문자는 없었다. 문자가 없었기에 세종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한자를 빌려 쓰고 있었다. 한자를 빌려 썼다고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쓰던 언어는 한문이다.

 

즉, 말과 글의 이중생활이었다. 말은 우리말로 하되, 표기는 한문으로 하는. 그래서 문장조차도 우리나라식 문장이 아니라 한문의 문장이어야 했다. 그렇게 표기했고, 글은 곧 한문이었다.

 

그런데 세종이 나타났다. 말과 글의 분리 상태. 말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하는 문제. 또 한자를 제대로 발음하거나 표기하지 못하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버린 문자. 훈민정음의 탄생.

 

한글이 우리 곁에 온 지 이제 겨우 600년이 되어갈 뿐이다. 우리나라 역사 약 4500년에 견주어도 아주 적은 시간일 뿐이다. 우리는 한글을 아주 먼 옛날부터 써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 국민 모두가 우리글로써 한글을 알고 써 온 것은 1900년대에 들어서일 뿐이다.

 

물론 간헐적으로 문헌에 한글이 나오고, 한글 소설도 또 한글로 표기한 시조집도, 서한도 나오고 1894년을 기해 한글(國文)로 공문서를 표기해야 한다는 공표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한글은 1900년대나 되어야 실질적인 우리 글이 되었다.

 

그것도 통일된 표기법이 나온 것은 1933년이다. 지금부터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쟁으로 비유한 작가는, 한글 창제 이전부터 한글 창제, 그리고 창제 이후를 주욱 훑어가면서 한글의 성장과정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한글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들, 그 성장을 방해했던 것들에 대해서...

 

하여 흥미진진하게 읽어갈 수가 있다. 거기다가 일제시대, 한글의 종말 위기까지 갔던 전쟁을 극복해내는 과정,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사전이 나오게 되고, 한 독재자의 몽니로 한글이 후퇴하려고 했던 점 (이를 작가는 쿠테타라고 표현한다. 한 독재자의 한글에 대한 잘못된 집착이 어떤 결과로 끝났는지... 지금,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이 과정을 되짚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하지만 한글이 자리잡아가고 있게 된 지금.

 

한글은 다시 최고로 위험한 전쟁 상황으로 (이를 작가는 냉전이라고 한다. 표시나지는 않지만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인식하고 있다.

 

얼마나 영어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지 잘 나와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라고 촉구하면서 책이 끝나고 있다.

 

한글은 단순한 표기 수단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가 담겨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단순히 우리 것이기에 지켜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해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

 

그것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는 지금, 그것을 영어 표현을 빌려와 글로벌 시대라고도 하는데, 진정한 세계화는 나를 잃고 남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면서 남을 받아들이는 것,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울려 다양함을 이루는 것일테니.

 

한글. 한글이 얼마나 힘겹게 지금 우리 곁으로 다가왔는지, 그 과정에서 숱안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함을 이 책이 보여주고 있다.

 

굳이 한글날 즈음에서 읽을 책은 아니다. 한글이 한글날에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아니기에. 늘 우리 곁에 두고 한글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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